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 주교의 ‘이사야서 주해’에서 | (Cap. 40: PG 24,366-367) |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예언자는 이 예언이 말해 주는 일이 즉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이가 하느님의 구원을 알게 되는 것이 예루살렘에서가 아니라 광야에서 일어나리라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이것은 세례자 요한이 구세주께서 나타난 바로 그 요르단 광야에서 구세주 하느님께서 오시리라는 것을 선포했을 때 역사적으로 또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이 열리어 성령이 비둘기의 모양으로 그분 위에 내려오시고 당신 아들을 증언해 주시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성부의 음성이 들려 왔을 때 그리스도의 영광이 모든 이에게 분명히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광야에 나타나셨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옛적부터 험하고 가팔라서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광야에 내려오시려 하셨습니다. 실상 모든 민족들은 하느님의 의인들과 예언자들의 말에 귀를 막아 하느님께 대한 지식이 광야처럼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외치는 이 소리는 하느님의 말씀께서 오실 길을 닦고 주님이 오실 때 곧장 나아가실 수 있도록 그 길을 고르게 하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길을 닦아라.” 곧 복음을 전파하고 새 위로를 전하라. 이 복음은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구원을 알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시온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야, 높은 산에 올라가라. 예루살렘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야, 힘껏 소리질러라.” 앞에서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제 예언자는 이 말씀을 통해서 복음사가들을 예시해 주고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내려오시리라는 것을 전해 줍니다. 이렇게 예언자는 세례자 요한을 예시한 다음 이어서 복음사가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시온이란 일찍이 예루살렘이라 불리운 도성이 아니겠습니까? “시온산을 당신의 자리로 정하셨나이다.”라는 성서의 말씀에 따르면 시온 역시 산이었습니다. 사도는 또 “여러분이 와 있는 곳은 시온산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이 말씀으로 할례 받은 백성들 가운데 뽑히운 사도들의 무리를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이 시온과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구원을 받은 이들이고 하느님의 산 즉 아버지의 말씀이신 외아드님 위에 세워진 이들입니다. 예언자는 이들더러 높은 산에 올라가 구원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합니다. 그런데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가 사도들의 무리가 아니고 누구이겠습니까? 또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사람들 특히 유다 성읍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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