♡2372회 ''지혜의 스승들은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잠깐 브레이크를 잡으라고 - 외칩니다.''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2월 14일(로마서 1장~ ) 교부 실루스는 “모든 일이 당신의 생각에 가장 좋은 방향으로 되기를 바라지 말고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되기를 바라라. 그러면 혼란에서 벗어나 기도중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행복하고 좋은 인간관계》어떤 맹인이 스승에게 밤 늦도록 가르침을 받다가 집을 나서자 스승은 맹인에게 등불을 들려 주면서 조심해서 가라고 당부했다. 맹인은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맹인에게 등불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스승에게 물었다. 그러자 스승은 "자네는 보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이 자네가 든 등불을 보고 피해 갈 것이 아닌가?" 하고 일러 주었다. 그래서 맹인은 스승의 깊은 마음에 감복하면서 등불을 들고 자기 집으로 향했다. 한참 길을 가다가 맹인은 어떤 사람과 심하게 충돌하였다. 맹인의 손에는 등은 들려 있었지만 불이 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관계 안에서 존재하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 형제자매와의 관계, 이웃과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유지하지 못할 때 우리는 소외를 맛보고 외로움을 느끼며 때로는 불화를 일으키고 불행을 자초합니다. 이야기 속에서 스승은 타인을 먼저 생각함으로써 자신을 지키는 지혜의 등불을 맹인에게 들려 주었다. 맹인은 그 등불을 보존하지 못했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맹인과 충돌한 사람은 비록 눈은 뜨고 있었지만 무질서한 인관관계 속에서 등불을 마련하는 여유와 지혜가 모자랐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행복한 인간관계, 즉 바람직한 인간관계란 인격적인 관계라야 하며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할 때 이루어지는 것. 선인장처럼 자기보호를 위한 가시를 곤두세우고 타인의 삶을 지켜보기만 한다면 우리는 사람들의 사회 속에서 언제까지나 이방인으로 머물게 될 것이며 더군다나 서로를 감싸 안는 따스한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다. 원만한 인간관계, 바람직한 인간관계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상호존중에 그 바탕을 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한 등불을 들고 살아감으로써 바람직한 인간관계 안에서 우리의 삶을 정립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가 제게 각별히 좋아하는 구약 성경을 꼽으라 하신다면 코헬렛과 잠언이라고 말합니다. 코헬렛과 잠언은 구약 성경 속 지혜 문학의 쌍두마차입니다. 코헬렛은 인생의 산전수전과 허망함을 경험한 현인의 지혜로 가득합니다. 모든 것이 헛된 인생사안에서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만이 최고의 선택임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잠언은 각자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지혜를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룹니다. 잠언이 다루는 주제는 오늘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일 직면하는 문제들입니다. 가끔씩 세상과 인간에 대해 실망하고 좌절할 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 앞에 섰을 때, 제가 즉시 펴드는 책이 코헬렛이요 잠언입니다. 쿵쾅거리는 마음을 일단 진정시킨 후, 심호흡을 좀 하다, 천천히 코헬렛과 잠언을 펴서 읽기 시작하면, 오래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잠언 속 지혜의 스승들이 외치는 권고들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촌철살인의 말씀은 오늘 우리들을 자극하고 일깨웁니다. 지혜의 스승들은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잠깐 브레이크를 잡으라고 외칩니다. 급히 가던 길을 멈추게 하고,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라고 권고합니다. 잠언 속 현인들은 분노하고 힘겨워하는 우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진정시킵니다. 한 걸음 물러나서 사건을 바라보도록 초대합니다. 문제를 한템포 늦춰서 바라보도록, 객관적 입장,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보도록 요청합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도록 안내합니다. 대표 저자인 솔로몬은 잠언을 통해 거룩하고 고상한 일들 뿐만 아니라, 의식주를 포함한 매일의 평범한 일상 안에서도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고 역사하시기에, 주님 마음에 들게, 지혜롭게 처신할 것을 당부합니다. 솔로몬은 참으로 박학다식했고, 지적 탐구심이 강했다. 그는 한 인간의 구체적이고 세부족인 삶의 요소 하나 하나를 주님 지혜의 눈으로 바라고자 노력했다. 그의 관심은 끝도 없었다. 개인의 행실, 남녀관계, 사업, 부, 자선, 야망, 훈육, 빚, 육아, 성품, 술, 정치, 복수, 경건... 그 숱한 주제들에 대해서 잠언은 소상하게 다루고 있다. 잠언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지혜를 구하고, 얻고, 깨달으라고 권고합니다. 잠언은 또한 반복하여 주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강조합니다. 잠언은 금언, 비유, 속담, 격언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한자어 '잠언'(箴言)을 풀이하면 ‘바늘로 찌르는 말씀’ 입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잠언 내용의 대부분은 금언, 속담, 격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이 어렵지도 않고, 짤막하고 간결합니다, 읽어 내려가다보면 요즘 시대와 부합하지 않은 부분도 있으니 잘 새겨서 읽으셔야 합니다. “아이를 훈육하는 데에 주저하지 마라. 때로 때려도 죽지는 않는다. 아이를 매로 때리는 것은 그의 목숨을 저승에서 구해 해는 일이다.”(잠언 23장 13~14절) 자녀 교육에 있어 체벌을 정당화하는 뉘앙스인데, 요즘 그랬다가는 큰 일 나니 절대로 그러시면 안 됩니다. 반면에 오늘 날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유용한 구절이 있으니 바로 술꾼들에 대한 충고 말씀입니다. “빛깔이 좋다고 술을 들여다보지 마라. 그것이 잔 속에서 광채를 낸다고 해도, 목구멍에 매끄럽게 넘어간다 해도 그러지 마라. 결국은 뱀처럼 물고 살무사처럼 독을 쏜다. 네 눈은 이상한 것들을 보게 되고 네 마음은 괴상한 소리를 지껄이게 된다. 너는 바다 한 가운데에 누운 자와 같고 돛대 꼭대기에 누운 자와 같아진다. '사람들이 날 때려도 난 아프지 않아. 사람들이 날 쳐도 난 아무렇지 않아. 언제면 술이 깨지? 그러면 다시 술을 찾아 나서야지!' 하고 말한다.”(잠언 23장 31~35절) 술로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진작 읽었으면 참 좋았을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정의와 공정을 실천함이, 주님께는 제물보다 낫다.”(잠언 21장 3절) “빈곤한 이의 울부짖음에 귀를 막는 자는,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대답을 얻지 못한다.”(잠언 21장 12절) 의인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입니다. 혹시 넘어졌을 때, 하느님의 물때임을 알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하느님의 이끄심을 받는 축복된 우리들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당신이 세상으로부터 받고 싶은 것을 세상에 주어라. 그것이 결국 당신이 받게 될 것이니까'' - 게리 주커브 - |
♡2373회 “지금까지 살았던 인생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인생을 허무하지 않은 - 인생을 살아라.”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2월 15일(코린토1서 1장~ ) 헬렌 켈러는 ''교육의 최고의 성과는 관용이다.'' 《꿈은 희망을 낳는다.》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현명하다는 것은 아름답게 꿈을 꾸는 것. 산다는 것은 꿈이 있다는 것. 꿈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 희망이 있다는 것은 이상이 있다는 것, 비전을 지닌다는 것. 비전을 지닌다는 것은 인생의 목표가 있다는 것. 꿈을 상실한 사람은 새가 두 날개를 잃은 것과 같다. 비록 힘없는 하찮은 존재라 하더라도 꿈을 가질 때 얼굴은 밝아지고 생동감이 흐르며 눈에는 광채가 생기고 발걸음은 활기를 띠고 태도는 씩씩해 지는 것. 꿈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꿈꾸는 자가 인생을 멋있게 사는 사람이다. 꿈이 있는 사람이 참 인생을 아는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이다. 꿈이 있는 사람이 인생을 사는 듯이 살고, 아름다운 발자취를 후세에 남기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실러의 <꿈은 희망을 낳는다> 중에서] 세상 사람들 가운데에는 인생의 목적지를 모르거나, 아니면 목적지도 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랑 같은 인생을 살다 가는 사람들이 있다. 신앙인은 “인생이란, 하느님을 향해서 가는 여행” 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행이기 때문에 ‘나그네’ 라는 점은 같지만, 목적지가 분명하기 때문에 신앙인의 인생은 ‘유랑’ 이 아니라, ‘귀성 여행’ 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그 여행을 함께 하자는 초대입니다. 특별히 사도로 뽑힌 사람들은 그 여행을 함께 하는 승객이면서 동시에 승무원의 임무도 수행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관복음서만 보면, 예수님께서 어부들을 보시자마자 제자로 부르시고, 어부들은 부르심을 받자마자 응답하고 따라나선 것으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요한복음 1장의 이야기와 합해서 생각하면, 예수님께서는 어부들을 만나시고 나서 몇 달 후에 그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니면, 어부들이 부르심을 받고 나서 몇 달 후에 응답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떻든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을 따라나서기 전에 이미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을 믿고 있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다. 