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미로운 하느님 말씀이 봄비처럼..>
9월 19일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루카 8,4-15)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살아가셨던 이스라엘은 아시아에 속해있지만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있기에 지중해성 기후가 강합니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기후인데
우선 1년 중 우기(10월~3월)와 건기(4월~9월)의 구분이 명확합니다.
우기와 건기가 명확히 구분됩니다.
우기는 또 세 시즌으로 나누어지는데,
10월~11월에 내리는 이른 비,
12월~2월 사이에 내리는 겨울 비,
그리고 3월 전후에 내리는 봄비로 구분됩니다.
이스라엘 지방의 농부들은 11월 경 이른 비가 내리고 나면
적당한 때를 골라 파종을 합니다.
그 사람들의 파종은 우리의 방식과는 많이 다릅니다.
우리처럼 비료를 뿌리고, 땅을 갈아엎고, 이랑을 만들어 골을 파서,
골 사이에 씨를 묻고 흙을 덮는 방식이 아닙니다.
밭으로 나가기 전 농부들은
씨앗이 가득 담긴 주머니를 허리에 찹니다.
우리처럼 갖은 정성을 다해 일구고
잘 준비된 밭에 세심하게 씨앗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적당히 대충 씨앗을 흩뿌립니다.
그러고 나서 쟁기질을 하여 씨가 땅에 묻히게 했습니다.
씨앗 입장에서 보면
생명을 건 하나의 도박 같은 파종방식이었습니다.
운이 좋아 좋은 땅에 떨어지면 사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재수 없는 돌밭이나 길바닥, 가시덤불 사이에 떨어지면
인생 종치는 방식의 파종이었습니다.
이런 특별한 파종 방식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씨는 오늘도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각자에게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미사 중 사제의 강론을 통해,
우연히 펼친 성경 속 한 구절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동료 인간의 입을 통해,
오늘 하루 내가 겪은 다양한 사건 사고를 통해
말씀의 씨는 지속적으로 내게 뿌려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 각자를 향해
길이나 바위나 가시덤불 위로 떨어지진 씨가 아니라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되라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토양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각자 영혼의 텃밭에 뿌려지는 하느님의 말씀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데 저절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씨앗이 발아되기까지
적당한 수분이며, 햇볕이며, 자기 죽음이 요구되듯이
하느님 말씀의 씨앗이 우리 안에서 싹트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바르고 착한 마음, 말씀에 대한
진지한 경청의 태도,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는 자세,
끈기와 용기, 말씀에 대한 개방과 환대,
선포된 말씀을 삶 가운데 실천하려는 적극성,
선포되는 말씀에 따른 지속적인 자기 성찰...
가끔씩 그런 사람들 만납니다.
아무리 외쳐보아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정말 그게 아닌데, 빨리 진실을 깨달아야 하는데,
귀가 절벽으로 가로막혀 있는 듯합니다.
마음으로 들으면 좋을 텐데,
진지하게 마음에 새겨 삶이 변화되면 좋을 텐데,
타성에 빠져, 아집에 빠져, 깊은 늪에 빠져 헤어날 줄 모릅니다.
아마도 당대 유다인들 앞에 서 계셨던
예수님의 심정이 그랬을 것입니다.
다시금 첫 출발점으로 되돌아갈 순간입니다.
완고하고 무뎌진 우리 마음의 텃밭을 갈아엎어
부드럽게 만들 순간입니다.
감미로운 하느님 말씀이 봄비처럼
우리 내면 안으로 깊숙이 스며들도록 내면을 비울 순간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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