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좀 더 잘할걸..>
10월 20일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루카 12,35-38)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저희 살레시오 회원들에게 있어
인사이동 때 마다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아이들입니다.
오래전 일이 생각납니다.
정들었던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다른 곳으로 둥지를 틀기 위해 떠나던 아침이었습니다.
형들한테 맨 날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던 녀석,
못 얻어먹어서 삐쩍 마른 강아지 같던 한 꼬맹이가
계속 저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바빠 죽겠는데 자꾸 왜 그러냐고 하니,
자기도 저랑 같이 가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난감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원망과 아쉬움 섞인 아이들의 눈동자들을 뒤로 하고,
또 다른 길을 떠나면서
얼마나 후회가 막심했는지 모릅니다.
계속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한 생각은
‘있을 때 좀 더 잘 할 걸’이었습니다.
같이 살 때, 한번이라도 더 품에 안아주고,
한번이라도 더 눈길 주고,
한번이라도 더 용서해주고, 조금 더 뛰어다니고...
그렇게 살 걸, 하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니,
늘 준비하고 깨어 기다리고 있어라’고 당부하십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
그분께서 우리에게 가장 기대하는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묵상해봅니다.
아마도 평생을 하루처럼,
하루를 평생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요?
오늘을 마지막처럼, 오늘이 내 일생의 전부인양,
그렇게 진지하게, 철저하게, 심혈을 기울여,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요?
이웃을 바라볼 때도
오늘이 지나면 더 이상 못 볼 사람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모습,
오늘 배당된 일을 시작하면서 내게 주어진
마지막 업무로 여기는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한 선교사 신부님께서
회의 차 긴 배 여행을 다녀오셨답니다.
기나긴 여행이었기에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치셨던 신부님이셨습니다.
비마저 추적추적 내려서 그런지
초라한 부두에는 마중 나온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배에서 내려서니
뜻밖에도 한 할머님이 신부님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본당 내에서 가장 가난한 할머님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신부님의 모습이 나타나자
그녀의 얼굴이 활짝 밝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외쳐대는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신부님이 안계시니 마음이 너무 허전해서
벌써 사흘 전부터 부두에 나와 있었다.
배가 도착하는 시간만 되면 비까지 맞아가면서
목이 빠져라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님은 신부님 앞으로 봉지 하나를 내밀었는데,
풀어보니 거기에는 손때가 묻을 만큼 묻어있는
이상하게 생긴 큰 떡이 여섯 개나 들어있었는데,
보아하니 불상 앞에 놓아둔 떡이 틀림없었습니다.
그 할머님을 바라보며
신부님은 이런 진리 하나를 깨달으셨답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기쁜 일중에 기쁜 일 한 가지는
‘한 인간이 적어도 다른 한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다시없는 귀한 존재’로 여기지는 것입니다
(A. J. 크로닌, ‘천국의 열쇠’, 바오로 딸 참조).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아마도 그분께서 가장 기뻐하실 삶의 모습은
위의 신부님과 할머님 사이 같은
그런 그림 같은 모습의 삶이 아닐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 자체로 삶의 기쁨이며 희망인 그런 관계,
한 며칠 못 보면 허전하고 쓸쓸해서 못 견딜 정도의 그런 관계...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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