그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난 때와 따라나선 때 사이의 몇 달의 기간은,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할 준비를 하는 기간, 즉 일종의 ‘예비 기간’ 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부들은 그 기간 동안 충분히 묵상하고, 심사숙고 했을 것.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루카 5,4-7) 어쩌면 예수님께서 먼저 어부들에게 “고기를 얼마나 잡았느냐?” 라고 물으시고, 어부들이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라고 대답한 뒤에,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라고 말씀하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바로 이 순서로 되어 있다. 어부들이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일은, “먹고사는 일만 신경 쓰면서 사는 인생의 허무함” 을 상징한다고 해석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 지상에서의 인생은 결국 물질적으로는 ‘빈손’ 으로 끝나는 인생입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라는 말씀은, 겉으로는 “다른 곳에서 새로 시도해 보아라.” 라는 뜻인데, 물고기를 잡는 일 자체를 상징으로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살았던 인생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인생을 허무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라.” 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인생을 살게 해 주겠다는 말씀일 수도 있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다.” 아직 정식으로 제자가 된 것이 아닌데도, 제자로서 스승의 지시에 순종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 말은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대답으로 생각할 수 있는 말입니다. 어부들은 예수님의 지시대로 해서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됩니다. 그냥 많은 물고기를 잡은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그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분명히 기적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그런 기적을 일으키셨을까? 어부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려고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또 당신을 믿게 하려고 하신 일도 아닙니다. 어부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를 많이 잡은 기적’ 은 “주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며, 주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인간의 인생은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 기적이라고 해석됩니다.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루카 5,8-11) 여기서 베드로 사도가 한 말은, “주님, 저는 주님 앞에 서 있을 수도 없는,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고백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주님의 권능에 압도되어서 주님에 대한 경외심을 고백하는 말이고,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깨달았다고, 또 먹고사는 일이나 신경 쓰면서 살고 있는 자기 인생이 참으로 초라한 것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하는 말입니다.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베드로 사도와 같은 심정으로, 같은 고백을 했음을 나타냅니다.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지금까지 너는 먹고살기 위해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는 도로서 살게 될 것이다.”, 즉 당신의 제자가 되라고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낚는다.’ 여기서는 “물(죽음) 속에 있는 사람들을 물(죽음) 밖으로 끄집어낸다.” “사람들을 구원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신 어부는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입니다.(마르 1,16-20) 그 자리에는 네 명의 사도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더 있었을 텐데, 예수님께서는 그 네 명만 부르셨다. 신앙인이 되라고 부르시는 일은 ‘모든 사람’ 을 대상으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제자(사도)가 되라고 부르신 일은 특별히 선택하신 사람들에게만 하신 일입니다. 그것은 차별 대우가 아니라, 사도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을 뽑으신 일입니다. 저희가 살아온 인생의 모든 날에 발자국이 주님 은총이었음을 앞으로 우리들의 인생의 발자국이 더 큰 은총으로 살아갈 수 있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굳은 결심은 가장 유용한 지식이다.'' - 나폴레옹 - |
♡2374회 용서의 출발점은 ‘감사드리는 마음’ 입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2월 16일(코린토2서 1장~ ) 칼릴 지브란은 ''굶주린 사람에게 배고픔의 고통을 참아야 한다는 충고를 대식가(大食家)가 어찌 진지하게 얘기할 수 있겠는가?'' 《그대 인생의 주인은 자신입니다.》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말한다. 신중하라 그대를 썩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고 그대를 익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세상이 변하기를 소망하지 말고 그대 자신이 변하기를 소망하라. 세상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불만과 실패라는 이름의 불청객이 찾아와서 포기를 종용하고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는 성공과 희망이라는 이름의 초청객이 찾아와서 도전을 장려한다. 그대 인생의 주인은 세상이 아니라 그대 자신이다 매정한 종의 비유 1) 용서의 출발점은 ‘감사드리는 마음’ 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형제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는 것, 그것이 용서입니다. 주님께 직접 은혜를 갚을 길은 없다. 그래도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형제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는 것. 형제를 용서하는 것을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은,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마음이 너무 작거나 없기 때문입니다. 2) 용서는 ‘나의 자비’ 를 형제에게 주는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주님의 자비’ 를 형제에게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에게 거저 주신 것을 나누어 주는 일이기 때문에 용서를 실천한 다음에 생색낼 것도 없고, 대가를 요구할 것도 없다. 3) 용서는 형제에게 선과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고, 형제를 위한 일이지만, 선과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내가 덕을 쌓는 일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나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죄를 짓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용서하려고 노력해도 용서가 안 되는 경우와 처음부터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경우는 구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4) 주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용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용서하라고 명령만 하시고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서로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것. 그래서 자신의 힘만으로는 용서하기가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늘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마태 18,23-27) 우리 입장에서는 이 이야기에 언급된 ‘만 탈렌트’ 를 주님께 갚아야 할 ‘빚’ 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 로 생각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비유에서, 주인이 종에게 가족들과 재산을 다 팔아서 빚을 갚으라고 명령했다는 말은, 주님의 은혜는 인간의 힘으로는 갚을 수 없는 무한히 큰 은혜라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일 뿐이고, 실제로 주님께서 그렇게 무서운 분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종이 “다 갚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갚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고, 그냥 애원하는 말이고, ‘빈 말’ 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찬미하고 찬양하는 기도를 하거나 성가를 부를 때가 많은데, 마음으로 깊이 느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또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그 기도나 성가는 모두 ‘빈 말’ 이 됩니다. 