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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ps. 37,13-14: CCL 38,391-392) |
예언자 이사야서에 의한 독서---장차 나타날 구원 | 33,7-24 |
제1독서 |
예언자 이사야서에 의한 독서- ---장차 나타날 구원 |
7 보아라, 아리엘 주민이 거리에서 애곡하고 평화 사절단은 기가 막혀 통곡한다. 8 한길은 길손이 끊겨 텅텅 비었다. 계약은 깨지고 증인들은 인정을 받지 못하며 아무도 남 생각은 않는 세상이 되었구나. 9 산천은 메말라 지치고 레바논 숲은 병들어 그 모양이 말이 아니다. 사론은 사막이 되고 바산과 가르멜은 벌거숭이가 되었구나. 10 주께서 말씀하신다. “나 이제 일어난다. 나 이제 몸을 일으킨다. 나 이제 일어선다. 11 너희가 잉태한 것은 지푸라기다. 검불 말고 무엇을 낳으랴? 불 같은 내 입김에 너희는 타버리리라. 12 만방은 구운 횟돌같이 되고 찍어다가 태우는 가시덤불같이 되리라. 13 먼 곳에 있는 자들아, 들어라, 내가 무슨 일을 했는가. 가까이 사는 자들아! 내가 얼마나 힘있는지 알아 두어라.” 14 시온산에서 죄인들이 무서워 떨고 불경한 자들은 겁에 질려 떨리라. 삼킬 듯이 넘실거리는 이 불길을 누가 견디어 낼 것인가? 누가 이 영원한 불꽃 속에서 견디어 낼 것인가? 15 옳게 살고 바른 말하는 사람, 착취로 돈을 벌지 않은 사람, 뇌물을 마다고 뿌리치는 사람, 살인하자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는 사람, 악한 일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 사람, 16 이런 사람은 높은 곳에 올라가 살리라. 바위 꼭대기에 튼튼한 성곽을 쌓고 사는데, 빵도 넉넉하고 물도 떨어지는 일이 없으리라. 17 네 눈이 화려하게 차린 너의 임금을 보리라. 널리 눈앞에 국토가 트이리라. 18 무섭던 그때를 돌아보며 네 마음은 흐뭇해 하리라. “개수를 따져 셈하던 자는 어디 갔느냐? 무게를 달아 따지던 자는 어디 갔느냐? 귀중품을 조사하던 자는 어디 갔느냐?” 19 네가 다시는 그런 사람을 보지 아니하리라. 무슨 소린지 모를 말을 하는 백성, 도무지 귀에 익지 않은 말을 지껄이는 백성, 뜻도 모를 소리를 더듬거리는 백성이 다시는 나타나지 아니하리라. 20 축제 기분에 들뜬 우리 마을, 시온을 보아라! 네 눈은 아늑한 보금자리, 옮겨지지 않을 천막, 예루살렘을 보리라. 그 말뚝이 다시는 뽑히지 아니하고 그 줄 하나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21 거기에는 넓은 강이 여러 줄기로 흐르지 아니하고 주께로부터 한 시내가 흘러 우리의 기쁨이 되리라. 노 젓는 큰 배는 들어오지 못하고 장엄한 배는 얼씬도 못하리라. 23 줄은 늘어져 더 이상 깃대를 단단히 잡아 세우지 못하고 신호기를 높이 달아 올리지도 못한다. 22 우리를 재판하는 이는 주님, 우리의 법을 세우는 이도 주님, 우리를 다스리는 왕도 주님, 그분만이 우리를 구원하신다. 23 소경도 전리품을 듬뿍 얻고 절름발이도 노획물을 양껏 차지하리라. 24 그 곳에 사는 백성은 모든 죄를 용서받아 몸이 아프다고 탄식하는 자 없으리라. |
제2독서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시편 주해’에서)당신의 소원이 바로 당신의 기도입니다. |
“애끓는 마음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터져 나오나이다.” 인간의 귀가 포착할 수 없는 감추어진 울부짖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거센 욕망이 마음을 사로잡아 그 마음에 상처를 입힘으로 그의 내적 고통이 귀로 들을 수 있게 외적 소리로 표현될 때, 그것을 듣는 사람은 그 원인을 찾아내고 싶어하면서 “아마도 이러이러한 일이 그에게 울부짖음을 낳게 했으리라. 아마도 이러이러한 것이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 같다.”라고 자신에게 말합니다. 그 울부짖음을 보고 듣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그 원인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은 다른 사람의 울부짖음을 들을 때 대개 외적 소리 즉 으르렁대는 소리만을 듣고 마음속에 감추어진 울부짖음을 듣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울부짖음의 원인을 누가 알고 있었습니까? 시편 작가는 덧붙여 말합니다. “내 모든 소원은 당신 앞에 있나이다.” 내 모든 소원이 마음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모든 소원이 주님 앞에 있다면 감추어진 것을 보시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소원이 바로 당신의 기도입니다. 당신의 소원이 항구하다면 당신의 기도도 항구합니다. 사도 바오로가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말할 때 그 말씀은 무익한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도의 권고를 따르려 한다면 계속해서 무릎을 꿇거나 바닥에 엎드리거나 또는 손을 펴들어야 한단 말입니까? 이것이 우리가 기도하는 법이라면 그야 물론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할 수 있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소원이라는 내적 기도입니다.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 영원한 안식일을 바라면서 한다면 당신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셈입니다. 기도를 중단하고 싶지 않다면 끊임없이 소망하십시오. 당신의 소원이 끊임없다면 당신의 목소리도 끊임없습니다. 사랑하는 것을 중단할 때 침묵에 빠져 들게 됩니다. 누가 침묵에 빠져 들었습니까? 성서가 말하는 바와 같이 “악이 늘어나 사랑이 식어진” 이들입니다. 사랑의 냉각은 마음의 침묵이며 사랑의 불타는 열정은 마음에서 나오는 함성입니다. 당신 안에 사랑이 언제나 머문다면 당신은 항상 함성 가운데 있는 것이고 항상 함성을 지른다면 항상 소망하고 있는 것이며 또 소망하고 있다면 당신의 생각은 그 안식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모든 소원이 당신 앞에 있나이다.” 만일 소원이 주님 앞에 있고 울부짖음이 그분 앞에 있지 않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건 당치 않은 일입니다. 소원의 소리가 울부짖음인데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따라서 시편 작가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울부짖음은 당신께 감추어지지 않나이다.” 주님께는 감추어져 있지 않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겸손한 종은 어떤 때 “내 울부짖음이 당신께 감추어지지 않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지만 어떤 때에는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의 마음속에 소원이 사라졌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소원이 있으면 울부짖음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귀에 늘 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느님의 귀에는 끊임없이 도달합니다. |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천주여, 당신의 은총으로 항상 우리를 움직여 주시고 또한 계속 도와주시어, 독생 성자의 오심을 갈망하는 우리에게 현세와 후세에 필요한 은혜를 보장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