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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사도 요한의 묵시록에 의한 독서)주님께 사랑의 노래를 불러 드려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에서 (Sermo 34,1-3. 5-6: CCL 41,424-426)
주님께 사랑의 노래를 불러 드려라
사도 요한의 묵시록에 의한 독서 8,1-13
일곱 천사들이 세상에 빛을 준다
후렴3세상의 나라들아, 하느님을 찬송하라. 노랫소리 맞추어 주를 찬송하라. 알렐루야.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는 죽지 않으시리라. 알렐루야.
 죽음이 그를 다시는 다스리지 못하리라. 알렐루야.
제1독서
사도 요한의 묵시록에 의한 독서 일곱 천사들이 세상에 빛을 준다
1 어린양이 일곱째 봉인을 떼셨을 때에 약 반 시간 동안 하늘에는 침묵이 흘렀습니다. 2 그리고 나는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일곱 천사를 보았는데 그들은 나팔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3 다른 천사 하나가 금 향로를 들고 제단 앞에 와 섰습니다. 그 천사는 모든 성도들의 기도를 향에 섞어서 옥좌 앞에 있는 황금 제단에 드리려고 많은 향을 받아 들었습니다. 4 그러자 그 천사의 손으로부터 향의 연기가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하느님 앞으로 올라갔습니다. 5 그 뒤에 그 천사는 향로를 가져다가 거기에 제단 불을 가득히 담아서 땅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천둥과 요란한 소리와 번개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6 그때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 채비를 차렸습니다.

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우박과 불덩어리가 피범벅이 되어서 땅에 던져져 땅의 삼분의 일이 타고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탔으며 푸른 풀이 모두 타버렸습니다.

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져서 바닷물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9 바다 속에 사는 피조물의 삼분의 일이 죽고 모든 선박의 삼분의 일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하늘로부터 큰 별 하나가 횃불처럼 타면서 떨어져 모든 강의 삼분의 일과 샘물들을 덮쳤습니다. 11 그 별의 이름은 쑥이라고 합니다. 그 바람에 물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고 많은 사람이 그 쓴 물을 마시고 죽었습니다.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태양의 삼분의 일과 달의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것들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졌으며 낮의 삼분의 일이 빛을 잃고 밤의 삼분의 일도 마찬가지로 빛을 잃었습니다.

13 나는 또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 한가운데서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고 그것이 큰소리로 “화를 입으리라. 화를 입으리라. 땅 위에 사는 자들은 화를 입으리라. 아직도 천사들이 불 나팔 소리가 셋이나 남아 있다!” 하고 외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2독서
사도 요한의 묵시록에 의한 독서   주님께 사랑의 노래를 불러 드려라
“주님께 노래하라, 새로운 노래, 성도들의 모임에 그 찬송 울리어라.” 주님께 새로운 노래를 불러 드리라고 권고합니다. 새사람은 새로운 노래를 알고 있습니다. 노래는 기쁨의 일이며 좀 깊이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사랑의 일입니다. 새 생활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새로운 노래를 할 줄 압니다. 새로운 노래는 생활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노래, 새로운 계약, 이 세 가지 모두 유일하고 같은 하느님 나라에 속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은 새로운 노래를 부를 것이며 또 새로운 계약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이 사랑할 때 무엇을 사랑하는지 그것이 바로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사람이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랑할 때 사랑의 대상을 잘 선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선택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사랑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요한의 말을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합니다.” 과연 어떻게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하고 여러분이 물어 본다면 하느님께서 먼저 인간을 사랑하셨다는 것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사랑의 대상으로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결국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원천을 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의 원천을 바오로 사도는 좀더 명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어디서 옵니까? 우리 자신에게서 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어디서 옵니까? 우리에게 부어 주신 성령을 통해서 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이 사랑의 힘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합시다. 성 요한은 더 명확히 표현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이는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옵니다.”라는 말뿐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중 누가 감히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은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 한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랑의 대상으로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주시며 우리에게 이렇게 외치십니다. “나를 사랑하라. 그러면 나를 소유하리라. 너희가 나를 소유하지 않는다면 나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고 위로부터 태어난 나의 형제들, 나의 아들들, 가톨릭 교회의 자녀들, 그리고 하늘 나라의 거룩한 씨앗들인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십시오. “주님께 노래하라. 새로운 노래를 불러 드려라.” “그러나 나는 노래하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여러분은 대답할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노래합니다. 물론 노래하지요. 나는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생활이 여러분의 입과 다른 음률로 노래하지 않는지 생각하십시오.

목소리로 노래하십시오. 마음으로 노래하십시오. 입술로 노래하십시오. 여러분의 거룩한 생활로 노래하십시오. “주님께 노래하라. 새로운 노래를 불러 드려라.” 여러분은 사랑하는 그분에 대하여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있습니까? 물론 사랑하는 분에 대해 노래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분께 노래할 때 무슨 찬미를 드려야 하는지 물어 본다면 그 찬미의 내용을 벌써 들었습니다. “주님께 노래하라. 새로운 노래를 불러 드려라.” 여러분은 찬미할 내용을 찾고 있습니까? “성도들의 모임에 그 찬송 울리어라.” 노래하는 사람 자신이 바로 찬미가의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찬미를 전하고 싶어합니까? 노래하는 바를 자신의 생활로 실천하십시오. 선한 생활을 하면, 여러분이 바로 그분께 대한 찬미가 되는 것입니다.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난 우리에게 하늘 나라의 문을 열어 주시는 천주여, 당신 종들에게 내리신 은총을 더해 주시어, 모든 죄에서 깨끗이 씻겨진 우리로 하여금 인자로이 언약하신 바를 조금도 잃지 않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