주인이 모든 부채를 탕감해 준 일은, ‘만 탈렌트’ 나 되는 빚은 빚이 아니라 은혜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주인은 탕감해 주면서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은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것” 임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 은 있다. 주인이 자비를 베푼 것처럼 종도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33절) 이 이야기에서, 종이 주인에게 감사를 드렸다는 말이 전혀 없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복음서 저자가 일부러 생략한 것은 아닐 것이고, 그 종이 자기가 은혜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서 주인에게 고마워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우리도 주님에게서 은혜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주님께 감사기도 드리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는데, 그러면서도 이웃에게 은혜를 베푼 것에 대해서는 생색을 낼 때가 많다. 우리가 주님의 용서를 받는 것은 우리의 권한도 아니고, 주님의 의무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용서를 요구할 수 없고, 간청할 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은 ‘자비’ 를 베풀어 주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28-35)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여기서도 ‘빚’ 을 ‘은혜’ 로 생각한다면, ‘백 데나리온’ 은 동료에게 베풀어 주어야 할 ‘작은 은혜’ 로 생각할 수 있다. 비유에 나오는 종은 주인에게서 도저히 갚을 길이 없는 ‘큰 은혜’ 를 받았으면서도, 동료에게 ‘아주 작은 은혜’ 를 베풀어 주는 것을 거절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당신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당신에게 갚으라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나누라는 것. 그런데 많은 경우에, 왜 그렇게 용서하는 일이 힘들고 어려울까? 사실, 비유에 나오는 ‘매정한 종’ 과 같은 사람은 실제로는 별로 없고, 어떻게든 용서하려고 노력하지만 상처가 너무 커서, 그래서 용서가 안 되는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은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1) 상처가 아물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은 며칠 정도가 아니라 몇 년, 또는 몇 십 년이 될 수도 있다. 2) 나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이 미안하다고 말하기는커녕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라고 우기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정말로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바로 그런 때에, 그 사람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도록 그를 인도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받은 은혜를 새기고 늘 감사하고, 그 은혜 안에서 우리들이 바라는 모든 소망을 이루며 살아가는 축복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건강이 육체와 관련이 있듯 정성과 마음을 다하는 태도는 영혼과 관계가 있다.'' - 톨스토이 - |
♡2375회 ''두려움과 걱정은 풍랑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2월 17일(갈라티아서 1장~ ) Fr. 자크 필립는 "그들은 모든 것을 계산하고 예견하며, 하느님을 의지하는 대신 자기 힘을 믿으면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 그러니 어떻게 섭리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걱정을 버리는 6가지 방법》 1.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꾸라. 문제를 두고 걱정부터 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이 아니라, 나쁜 습관에 불과하다. 걱정하는 습관을 버리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내게 생긴 문제들이 골칫거리가 아니라, 해결점을 찾기 위해 도전하는 힘을 주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자.2. 기분 좋은 잠, 상쾌한 아침을! 매일 잠 잠자리에 들면서 그 날의 걱정거리들을 되뇌이는 것은 내일까지 걱정하는 하루로 만들어 버린다. 잠자리에 들 때 마음을 편안히 하고,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자.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나면 어제의 문제들을 냉철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될 것.3.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라 오늘 해결해야 할 산더미 같은 쌓인 일과 문제들을 헤아려 보느라 마음을 무겁게 하지 말라. 4.긍정적인 말을 하라 생각을 말로 하지만 말에 따라서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난 못해", "큰일이야!", "어떻게 하지?" 이런 식의 부정적인 말들을 모두 버리자 긍정적이고 확신에 찬 말들로 생활을 채우라. 말하는 습관을 바꾸는 것은 매순간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5. 도움을 주는 글귀들을 외우자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고 힘을 내게 하는좋은 말들을 외워 두자. 마음에 와 닿는 구절, 명언, 책에서 읽은 아름다운 말들이 나를 성장시켜 주는 한마디가 될 수 있다. 그런 말들이 무의식중에 창조적인 생각으로 바뀌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한다.6.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만남을 가지라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좋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마음과 생각을 풍요롭고 새롭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내 모습을 반성해 보고 서로를 격려함으로써 약한 의지를 다시 세울 수 있다. 성경공부 모임이나 자원봉사단체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기회다. 사람들이 문화 인류학자에게 이렇게 질문하였다. “인류의 문명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그러자 인류학자는 15,000년 된 사람의 치유된 허벅지 뼈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자연의 세계에서 골절된 동물은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움직이기 어렵기에 다른 동물에게 공격당할 수 있다. 움직이기 어렵기에 동료들을 따라갈 수 없다. 동물은 골절당한 동료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뼈는 치유된 허벅지입니다. 이는 당시의 사람들이 골절된 동료를 도왔다는 증거입니다. 골절되어 움직일 수 없는 동료와 함께 했다는 증거입니다. 인류의 문명은 이렇게 서로를 도와주면서 시작되었다.” 그렇습니다. 다른 동물은 태어나서 곧 걷고, 날고, 뛸 수 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10년은 보살펴야 합니다. 그렇게 10년 동안 사랑받으면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걷고 뛰지 못하는 시간 동안 말을 배우고, 글을 배우며, 공동체의 삶을 배우게 됩니다. 오랜 시간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공동체를 형성해야 했다. 그것이 인류의 문명과 문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풍랑에 흔들리는 배에서 사람들은 겁을 먹고 두려워합니다. 모두가 두려워 떨고 있을 때 한 사람이라도 침착하게 방법을 찾는다면 배는 풍랑을 이겨낼 수 있다고 합니다. 두려움과 걱정은 풍랑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풍랑에 흔들리는 배에서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있지 않느냐!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제자들은 풍랑을 이겨낼 수 있는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두려움과 걱정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바뀌었다. 어두운 밤바다에서 배들이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북극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캄캄한 밤바다에서 배들이 육지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멀리서 빛을 비추는 등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역사에 북극성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등대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가 있었다. 석가모니라는 현자가 있었다. 공자, 맹자, 장자, 노자와 같은 사상가가 있었다. 성서에는 예언자들이 있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어떤 예언자도 따를 수 없는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셨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많은 걱정을 하셨다. ‘마치 내가 너희를 이리 때 속으로 보내는 것 같구나!’ 제자들이 가는 길이 결코 쉬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러면서도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옷도 지니지 마라.' 현실의 삶에서 꼭 필요한 것들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주님과 함께 지냈고, 주님의 가르침을 들었던 제자들이 파견되어서 주어진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소유와 욕심을 버릴 때, 우리는 참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 오늘 하루 ‘나의 세례명’ 은 무엇인지, 나의 성인께서는 어떤 삶을 사셨는지 묵상했으면 좋겠다. 내 뜻이 이루어지기보다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먼저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먼저 하느님의 은혜를 받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은혜로운 우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의 은혜로움으로 우리들이 원하는 이들이 이루어지고 회복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비판과 험담의 주제에 있어서는 그것들을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고 마음속에서 파헤칠 필요조차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마음속에서 확실하게 분별하고자 하더라도 그것이 이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판과 험담하는 입은 스스로 멸망할 것입니다.” - 교부 푀멘 - |
