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6주 화요일 ‘hearing과 listening’
영어에서 ‘듣는 것’을 지칭할 때,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hearing이고 두 번째는 listening입니다. hearing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차원을 이야기하고, listening은 소리 안에 담겨진 말의 뜻을 이해하는 차원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사이와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자신들이 빵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신 말씀으로 알아듣고는, 빵이 없음을 걱정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리사이의 누룩이란 다름아닌 그들의 삶의 태도 및 그들이 제시하는 가르침 등을 의미하는 영적인 차원의 말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를 육적으로 알아듣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을 듣기는 하나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곧 hearing은 되었지만 listening은 되지 않은것이죠.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함을 한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느냐?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본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하고 한탄하십니다.
제자들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완고하다는 것은 마음이 닫혀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왜 닫혀 있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세상 일에 대한 걱정 곧 빵에 대한 걱정과 근심 그리고 세상일에만 눈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세상사에만 묶여 마음이 닫혀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아도 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세상일에만 묶여 마음이 닫혀 있다면, 미사 성제 안에서 성체의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주님의 기적을 보아도 그 의미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들려와도 소귀에 경읽기 처럼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사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사에만 얽매여 근심과 걱정이 우리 마음을 가득 차도록 내버려 둔다면 우리의 마음은 닫혀지고 완고해져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도 그냥 흘려듣게 되고, 이 세상의 근심과 걱정이 우리의 영적생명을 숨막히게 합니다.
오늘 복음서 말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한탄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세상사에 얽매여 마음이 닫혀지고 긴장하며 살아가는 제자들과 우리들에 대한 질타라기 보다는, 생명을 주는 말씀과 참 행복을 가까이 두고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우리의 상태에 대한 예수님의 안타까움이 녹아나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고 참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주님만이 이 세상을 넘을 수 있는 참된 희망입니다. 삶이 고되고, 힘들수록 웃음을 잃지말고 주님께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노력할 때,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영육간의 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교황 베네딕토 16세. 이재철역 / 교황님과 함께 하는 아침 묵상 / `맏아들`의 형제와 자매들 (0) | 2011.05.11 |
---|---|
[스크랩] 사랑을 지켜가는 아름다운 간격 (0) | 2011.04.30 |
[스크랩] 경 계 境 界 (0) | 2011.03.18 |
[스크랩] [좋은영화소개] 울지마 톤즈 (0) | 2011.03.11 |
[스크랩] 손을 뻗어라 (0) | 2011.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