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요한 복음 주해’에서 | (Tract. 26,4-6: CCL 36,261-263) |
예언자 즈가리야서에 의한 독서 | 8,1-17.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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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즈가리야서에 의한 독서---이제 내가 평화를 심어 주리니,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고 하늘은 비를 내리며 땅은 소출을 내리라 |
1 만군의 주께서 나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2 “나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시온을 생각만 해도 역겨워지는구나. 속이 화끈거리며 타오른다. 3 나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내가 시온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안에서 살리라. 그리되면, 예루살렘은 미쁜 도읍이라 불리고, 만군의 주님의 산, 거룩한 산이라고 불리리라. 4 나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수도 예루살렘 장터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지팡이를 짚고 모여 와 앉아 쉬는 모습이 다시 보이고, 5 이 도읍 장터마다 사내아이 계집아이들이 우글거리며 뛰놀게 되리라. 6 나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그날이 오면, 이런 일이 살아 남은 이 백성의 눈에도 신기하겠지만, 내 눈에도 신기하리라. 만군의 주님이 이르는 말이다. 7 나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이제 나는 나의 백성을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에서 건져내어 8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살게 하리라. 그들은 다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신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느님이 되리라. 9 나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만군의 주님의 성전을 다시 세우려고 주춧돌을 놓는 이날, 예언자들의 입으로 이 말을 직접 듣는 사람들아, 힘을 내어라. 10 전에는 일을 하고도 품값을 못 받았고, 원수들 등쌀에 마음놓고 드나들 수도 없었다. 그 때 나는 너희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을 내버려 두었지만, 11 이제는 살아 남은 이 백성을 예전처럼 다루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주님이 이르는 말이다. 12 이제 내가 평화를 심어 주리니,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고 하늘은 비를 내리며 땅은 소출을 내리라. 그리하여 살아 남은 내 백성으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받아 누리게 하리라. 13 유다 가문아, 이스라엘 가문아, 너희는 뭇 민족에게 욕을 먹는 신세였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해 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너희를 부러워하게 하리라. 그러니 겁내지 말고 힘을 내어라. 14 나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일찍이 너희 조상들이 나를 화나게 하여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작정하고는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했듯이, 만군의 주님이 이르는 말이다, 15 나 이제 마음을 돌이켜 그 이상으로 예루살렘과 유다 가문에게 잘해 주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니 너희는 겁내지 말아라. 16 너희는 이렇게 살아라. 이웃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고, 성문 앞 재판정에서 바른 재판을 하여 평화를 이룩하여라. 17 부디 이웃을 해칠 생각은 말고, 거짓 맹세로 속이는 일을 좋아하지 말아라. 그런 것은 다 내가 미워하는 일이다. 주님이 이르는 말이다. 20 나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앞으로 많은 민족과 여러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이리로 모여올 것이다. 21 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다른 도시로 가서 ‘주님께 나아가 자비를 빌자. 만군의 주님을 찾으러 가자. 나는 이렇게 나섰다.’ 하고 말하면, 22 많은 민족과 강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만군의 주님을 찾아와 주님의 자비를 빌게 될 것이다. 23 나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앞으로는 말이 다른 종족의 열 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느님께서는 당신들과 함께 계신 줄 압니다. 그러니 우리도 함께 데려가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리라.” |
제2독서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요한 복음 주해’에서)보라 나는 내 백성을 구하리라 |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주님이 당신을 억지로 끌어들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음은 사랑의 힘으로도 이끌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서 말하는 사람이라도 신적 사정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는, 위의 성서 말씀을 반박하면서 우리 보고 “하느님이 나를 이끄신다면 내가 어찌 내 의지로 믿을 수 있단 말이오?” 하고 말하는 이들을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의지로만 믿는 게 아니오. 기호로 말미암아도 이끌리는 법이오.” 기호로 말미암아 이끌리는 게 무엇입니까? 시편은 말합니다. “네 즐거움일랑 주님께 두라. 네 마음이 구하는 바를 당신이 주시리라.” 그러니까 마음속에는 천상의 빵에 대해 구미를 당기게 하는 어떤 기호가 있는 것입니다. 옛 시인이 “각 사람은 자신이 지닌 기호에 의해서 이끌려진다.” 즉 필요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호에서,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어떤 것에 대한 즐거움에서 이끌린다고 말했다면, 하물며 그리스도를 뜻하는 진리와 축복과 정의와 영원한 생명을 즐거워하는 이는 그리스도께로 이끌린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몸의 감각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면 마음은 어떤 기호를 갖는 것이 허락될 수 없단 말입니까? 영혼이 기호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시편 작가는 어떻게 다음 말씀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주여, 인간의 자손들이 당신 날개 그늘로 숨어 드나이다. 당신 집 기름기로 그들은 흐뭇하며, 당신 진미의 강물을 마시우시다니, 생명의 샘이 진정 당신께 있고, 우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옵나이다.” 사랑하는 이를 내게 보여 주십시오. 그는 내가 하는 말을 깨달을 것입니다. 무언가 욕구하는 이, 배고파하는 이, 목말라하면서 자신의 영원한 집의 샘물을 갈망하여 이 광야에서 헤매고 있는 이를 보여 주십시오. 그들도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냉냉한 사람에게 이 말을 한다면 그는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양에게 새파란 풀잎을 보여 주면 그것이 그 양을 끌어들입니다. 소년에게 호도를 보여 주면 뒤따라옵니다. 자기가 잡으려고 달려가는 그 사물에 의해 이끌리고, 그것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이끌리며, 아무런 육체의 강박도 없이 마음의 기호로 인해 이끌립니다. “각 사람은 자신이 지닌 기호에 의해서 이끌린다.”는 말은 사실인데, 지상의 쾌락과 즐거움을 누구에게 보여 줄 때 그것이 참으로 사람을 이끈다면,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여 주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이끄시지 않겠습니까? 영혼이 진리보다 더 열렬히 갈망하는 것이 또 있겠습니까? 사람이 다 충족시키지 못하는 식욕을 가지는 것과 진정한 것을 식별해 내는 건전한 내적 미각을 갖고 싶어하는 것은 지혜와 정의와 진리와 불사 불멸의 생명을 먹고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이 지상에서 그러한 것입니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후세에서 그럴 것입니다.)” 나는 그가 사랑하는 것을 주고, 그가 희망하는 것을 주리라. 지금 보지 못하면서도 믿는 것을 장차 보게 되리라. 지금 배고파하는 것을 장차 먹을 것이고 지금 목말라하는 것을 장차 마시게 되리라. 그런데 언제 어디서 그렇게 되겠는가? 죽은 이들이 부활할 때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주여, 비오니, 당신의 넘치는 은총으로 항상 우리를 이끄시고 밀어 주시어, 언제나 선업에 열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그 뒤에 특히 공동으로 바칠 때에는 다음의 환호를 덧붙인다. + 주님을 찬미합시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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