♡2376회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2월 18일(콜로세서 1장~ ) 마하트마 간디는 ''땅을 보살피는 일을 잊는 것은 우리 자신을 잊은 것이나 다름없다.'' 《둥글게 사는 사람》지구가 둥글고 태양이 둥글고 달이 둥근 이유를 아십니까? 바로 우리의 삶을 둥글게 살라는 무언의 표상입니다. 둥글게 일하십시오. 모나게 일 하면 다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둥글게 즐기십시오. 모나게 즐기면 끝에 가서 꼭 싸우게 됩니다. 둥글게 말을 하십시오. 모난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둥근 사람은 친구가 찾아오고 둥근 사람은 볼수록 넉넉합니다. 아무리 모난 마음으로 왔다가도 둥근 사람의 따뜻함에 그만 녹아지고 아무리 큰 문제를 안고와도 둥근 사람에게는 작아지고 맙니다. 그 이유는 언제나 지구가 둥글고 달이 둥글고 해가 둥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각자 어떠한 시스템 속에 속해서 살아갑니다. 가정이라는 시스템, 직장이나 나라라는 시스템, 혹은 종교 시스템도 있다. 시스템은 사람을 담는 그릇입니다. 사람들은 그 시스템 속에서 생활합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마인드가 어떻냐에 따라 그 시스템이 오래가기도 하고 자멸하기도 합니다. 시스템 자체를 지키려 하면 자멸하고 그 시스템 속에 속한 사람을 위하면 오래갑니다. 코로나라는 새로운 상황에서 지금 신천지와 개신교는 큰 시스템상의 어려움을 드러내었다. 시스템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이렇게 가면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다행히 가톨릭은 이러한 상황의 변화에 따라 빠른 대처를 잘하고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가톨릭교회도 그렇게 빠른 시스템 변화를 이루지는 못했다. 시대에 맞지 않는 전례와 권력 구조로 여러 종파로 분열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다른 종파들보다는 상황에 잘 대처하고 있는 유연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왜 시스템이 경직되고 상황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게 되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자신이 속한 시스템을 얼마나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 한 나라가 망하는 역사를 살펴보면 좋을 것. 모든 시스템은 같은 방식으로 붕괴하기에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청나라가 망하게 된 예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1,2차 아편전쟁으로 청나라는 풍비박산이 난 상태였다. 이 와중에 작은 희망까지 발로 뻥 차게 만들어 결국 청나라의 몰락을 자초한 한 여자가 있었다. 바로 함풍제의 세 번째 황후 서태후입니다. 함풍제의 첫째 부인은 일찍 죽고 둘째 부인은 아들이 없었다. 서태후가 다음 황제가 될 동치제를 낳았다. 아편전쟁 이후 함풍제가 사망하자 서태후는 어린 아들 동치제를 앞세워 수렴청정을 합니다. 청나라는 그야말로 서태후의 손아귀에 있었다. 한편 아편전쟁으로 나라가 꼴이 아닌 상황에서 중국은 양무운동을 시작합니다. 양무운동이란 서양의 신식군사기술을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는 와중 서태후의 아들 동치제가 천연두에 걸립니다. 서태후는 그가 아들임에도 황제의 자리에서 몰아내고 자신의 먼 조카이자 미성년자인 광서제를 황제로 앉힙니다. 계속 자신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양무운동은 나름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광서제는 서양의 전함들을 78척이나 만들고 신식무기들을 받아들여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다. 그런데 조선을 넘보는 일본과 전쟁을 해야만 했다. 청나라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서 양무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때 서태후는 자신이 별장으로 쓰던 이화원을 엄청난 크기로 확장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돈이 부족하다는 말에 서태후는 해군에 돈 쓰지 말고 그것으로 자신의 별장을 꾸미라고 명합니다. 그러다 막상 전쟁이 발, 배는 많았으나 기름이 없어서 시동이 안 걸리고 대포는 있었으나 화약이 없어서 포탄을 쏠 수 없었다. 그렇게 청나라는 일본에 패배하고 맙니다. 이에 광서제는 자신을 황제로 앉힌 서태후를 몰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치가 썩으니 군사가 강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안 것. 그렇게 변법자강운동이 시작됩니다. 외국의 정치와 문화, 기술을 도입하자는 운동입니다. 그러나 서태후는 자신의 줄을 이용해 이런 광서제를 몰아냅니다. 개혁이 실패한 것. 그리고 자신이 죽기 하루 전 광서제를 독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자신도 죽고 3살짜리 선통제를 왕으로 앉혔는데 그로 인해 청나라에 대혼란이 일어납니다. 선통제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서태후는 죽으면서까지 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끌었다. 시스템을 변화시키길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양과 일본에까지 밀려 그것을 극복해보자 여러 운동이 일어났지만 서태후는 끝까지 변화를 원치 않았다. 그 이유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어떠한 시스템이 좋지 않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유지하려 하는 이유는 그 시스템에 결탁하여 자기 이익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은 상황의 변화보다는 자기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에 의해 붕괴합니다. 어떤 집에서는 밥 먹을 때 말을 하면 복이 나간다고 밥 먹으며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 그 자녀에게만 돈을 10원씩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 시스템을 지금 상황에도 적용하려 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것은 자녀를 위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그때에는 옳았더라도 지금은 옳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이 시스템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 예수님 당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려던 이들이었다. 그것이 붕괴되면 자신들의 이익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라며 따집니다. 옛 시스템을 강요하는 것.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라고 하시며, 시스템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라고 하시며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는 그들을 나무라십니다. 시스템 안에 담긴 포도주는 발효하면서 변하는데, 그것을 따라오지 못하는 부대 안에 갇히게 되면 부대도 터지고 포도주도 버립니다. 오직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자만이 시스템을 유연하게 유지할 수 있다. 교회에서도 단체들이 오래 못 가는 이유가 그 창설자의 정신보다는 형식만 지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창설자가 그것을 만들 때 그 시스템이 맞았을 수 있으나 지금은 시대와 사람이 변했다. 그러면 그것에 맞춰 변화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러면 결국 그 시스템은 사라지는 것. 단식의 주체가 그리스도이시듯, 시스템의 지향점은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변화에서든 유연할 수 있다. 시스템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 시스템을 유지하는 기득권들의 마음에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십자가로 우리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주어진 삶의 자리에 은혜로운 성령의 불이 타오르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있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창조는 고민속에서 나오고 발전은 고생 속에서 움튼다.'' - 밝은 사회 - |
