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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아리우스 이단을 반대하는 성 아타나시오 주교의 강론에서)창조주이시고 사람이 되신 지혜를 통하여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

아리우스 이단을 반대하는 성 아타나시오 주교의 강론에서 (Oratio 2,78. 81-82: PG 26,311. 319)
창조주이시고 사람이 되신 지혜를 통하여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
잠언에 의한 독서 8,1-5. 12-36
영원한 지혜의 찬미
39 의인들의 구원은 주께서 내리시고 *
어려운 고비에는 피난처가 되시며,

40 주께서 그들을 도우시고 구하여 주시고 +
악인에게서 빼내시어 살리시나니 *
당신께 몸을 피한 때문이니라.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3주님을 믿고 그 길을 따라가라.
 주여, 선행과 판단과 슬기를 가르쳐 주소서.
 당신의 계명을 믿었나이다.
제1독서
잠언에 의한 독서 영원한 지혜의 찬미
1 지혜가 부르지 않느냐? 슬기가 목청을 돋우지 않느냐?
2 지혜가 길가 언덕에서 부르고
슬기가 네거리에 자리잡고 목청을 돋운다.
3 마을 어귀 성문께에서, 대문 여닫히는 곳에서 외친다.

4 “사람들아, 내 말을 들어라.
사람의 아들들아, 내 말을 들어라.
5 풋내기들은 처세하는 길을 배우고
미련한 자들은 마음을 바로잡아라.

12 나 지혜는 예지와 한 집에서 살고 있으니,
지식을 얻어 뜻을 세우려면 나에게 오라.
13 주님 두려워하여 그를 섬기면 악을 미워하게 마련,
나는 잘난 체 우쭐대며 악한 길을 가거나
거짓말하는 것을 역겨워한다.
14 나에게는 좋은 계략과 바른 판단력이 있고 예지와 능력이 있다.

15 임금들이 옳게 다스리고
고관들이 바른 명령을 내리려면 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16 내 도움이 있어야 지휘관은 지휘관 노릇을 하고,
고관들은 세상을 바로 다스린다.
17 나를 사랑하면 내 사랑을 받고
애타게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18 부귀와 영화뿐 아니라
의인이 물려받는 고귀한 것도 나에게서 나온다.
19 나에게서 얻는 열매가 금이나 순금보다 좋고
나에게서 거두는 소출이 순은보다 좋다.
20 나는 옳은 길을 가고
바른 길 한가운데를 걸으며,
21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재산을 안겨 주고
그의 금고를 가득히 채워 준다.

22 주께서 만물을 지으시려던 한 처음에
모든 것에 앞서 나를 지으셨다.
23 땅이 생기기 전,
그 옛날에 나는 이미 모습을 갖추었다.
24 깊은 바다가 생기기 전에,
샘에서 물이 솟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25 멧부리가 아직 박히지 않고
언덕이 생겨나기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26 평평한 땅과
땅의 흙을 만드시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27 그가 하늘을 펼치시고
깊은 바다 둘레에 테를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다.
28 구름을 높이 달아매시고
땅속에서 샘을 세차게 솟구치시며
29 물이 바닷가를 넘지 못하게 경계를 그으시고
땅의 터전을 잡으실 때,
30 나는 붙어 다니며 조수 노릇을 했다.
언제나 그의 앞에서 뛰놀며
날마다 그를 기쁘게 해드렸다.

31 나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즐거워
그가 만드신 땅 위에서 뛰놀았다.
32 그러니, 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들어라.
내가 일러준 길을 따르면 복 받으리라.
33 교훈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그대로 따르면 지혜를 얻으리라.
34 날마다 내 집 문을 쳐다보고
내 집 문 앞에 지켜 서서 내 말을 듣는 사람은 복 받으리라.
35 나를 얻으면 생명을 얻고
주님의 은총을 받는다.
36 나를 붙잡지 않는 자는 제 목숨을 해치게 되고
나를 싫어하는 자는 죽음을 택하는 자들이다.”
제2독서
창조주이시고 사람이 되신 지혜를 통하여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
하느님의 지혜이신 외아드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고 조성자이십니다. 성서는 “주님이 하신 일이 많고도 많건마는, 그 모두를 지혜로써 이룩하셨으니, 온 땅에 당신 조물 가득 차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조성된 것이 그 자체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훌륭히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지혜께서 피조물의 위치에 내려오시어 만물과 각 피조물에게 당신의 인호와 당신 모상의 유사성을 박아 주시어 조성된 것이 지혜로 장식되고 하느님다운 업적으로 보이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입으로 하는 말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말씀의 상징인 것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혜 역시 지혜 자체이신 말씀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담겨 있는 이 지혜를 통하여 생각하고 이해할 힘을 갖게 됨으로써 창조자이신 지혜를 맞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고 또 그를 통하여 영원한 지혜의 아버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성서는 말해 줍니다. “아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도 모시고 있다.”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사람이다.” 우리와 모든 피조물 안에 영원한 지혜의 창조된 한 몫이 박혀져 있기 때문에 창조자이신 지혜 자체께서는 피조물 안에 있는 그 몫을 당신 것으로 여기시면서 “주께서는 나를 당신 업적 안에서 창조하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먼저 설명한 바와 같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지혜로우신 계획에 따라 우리가 전하는 소위 어리석다는 복음을 통하여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옛날처럼 피조물 안에 존재하는 지혜의 상징과 그림자를 통하여 당신을 알게 되는 것을 더 원치 않으시고 참된 지혜 자체께서 육신을 취하여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심으로써 믿는 사람이 모두 그분께 대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 하느님의 지혜는 과거에 피조물에 박혀져 있는 자신의 상징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그래서 성서는 그분이 지음 받았다고 말합니다.) 또 당신 자신을 통하여 성부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후 말씀이신 지혜께서는 요한이 말하는 대로 사람이 되시고 죽음을 멸하시어 인류를 구원하심으로써 한층 더 분명히 당신 자신과 당신 자신을 통하여 성부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그들이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주소서.”

온 땅은 이 지혜의 지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통하여 지니고 계신 지식과 아버지로부터 나오신 아드님이 지니고 계신 지식은 같은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누리시는 기쁨을 아드님도 아버지 안에서 누리십니다. 지혜는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나를 두고 즐거워 하셨고 나는 매일 그분의 현존 앞에서 즐거워 했도다.”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친히 말씀하신 대로 바르고 솔직한 마음속에 머물러 계시는 천주여, 우리에게 당신의 은총을 내리시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모실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