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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 3월 22일 성주간 화요일 (요한 13,21ㄴ-33.36-38)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본격적인 수난을 앞둔 성주간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수님께서도 참!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끔찍하게도 내 운명이 어디까지인가? 내 최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것을 불을 보듯이 환히 내다보고 계셨습니다. 이 저녁식사가 끝나면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시간이 다가오고, 그걸로 내 좋은 시절은 끝난다는 것, 곧이어 원수들이 들이닥쳐 나를 체포할 테고, 적대자들 가운데 내가 사랑했던 제자도 한명 끼어있을 것이고... 또한 체포 후에 진행될 참혹한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습니다. 주먹세례, 채찍질, 비아냥, 침뱉음, 가시관, 그리고 십자가... 제가 예수님 입장이었다면 아무리 인류 구원을 위한 속죄양이니, 아버지 뜻에 순명이니 하는 대의명분이 있다 할지라도 우선 두려움에 지레 겁에 질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십시오. 묵묵히 아버지께서 준비해놓으신 그 살 떨리는 ‘잔혹사’를 묵묵히 수용하십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분이셨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 조건을 고스란히 지니고 계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얼마나 두려우셨으면 하느님 아버지께 당신의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루카 22,42)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의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결국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다 포기하신 예수님께서는 머나먼 곳으로 떠나시기 직전 당신 제자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하십니다. 최후의 만찬 석상에 앉아있던 세 제자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습니다. 자칭 ‘애제자’였던 요한의 모습을 한번 보십시오. 연인(戀人)도 그런 연인이 없습니다. “제가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요한 13,23) 참으로 특별한 상황 설정입니다. 아마도 애제자(愛弟子) 요한은 남자였지만 타고난 여성성과 감수성을 통해 벌써 짐작한 것입니다. 스승님께서 떠나실 순간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다른 제자들 보기 민망스럽기도 했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스승님 가까이서 있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끔찍이 예수님을 사랑했던 애제자가 분명합니다. 반면에 수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좌충우돌의 명수 베드로 사도를 한번 보십시오.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몇 시간 후 이 밤이 지나가고 미처 동이 트기도 전에 스승님을 배신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외치고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요한 13,37) 또 다른 한 제자 유다를 한번 보십시오. 몸은 비록 스승님과 함께 최후의 만찬석상에 앉아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습니다. 적대자들과의 미리 짜둔 각본, 긴히 쓰이게 될 사업 자금 은전 서른 냥, 적대자들과의 접선 장소 어디, 접선 시간은 몇 시... 제발 이 비밀이 들통 나지 말고 잘 성사되어야 할 텐데... 유다는 머릿속으로 이 비밀 작전을 성공시키려고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 작업을 계속했을 것입니다. 정말이지 해도 해도 너무한 유다였습니다. 배은망덕도 이런 배은망덕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신자 유다를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를 보십시오. 저 같았으면 이미 그의 본심을 꿰뚫고 있었겠다, 공개석상에서 다른 제자들이 다 보는 앞에서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함구하십니다. 그래서 다른 열한 제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누가 배반자였는지를 몰랐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막가는 인생이었던 유다의 말도 안 되는 결정까지 존중해주십니다. 끝까지 그의 회개를 기다리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에게 기회를 주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교회전례력으로 가장 정점에 위치한 성주간입니다. 죄인인 우리 인간을 향한 한없는 하느님의 자비, 바보 같은 사랑,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계속해서 묵상해야겠습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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