♡2377회 뒤로 미루는 십자가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짊어지는 십자가를 바라봐야 합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2월 19일(테살1서 1장~ )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글자에 매인 학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거스르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판단합니다. 그들은 예언적 말씀에 마음을 닫아걸고 다른 사람들의 삶은 중요하지 않으며 단지 말과 규율로 이루어진 그들의 틀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정성스럽게 살게 하소서》나이드는 것에 감사 할 수 있으므로 나의 삶을 기쁨으로 엮게하소서 뒤를 돌아보면서 덧없음의 눈물만 흘리거나 남을 원망 하면서 삶에 대한 허무감에 젖지 않고 지금의 나를 있게한 성스러운 존재와 옆에 있는 마음의 지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일구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으므로 정말로 기쁜 웃음을 갖게 하소서. 정직하게 나의 삶을 돌아보면 부끄럼 없이는 떠올리지 못하는 일들이 많고 후회스러운 일들도 많았다. 그런 과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삶에 자족하게 하시고 나의 미래를 설레임으로 맞을 수 있게 하소서. 완벽함을 추구하여 빈틈없는 삶보다는 조금 부족하여도 넉넉함으로 삶의 향기를 갖게하소서. 어차피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서로의 모자람을 채워 어우러 사는 삶을 배우게 하소서. 인생의 큰 흐름이 소망과 감사로 이루어져 있기에 얼마간의 슬픔이나 우울 따위는 그 흐름 속에 쉽게 녹아 없어질 수 있음을 알게하소서. 나의 부족에도 이런 행운과 함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하심을 감사하며 더 나이들어도 깊어지는 기쁨과 소망의 골짜기에 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나이 들었지만 맑고 상큼한 마음으로 현재를 살고 미래를 받는 일에 마음을 다하면서 삶을 감사함으로 소중하게 엮어가게 하소서. 작가마다 글을 쓰는 습관이 다양합니다. 어떤 작가는 밖에서 열쇠로 잠가서 방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벌거벗은 상태로 있어서 나가지 못하고 글만 쓰는 작가도 있다. 썩은 사과를 서랍에 넣어두고서 글 쓰는 것이 막혔을 때 냄새로 자극을 받는 작가도 있고, 어떤 작가는 글이 안 써질 때 수학 문제를 푼다고 합니다. 저희부부도 부족하지만, 묵상말씀을 2,377회로 전달할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지금 이 순간도 성경 말씀을 듣고 묵상하면서 말씀을 준비하는 주님의 종으로 저희부부는 글 쓰는 습관은 없는 것 같다. 굳이 있다면 주님께서 부르는 순간까지 어떻게든 계속해서 글을 쓰려고 한다는것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서,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작가들이 다양한 집필 습관을 지니고 있지만, 모든 작가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계속 썼다’ 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글을 쓰는 꾸준함이 아름답고 멋진 글이 나오게 하는 가장 큰 이유였던 것. 주님을 따르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주님을 따르는 방법은 아주 다양합니다. 기도와 묵상 등의 영성 생활을 통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봉사와 희생을 통해서, 그 밖의 다양한 방법으로 주님을 따를 수 있다. 그 어떤 방법도 다 훌륭하고, 좋은 것. 그런데 주님을 잘 따르는 사람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떤 기도를 했느냐가 아니라 꾸준히 기도했는가였다. 한 번의 커다란 희생과 봉사를 했느냐가 아니라 꾸준히 희생과 봉사를 했느냐였다. 기분이 좋을 때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안에서 매 순간 주님을 바라보면서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르는 것. 주님께서 인류의 죄에 대해 속죄하시려고 짊어지신 십자가를 묵상하고 경배하는 삶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르고 있는지를 지금 이 순간 반성했으면 합니다. 이는 어느 한순간, 그리고 한 번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꾸준히 계속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 왜냐하면, 나의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달아 놓은 구리 뱀을 쳐다본 사람만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죄의 홍수 안에서 주님을 바라봐야지만 살 수 있다. 주님께서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죄가 용서되는 치유가 있을 것이며, 영원한 생명도 주어지게 됩니다. 나의 꾸준함은 어떠했을까요? 특히 지금 이 순간 주님께 꾸준한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성 엑스페디투스의 성화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이 성인의 축일은 4월 19일로, 기원후 300년경에 활동하셨던 것으로 나와 있더군요. 그런데 이 성인의 성화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까마귀를 발로 밟고 있고,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있었다. 이 까마귀 부리 부분에 라틴어로 Cras(내일)이란 단어가 적혀 있었고, 십자가에는 Hodie(오늘)가 적혀 있었다. 그래서일까요? 18세기 이후 독일과 시칠리아 지역에서는 긴박한 상황에 부닥칠 때 성인께 기도를 요청한다고 합니다. 이 성화를 유심히 바라봅니다. 성인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 바로 지금 해야 할 것을 독려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우리는 늘 ‘내일’ 을 말합니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이 문제가 해결되면…. 그러나 성인은 이유를 말하면서 하지 않는, 그래서 찾을 수밖에 없는 ‘내일’ 을 밟아서 없애야 한다고 하시는 것 같다. 대신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짊어져야 할 자신의 십자가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뒤로 미루는 십자가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짊어지는 십자가를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서 핑계가 없는 삶을... 바빠서 못했다고 말할 수 없는 삶을... 그래서 나의 십자가를 지고 거꾸로 살아 깨닫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지금 이 순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축복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성 엑스페디투스의 성화 --이 까마귀 부리 부분에 라틴어로 Cras(내일)이란 단어가 적혀 있었고, 십자가에는 Hodie(오늘)가 적혀 있었다. ![]() 💖💖💖 오늘의 명언 💖💖💖 “주님, 저의 머리 위로 당신의 손길을 얹어 주소서. 만일 당신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 성 필립보 네리 - |
♡2378회 저지른 과오나 잘못이 있다면 그 잘못에 대해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2월 20일(티모1서 1장~ ) 로건 피어셜 스미스는 ''젊은이가 꾸미는 것을 비웃지 말라. 그는 그저 자신의 얼굴을 찾기 위해서 하나하나 차례로 걸쳐보는 것이다.'' 《맑고 좋은 생각만 하면 좋겠습니다.》남의 좋은 점만을 찾다 보면 자신도 언젠가 그 사람을 닮아 갑니다. 남의 좋은 점을 말하면 언젠가 자신도 좋은 말을 듣게 됩니다. 참 맑고 좋은 생각을 가지고 나머지 날들을 수 놓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코끝이 찡해지는 감격을 가질 수 있는 티 없이 맑은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누구를 만나든 그의 장점을 보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많이 칭찬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말을 할 때마다 좋은 말을 하고, 그 말에 진실만 담는 예쁜 마음 그릇이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 가끔 꿈 얘기를 듣습니다. 좋은 꿈을 꾸어서 복권을 샀다는 사람이 있다. 반면 무서운 악몽에 시달려 밤잠을 설치고 그 꿈 때문에 마음이 흔들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꿈은 꿈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꿈이고 아무리 험해도 꿈입니다. 그러므로 꿈은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좋게 생각하고 기뻐하고 또 준비하면 되는 것. 꿈에 끌려 다녀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꿈대로 안 좋은 일이 생기게 됩니다. 좋지 않은 꿈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꿈을 다스리지 못하고 그 꿈에 매여 집착하기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것. 그러므로 꿈을 꿈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때로는 죄를 짓고 그 죄책감 때문에 꿈을 꾸는 사람도 있다. 좋지 않은 일을 행하여서 악몽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하느님께서 벌을 주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벌을 주시는 것보다 본인 스스로 불안한 마음과 죄책감으로 몸을 괴롭히기 때문에 상황이 나빠지는 것.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그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저지른 과오나 잘못이 있다면 그 잘못에 대해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하고 용서를 넘어 아버지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셨다. 오늘 우리의 허물에 대해서도 언제나 용서해 주시고 얽매인 것을 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죄의 고백을 통해 용서의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자유를 회복해야 합니다. 죄의 종으로 익숙해져서 그냥 그대로 편안함을 즐겨서는 안 됩니다.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 대한 여러 소문을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났다” 고 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헤로데는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하면서 예수님을 만나보려고 하였다. 