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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참담한 심정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참담한 심정> 2월 7일 연중 제5주일 (루카 5,1-11)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아이들과 함께 서해 바다로 소풍을 갔었습니다. 인적이 끊긴 한적한 해변은 그야말로 "우리들 세상"이었습니다. 짐을 풀고, 텐트를 치고, 대충 정리를 끝낸 저희는 "자유시간"에 들어갔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수영을, 어떤 아이들은 카드놀이를, 어떤 아이들은 간식부터…. 저희 "꾼"들은 당연히 가까운 갯바위로 달려갔습니다. 설레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낚싯대를 드리웠습니다. 그러나 웬걸! 고기들은 조금도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물때가 아니었던지 꿈에도 그리던 우럭은 얼굴도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몇몇 아이들과 자리를 옮겼습니다. 반대편 갯바위를 찾아갔는데, 적어도 2km는 더 되는 거리를 거의 뛰다시피 했습니다. 포인트도 훨씬 좋아 보여 "이제는 좀 잡히겠지"하고 힘차게 낚싯대를 던졌습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하루 내내 잡은 것이 겨우 잔챙이 두 마리뿐이었지요.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서울을 떠날 때에 한껏 부풀었던 기대감은 완전히 사라지고 참담한 심정이 된 저희는 어깨를 잔뜩 늘어트린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시몬 역시 저희와 똑같은 심정을 이렇게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루카 5,5). 시몬의 하소연은 저희 같은 "꾼"들에게는 참으로 현실감있게 다가옵니다. 잔뜩 기대를 걸고, 먼 길을 달려갔지만 단 한 마리도 못 잡았을 때 그 허탈함은 정말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낚시라는 것, 그렇게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저는 낚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 마리도 못 잡은 시몬의 그 참담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낚시는 물때가 언제냐에 따라 그 결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시몬과 동료들이 밤 낚시를 한 때는 아마도 가장 물때가 좋지 않을 때로 추정됩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쳐보았지만 단 한 마리도 못 잡은 시몬과 동료들은 허탈한 심정을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일단 고기를 잡아야 생계를 유지하는 어부들인데, 단 한 마리도 못 잡았으니 실망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단 한 마리도 못 잡았던 시몬의 허탈한 모습을 떠올리며, 오늘 제 생활을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새벽부터 밤 늦도록 갖은 애를 써보지만, 그럴수록 더욱 뭔가 허전하고, "이게 아닌데, 이런 식으로 살아서는 안 되는데" 하는 걱정에 사로잡힙니다. 불철주야 식사까지 건너뛰며 노력한 결과가 더할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다가올 때 차라리 죽고만 싶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라는 시몬의 하소연을 묵상하면서 주님과 연결고리 없이, 진지한 기도 체험도 없이, 주님 현존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은 채 실적주의, 활동주의에 푹 빠져 살아왔던 제 자신의 지난 세월을 깊이 반성합니다.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주님과 함께 잡는 것입니다. 주님 방법에 따라 잡는 것입니다. 주님 뜻에 맡기는 일입니다. 비록 지금 당장 결과가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밤새도록 단 한 마리도 못 잡아 잔뜩 심기가 불편해있던 시몬과 동료들에게 던지신 예수님의 말씀은 위로 말씀이 아니라 불난 데 부채질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고기잡이로 이력이 나 있던 전문직 어부인 시몬과 동료들이 잔뜩 심기가 불편해 있는데, 고기잡이에는 전혀 문외한인 목수 출신 예수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시몬은 "이 양반이 누굴 놀리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모멸감을 꾹꾹 눌러 참으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이 상황에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는 예수님 요청은 한 마디로 기존에 시몬이 지니고 있던 낡은 가치관, 인간적 삶의 양식, 세속적 사고방식을 버리라는 당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는 말씀을 통해 어제까지 우리가 지니고 있었던 낡은 인간적 가치관과 사고방식, 행동방식을 이제 멀리 던져 버릴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그래야 완전한 새로움인 예수님을 받아들일 여유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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