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로서의 참된 단식>
2월 12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마태 9,14-15)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단식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계십니다.
단식의 핵심이자 목적은 다른 무엇에 앞서서
예수 그리스도 당신 자신임을 명확히 밝히고 계십니다.
진정한 단식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 때문에 행하는 단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우리를 향한 수난과 희생,
죽음을 묵상하기 위한 단식이 참된 단식입니다.
단식을 하는 사람들의 의식은
더욱 예수 그리스도께로 집중되어야하며
그분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에 관심이 모아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단식은 단식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실을 거두는 단식이어야 합니다.
단식의 결과가 이웃사랑으로 연결되어야
그 단식은 참된 단식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세상 안으로 더욱 투신하고
그 세상을 위해 철저히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
그것이 사제로서의 참된 단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된 단식에 대해서 묵상하다가
"기쁨과 희망"이란 아름다운 소식지 3월 1일자에 실린
한 수녀님의 글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사제가 곁에 있어도 우리는 사제가 그립다"는
제목의 수녀님 글은 얼마나 저를 부끄럽게 했는지 모릅니다.
수녀님의 글은
사제로서 참된 단식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주고 계셨습니다.
"한국 교회의 구조와 한국인의 의식구조 안에서의 사제상은
우리가 익히 듣고 그려온 착한 목자상과는 거리가 먼듯하다.
어느 틈엔가 굳어진 목에선 겸손함이 그립고,
강론 준비도 제대로 안되는 건 고사하고
주일미사에 어렵사리 나와 주님 안에 평화를 얻고자 하는
신자들을 야단쳐서 보내지 않으면 다행이다.
신자들의 바람을 추려보면
성체 앞에 기도하며 머무는 사제의 모습이 그립고,
만나면 먼저 인사해주는 겸손하고 따뜻한 모습이 그립고,
자신과 신자들의 영성의 깊이를 더해가기 위해
공부하고 연구하는 모습이 그립고,
자기 관리가 되는 사제가 그립고,
말이 통하는 사제, 들을 귀가 큰 사제가 그립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사제들과 함께 살면서도
진정한 사제가 그립다.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 때문에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내어놓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전공한 사제가 진짜 그립다."
"성서와 함께" 3월호에 보니
또 다른 수녀님께서 사제로서의 참된 단식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잘 소개하고 계십니다.
어느 모임에서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사제가
자신의 소중한 체험을 나누어 주었답니다.
"제가 술에는 정말 자신이 있는 사람입니다만,
사제 생활을 시작하면서 두 가지 목표를 세웠는데,
하나는 술을 끊는 것과 또 하나는 저녁 10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사제관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본당 소임이 이동되어 신자들과 송별회를 하던 중,
술을 안마시고 말짱하게 앉아 있다가
10시가 가까워져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우성치는 교우들을 뒤로 한 채
사제관으로 돌아와 잠을 자던 저는
병자성사를 요청하는 전화를 받고 달려가면서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송별회라는 명분으로 술을 마시고 더 앉아 있었더라면
본당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큰 오점을 남길 뻔 했으니 말입니다.
병자 성사를 받은 그 교우는 그 날 새벽에 운명을 했습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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