헤로데가 불안해하고 당황한 것은 당연합니다. 사람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소유한 왕이라 할지라도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 죄 값을 스스로 치를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존재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에 예수님이 무서워진 것. 사랑을 전하러 오신 분을 심판관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심판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잘못한 것이 부끄러워서 그렇습니다." 내면에 굳은 심지가 있는 사람은 결코 당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뻐합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1요한 1,9) 우리의 하느님은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에제33,11) 혹시라도 마음의 불안이 있다면 하느님의 자비를 굳게 믿고 주님의 품안에서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혹 두렵습니까? 거짓을 벗어 버리고 진리를 추구하십시오! 용서하시는 주님과의 깊은 만남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이득형씨는 권위와 권력을 설명합니다. 권위는 1)인간적인 매력과 인격에 매어지는 것. 2)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따라옴. 3)자리에 관계없이 평가가 높아감. 4)죽은 뒤에도 없어지지 않음. 5)지도자 선택의 첫째가는 기준이 됨. 권력은 1)직제상 지위(자리)에 주어지는 것. 2)사람들을 덮어놓고 복종시킴. 3)자리가 높아질수록 더 강해짐. 4)권위가 없는 사람일수록 더 휘두름. 5)그 자리를 떠나는 동시에 없어져버림. 권위와 권력은 분명히 다릅니다. 헤로데는 권력을 잡았지만 권위는 없었다. 헤로데는 권력을 가지고도 불안해하였다. 권력을 이용하여 많은 사람에게 폭력을 사용했고 특히 당시 유다인들이 최고의 예언자로 알고 따르던 세례자 요한을 죽였는데 그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소리도 들렸고 여러 소문이 있었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어도 ‘도둑이 제 발이 저린다.’ 고, “때린 놈은 발을 오그리고 자도 맞은 놈은 발을 펴고 잔다’ 고 합니다. 자기가 한 짓을 알기에 늘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세속적인 권력이 아니라 권위를 지니고 살아야 하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혹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지배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권력의 마음입니다. ‘돈이면 다 된다’ 는 식의 마음으로 이웃에게 재물이나 지위를 가지고 대접 받고자한다면 그에게서 권위는 찾을 수 없을 것. 권위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로마13,1-2) 주님께서 생명을 주관하는 권위(루가12,5)를 가지셨고, 말씀대로 이루시는 힘을 지니셨다.(요한5,39) 또한 가르침대로 행하심으로써 권위를 지키셨다. 우리도 삶의 자리에서 각자의 권위를 키워야 하겠다(2고린10,8).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자녀는 자녀로서, 아내는 아내로 남편은 남편으로서의 위치기 있다. 각자의 위치에 걸 맞는 삶을 지금 이 순간 살아감으로써 권위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직장이든 가정에서든 각기 권위가 살아나기를 기원합니다. “왜 걱정하십니까? 지금 이 순간 기도할 수 있는데” 우리들은 어느 누구도 어쩌지 못할 ‘주님의 햇살과 밝은 기운’ 을 품고 있으니,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의 이끄심으로 축복된 예수쟁이로 살아가는 은총과 축복 가득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온다.'' - 김연아 - |
♡2379회 용서를 위해서는 ‘피’ 가 필요합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2월 21일(히브리서 1장~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가정 안에서 당신의 위치가 어떠한지》가정 안에서 당신의 위치가 어떠한지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그들을 돌보고 그들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우선 그것들을 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라야 당신은 다른 곳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밥 한 끼 제공하기는 쉽지만 우리 가정 안에서 누군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외롭고 힘들어 할 때 그를 위로하는 건 참으로 어렵습니다. 나는 당신이 당신 가정 안의 가난한 사람을 찾아 나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의 사랑은 거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나는 당신이 주변에서 기쁜 소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이웃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바랍니다. 바리사이들이 또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이번엔 안식일에 남의 밀 이삭을 뜯어 먹는 예수님의 제자들 때문입니다. 과연 바리사이들이 안식을 참으로 지내고 있는 것인지, 제자들이 안식을 지내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도 화가 나 있다. 그들은 어째서 안식일에도 안식을 찾지 못하는 것일까요? ‘tvN 어쩌다 어른’ 에서 상담학 전문가 ‘권수영 교수’ 가 나와 강의한 내용 중 ‘분노 조절 못 하는 아빠의 충격적 비밀’ 에 관한 것을 소개해드립니다. 경제적으로도 유복하고 자녀들도 잘 성장한 평범한 집의 가장입니다. 근데 이분이 권 교수에게 상담을 받으러 왔다. 분노 조절 장애 때문이란 것. 차가 깜빡이 켜지 않고 끼어들면 보복 운전을 하고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아 휴게소까지 쫓아 들어가 폭력을 행사하여 벌금과 구금, 심지어 감옥까지 갈 정도였다. 두 자녀에게 물질적 지원은 충분히 했지만,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두 자녀는 각자 방으로 그냥 들어가 버렸다. 이분은 “너희가 아빠를 무시하는 거야?” 라고 하며 급기야 아들에게 손찌검까지 합니다. 그렇게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고, 이혼하기 전에 상담 한번 받아보라고 해서 권 교수를 찾아온 것. 상담하던 중, 어린 시절 두번의 큰 상처를 기억해냅니다. 어렸을 때 바쁜 어머니가 큰아들을 묶어놓고 다녔다. 그때 엄청난 공포와 좌절, 분노 등이 자신에게 내재하여 있었던 것. 그다음은 엄마가 외삼촌에게 애가 말을 안 듣는다고 혼내주라고 하였다. 외삼촌은 어린아이의 머리를 흙탕물에 들이박고 숨이 멎어서 죽기 직전까지 가게 체벌하였다. 이 두 사건이 그의 심장에 커다란 분노로 남아있었던 것. 권수영 교수는 자녀에게 사과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사과하였다. 그러나 건성으로 하였다. 자녀도 건성으로 받아들였다. 권 교수는 제대로 하라고 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자신의 어렸을 때 이야기를 꺼냈다. 말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였을 것. 아직도 그것 때문에 영향을 받는 자신이 부끄러웠을 것이고, 그것 때문에 자녀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자신이 싫었을 것이고, 그렇지만 그렇게 한 이유를 제대로 보게 되어 마음이 편하기까지 하였을 것.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는데, 더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들이었다. 아들이 군대 가기 전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을 갔다. 그때 아들이 한 번도 못 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아빠, 사실 나 중학교 때 자살하려고 했어. 아빠 때문에. 근데 엄마가 불쌍해서 못 했어.” 이젠 아버지가 폭풍 눈물을 흘렸고 둘은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나의 상처를 타인에게 털어놓으면 이젠 나는 그 상처의 주체가 아니라 제삼자가 됩니다. 사실 상처는 내가 받은 것이 아니라 내 자아가 받은 것. 그 상처 입은 자아가 자기 자신이라 믿어온 것이 문제입니다. 두 물통이 있다. 겉으로 보기엔 똑같다. 그런데 한 물통은 상온이고 한 물통은 들어가서 오래 버티기 어려운 온도입니다. 어렸을 때의 상처를 안고 용서가 안 된 상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다시 그 고통을 느끼기를 두려워합니다. 거의 온천수의 온도의 물에 들어가 있는 사람과 같다. 1도만 더 높아져도 그때의 고통이 되살아납니다. 그래서 그 1도의 온도를 높일만한 일을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그 두려움이 표출되는 것이 분노입니다. 그러면 과거의 모든 상처를 다 용서하면 그만이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그런데 용서가 혼자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용서를 위해서는 ‘피’ 가 필요합니다. 이철환 작가의 예를 많이 드는데, 태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소매치기하며 사는 청년이었다. 동생을 통하여 어머니가 아파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는 말을 듣고도 병실에 올라가지 못합니다. 담배만 피우다 지하철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한 여자의 핸드백에서 돈뭉치를 소매치기합니다. 몇 달 뒤 동생에게 전화가 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 왜 돌아가셨느냐고 묻자 병원비가 없어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태수는 펄펄 뛰었다. 돈 없으면 죽어야 하는 나라, 이러니까 내가 이 꼴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러나 동생도 말합니다. 여자친구가 찾아오던 결혼자금만 있었어도 엄마를 살릴 수 있었다고. 그리고 그것을 소매치기한 장본인이 자신임을 안 태수는 더는 말을 잊지 못합니다. 