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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내 이마에 물수건을 얹어주시는 하느님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내 이마에 물수건을 얹어주시는 하느님> 1월 13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마르 1,29-39)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살다보면 죽어도 가기 싫은 곳이지만 반드시 가야할 곳이 있습니다. 바늘방석 같은 분위기 때문에 회피하고 싶은 상황, 직면하고 싶지 않은 장소에 가면 우선 드는 생각이 "어떻게 하면 빨리 빠져나가나?"하는 생각뿐입니다. 뭔가 먹으면 체하기 십상입니다. 별것 없으면서 사람들의 모임, "내가 누구네" 하고 떠벌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행사, "한 이름"씩 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서 앉아있는 일입니다. 참으로 고통스런 분위기입니다. 이승과 작별을 준비하는 사람들, 극심한 병고로 죽을 고생을 다 겪고 있는 형제들을 방문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갑자기 멀쩡하던 내 몸도 쑤시는 것을 느낍니다. 안쓰러워서 도저히 얼굴을 마주볼 수가 없습니다. 악령에 들린 증세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 그 옆에 서있다는 것 그 자체로 십자가입니다. 충혈된 눈은 마주보기가 두렵습니다. 거품을 문 입으로는 끊임없이 악담이 쏟아져 나옵니다. 도망가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다 위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당대 의술로는 더 이상 어떻게 손써볼 도리가 없었던 사람들, 죽음을 향해 걸어가던 사람들이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속는 셈치고 마지막으로 한번" 예수님을 찾아 몰려들었습니다. 우리가 눈여겨볼 일은 예수님의 환대와 개방성입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막가는 사람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리 구제불능의 인간이라 할지라도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금 새출발할 기회-치유를 통한 구원-를 주셨습니다. 수도공동체에서 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 "형제"는 기쁠 때 함께 있어주는 사람입니다. 기쁨을 함께 나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생일이나 축일 같은 날, 멀리서 찾아와 축하의 인사를 건넵니다. 또 형제는 만사가 잘 풀릴 때, 더욱 정진하도록 격려해주는 사람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내 일처럼 행복해 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형제는 거기서 멈춰서는 안되겠지요. 진정한 형제는 이웃이 밤길을 홀로 걸어갈 때 같이 동행해주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형제란 이웃이 대형사고를 저질러서 야단이란 야단은 혼자서 다 맞고 있을 때 나 몰라라 하지 않고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이웃이 임종의 공포에 시달릴 때 이마에 물수건을 얹어주는 사람, 그야 말로 진정한 형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형제중의 형제였습니다. 그 누구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모든 고질병자들, 나병환자들, 중풍병자들, 장님, 귀머거리들을 다 품어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등을 두드리며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들의 집요한 요청을 뿌리치지 않으시고 그들의 깊은 슬픔과 고통에 함께 동참하셨습니다. 구세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있음", 그것처럼 우리에게 큰 위로는 없습니다. 우리의 눈물방울 그 가운데 함께 하시는 예수님, 우리의 서러움과 고독, 그 한 가운데 함께 자리하시는 예수님, 우리의 병고와 죽음의 순간에도 우리 머리맡에 함께 해주실 예수님을 기억하며 다시금 힘차게 일어서는 하루 되시길 빕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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