어머니의 피가 자신의 심장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때 얻는 것이 ‘안식’ 입니다. 자기 심장에 그리스도의 피가 떨어지면 두 가지 큰 효과가 일어납니다. 내가 더 큰 죄인임을 알아 용서하게 되고, 또 그 피가 떨어져 죽은 내가 참 내가 아님을 아는 것. 자아가 나인 줄 알고 살았던 것을 알게 됩니다. 마치 이집트에서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라지는 것과 같다. 문설주에 피가 발라진다고 집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가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당사자임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용서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됩니다. 동시에 지금까지 그렇게 부글부글 끓고 있었던 내가 바로 자아였음을 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설설 끓고 있던 물에서 나와 그 물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는 것. 지금까지 개미가 물고 뜯고 있었던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집의 문설주였다. 상온의 물통이든, 뜨거운 물통이든 들어가 있지 말고 나와야 합니다. 상온의 물도 오래 끓이면 끓습니다. 나와서 제삼자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 물이 끓든 말라버리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더는 나에게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참된 안식입니다. 파라오로부터 우리를 분리해주시는 것. 나를 끓는 물속에서 빼내 주실 분은 나를 위해 피를 흘린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나의 구원자요 안식이 되는 것. 참된 안식을 얻은 이는 그래서 나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밑으로 내려갑시다. 그리고 삶의 자리에서 견디어 냅시다. 예수님과 함께 우리들 안에 성령의 불꽃이 타오르는 영광스러운 믿음의 종이 되시어, 우리들이 바라는 큰 희망을 이루어가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행운은 자주 문을 두드리나 미련한 자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덴마크속담 - |
♡2380회 “30분 후에 죽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사소한 일이나 바보 같은 일 그리고 - 무엇보다 나쁜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2월 22일(야고보서 1장~ ) 초서는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혓바닥을 억제하지 못한다.'' 《불행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말라.》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이나 불행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궁지에서 벗어나 마음 편해지기 위해 즉각 다른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물론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기 잘못을 직면해야 하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번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나면 책임을 떠넘기는 건 좀처럼 떨쳐 버릴 수 없는 습관으로 굳어지게 된다. 진심만을 말하라. 상대의 환심을 사면서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 상대는 늘 기분 좋게 느끼고 당신에 대해서 좋은 감정으로 갖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칭찬은 아부와 다름없는 것이라고 또한 상대를 마음대로 하려는 얄팍한 술책이거나 무언가를 얻어 내려는 아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칭찬과 아부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칭찬은 진심이 뒷받침 된 것. 따라서 칭찬을 할 때 칭찬 그 자체 외에 다른 뜻이 없는 진실한 마음은 눈빛으로도 알 수 있다. 똑똑한 척하지 말라. 똑똑한 척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바람직하지도 운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 우선 똑똑한 척 행동하면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고립된다. 그리고 혼자서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면 사람들은 그를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똑똑하면 이로울 게 없는 것.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우선 감사하라. 당신 스스로 행운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면 먼저 지금껏 당신이 이룬 것들을 열심히 생각해 보고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 건강 가정 가족의 사랑 자신의 재능과 기술에 고마워한다면 불행에 괴로워하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을 것. 오히려 자신에게 찾아오는 행운의 분명한 유형을 알게 되고 더 많은 행운을 만드는데 주력하게 될 것. 단정하게 차려 입어라. 단정하고 화려하게 차려 입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유행을 잘 따르는지 얼마나 돈이 많은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보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 색상이나 잘 어울리는 옷차림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다. 당신이 단정하게 매력적으로 차려 입으면 보는 사람들의 감각이 적극적으로 자극을 받아 당신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다. 인내심을 가져라. 운 좋은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마감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 어느 순간에 페달을 밟지 앓고 미끄러져 내려가야 할 지도 잘 알고 있다. 질투심을 반드시 버려라. 가장 자기 파괴적인 감정은 질투심이다. 질투를 하면 스스로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적극적인 에너지를 쓸데없이 소모해서 실수를 하게 되고 결국엔 자신의 운과 기회를 망치게 된다. 질투심이 많아 보이면 당신은 결코 운 좋은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운 나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행운에 배 아파하고 인색하게 구는 것이다. 마음을 편히 가져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삶이 뜻한 대로 굴러가지 않을 때는 어쩌다 힘든 날일뿐이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오늘 너무 너무 힘들다면 내일은 더 밝은 날이 기다릴 것.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한숨 자고 나서 한 발짝 물러나 보면 쉽게 풀리기도 한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다. “30분 후에 죽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사소한 일이나 바보 같은 일 그리고 무엇보다 나쁜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소한 일에 그토록 신경 쓰고, 바보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나쁜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영원히 살 것이라는 착각 때문은 아닐까요? 물론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늘 ‘아직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사소한 일에 얽매이고 바보 같은 일을 하고 또 나쁜 일도 서슴지 않는 것. 성지 안에는 ‘천국의 문’ 이라는 봉안당이 있다. 이곳에 안치되어 오시는 고인은 모두 자그마한 유골함에 담겨 오십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계셨던 분도, 이곳에 안치되시려면 봉안되실 자리에 맞는 유골함에 담길 수밖에 없다. 죽음 뒤에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가져갈 수 없는데도, 사소하고 바보 같으며 무엇보다 나쁜 일까지도 감수하면서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영원한 생명은 지금의 삶 안에서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가 반드시 얻어야 할 것으로, 지금이라는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가 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최대한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설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의 문제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함께 하신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것. 인간적으로 볼 때, 성모님의 고통은 엄청난 크기가 분명합니다. 보통 사람은 도저히 이겨내기 힘든 무게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이 모든 고통을 거뜬히 이겨내시고, 예수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라고 하시고,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라고 하십니다. 이를 단순히 성모님을 제자에게 맡기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고통을 하느님 안에서 이기신 어머니이기에, 우리의 고통 역시 이길 수 있도록 성모님께서 함께 해달라는 청이라고 할 수 있다. 성모님께서 고통을 이기실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 아버지께 철저하게 순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브 5,9)의 주인공이 되실 수 있었다. 우리의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기 힘듭니다. 그러나 주님과 성모님이 계시기에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지금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우리의 집에 ‘에페타’ ‘열려라’고 말씀하신 주 예수님을 모실 수 있도록 빈 의자를 준비해보시는 은총이 있으시고 아멘 !!!!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희망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바로 내 곁에 있다. 나의 일상을 점검하자.'' - 릴케 - |
♡2381회 어떤 인간도 부모 없이는 온전한 인간이 되지 못합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2월 23일(요한1서 1장~ ) 노자는 ''항상 부드러움은 강함을 이긴다.'' 《마음의 빛》우리 마음 안에는 빛이 있다. 그런데 그 빛은 우리의 고집과 이기심과 게으름과 나쁜 습관들에 쌓여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 빛은 우리 마음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그 틈을 통해 밖으로 새나옵니다. 그것이 웃음이고 밝은 얼굴이고 좋은 말이고 인품입니다. 진화론에서는 모든 것들이 ‘저절로’ 진화, 발전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인간도 태어나서 부모 없이도 저절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진화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진화할수록 부모에게 더 의존합니다. 어떤 인간도 부모 없이는 온전한 인간이 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현존 안에서 두 발로 걷고 말도 하고 사회생활도 배웁니다. 부모의 ‘부재’(不在)는 아이들을 다시 동물의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원인이 됩니다. 반대로 부모의 ‘현존’(現存)은 아이들을 부모의 수준이 되게 만듭니다. 앞에서 끌어주지 않으면 누구도 혼자서는 진화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 하고 계셨다. 혼자 기도하시지만 실제로는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것. 기도는 ‘현존 연습’ 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그 사람의 ‘법’(法)이 함께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모든 사람이 지닌 뜻은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법이 됩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과 친구가 된다면 그 친구도 다이어트를 할 확률이 45%나 된다고 합니다. 살을 빼니까 주위에 살을 빼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 함께 머물면 이렇듯 변할 수 있다. 기도는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것.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며 세례자 요한처럼 될 수도 있고, 엘리야처럼 될 수도 있으며, 예언자 가운데 한 분처럼 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 그러나 하느님 자녀까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신과 함께 있는 분이 누구인지 온전한 믿음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는 질문에, 베드로가 나서서 당신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베드로는 세상 누구보다 힘이 듭니다. 하느님을 옆에 두고 사는 것은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러니 하는 일뿐만 아니라, 생각과 욕구에서도 십자가를 지고 사는 것과 같다. 하느님은 그 마음마저 꿰뚫어 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물으시고 곧바로 십자가에 대해 말씀하시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누구도 베드로만큼 빨리 하느님의 자녀로 변할 수는 없다. 베드로가 그래서 교회의 반석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 부모의 현존 안에서 아기가 인간으로 자라나듯,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만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클 수 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주님의 현존을 느끼며 삽니까? 얼마나 기도합니까? 자주 주님의 현존을 잊고 내 뜻대로 살아서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마음과 생각, 말과 행동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자주 기도하며 주님의 현존 안에 머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개신교 책 중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 있다. 1605년 프랑스 로렌느 지방에서 태어나 파리에 있는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의 평수사로 살았던 로렌스(Lawrence) 수사의 영성을 담은 책입니다. 그는 전쟁에 참여했다가 상처를 입고 평생 다리를 절었다. 그리고 50세라는 늦은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가 주방 허드렛일이나 신발을 수선하는 일을 하면서 매우 빠른 영성의 진보를 보입니다. 장상의 명으로 이것을 기록한 것들이 지금 책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 그가 처음으로 하느님을 느낀 것은 나무를 보면서였다. 잎이 떨어지고 다시 나고 하는 이 순환 속에서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였다. 그러나 늦은 나이에 시작한 수도 생활 안에서 오랜 기간 쌓여온 세속의 때는 좀처럼 벗겨지지 않았다. 세속의 삶이 그리워졌다. 주방 허드렛일이 의미 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주님의 현존을 믿어보기로 한 것. 마치 나무를 보고 주님을 느꼈듯이 자신이 하는 모든 행위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느껴보기로 하였다. 그랬더니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힘들고 의미 없게 느껴지던 일들이 참으로 달고 기쁜 일이 되어버린 것. 그는 거창하고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일도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할 때 땅에 떨어진 지푸라기를 하나 줍는 것도 즐거웠다. 그의 변화에 많은 형제가 감명을 받았고 그 방법을 묻자 “매 순간 호흡할 때마다 하느님의 현존을 연습하는 것” 이라 대답했다. 그는 말합니다. “세상에 수많은 영성과 기도의 방법이 있다. 그러나 왠지 저에게는 맞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저는 현존을 연습하기로 하였다. 저에게는 일하는 시간이 기도 시간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성전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처럼 깊은 고요 속에서 하느님을 소유합니다. 저는 세상에 하느님과 저밖에 없는 것처럼 살기 시작했습니다. 자상한 아버지의 품에 안긴 자녀로 살기로 했습니다. 물론 이 훈련이 쉽고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훈련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이 훈련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연습하는 이 훈련을 제 본업으로 생각하고, 마치 하루 전체가 정해진 기도 시간인 것처럼 여겼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오로지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여 살아오다 보니 때로는 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이 몰려옵니다. 가끔 제가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는 것을 잊기라도 하면 하느님은 즉시 저의 내면에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저는 사랑이 가득한 시선으로 하느님을 바라보며 고백 드립니다. ‘하느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온전히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기쁘신 뜻대로 제게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그러면 곧 사랑의 하느님은 저의 고백에 흐뭇해하시며 영혼 가장 깊은 곳에서 편히 쉬며 거합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아주 작은 고난도 주님을 위해 받을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저는 앞으로 천국에서 영원히 할 일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바로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배하고 사랑하는 일입니다. 오로지 하느님을 찬양하고 사랑하며 나머지 것은 아무것에도 정신을 주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소명과 의무의 본질이 아니겠습니까?” [출처:『로렌스 형제의 생애; 하나님의 임재 연습』, 유튜브 성결출판사] 현존 자체가 법입니다. 법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진화시킵니다. 그 현존을 연습하고 체험하는 시간이 기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라고 말합니다. 현존 연습을 하며 모든 시간이 기도와 찬미와 사랑이 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요한 16,32)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곁에 누구를 두고 살아갑니까? 자아라는 뱀일 수도 있고, 사랑의 하느님일 수도 있다. 내 곁에 누구를 두느냐가 나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저는 하느님으로 만족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느님 한 분으로 만족함으로 성령의 불이 일어나 은총 가득한 치유와 회복의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결백한 자와 미인은, 시간 이외에는 적이 없다.'' - 예이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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