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도

[스크랩] 형틀없는 십자가 : 손우배신부

형틀없는 십자가 : 손우배신부

 

 

가르멜 수도원에 가면 우리는 십자고상(十字苦像)이 아닌 그리스도가 없는 빈 십자가를 볼 수 있다. 십자가는 원래 이집트와 고대 동방에서 사형에 처하던 도구(형틀)로써, 그리스도교의 십자고상은 십자가 형틀에 매달려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상(五傷)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가르멜 수도회에서는 왜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 빈 십자가 형틀만 있는 것일까?

<!--[if !supportEmptyParas]--> <!--[endif]-->

십자가에 예수님이 안 계신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 즉 부활의 십자가를 의미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는, 예수님이 안 계신 십자가에 바로 내가 못 박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자신이 그 십자가 형틀에 그리스도처럼 못 박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일상생활 중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통과 시련을 우리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endif]-->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 같은 빈 십자가를 사랑하여, 십자가를 거부하기보다 십자가를 기꺼이 끌어안았다. 실제 성인은 수도회 내에서조차 많은 이들에게 고통당하는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아래 십자가를 품에 안고 있는 성인의 얼굴 표정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에서도 작가는 십자가를 기꺼이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준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비르지타 성녀의 기도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저 자신과 모든 사람들이 당신께서 주시는 십자가를 거부하고 당신의 성스러운 계획을 불평하며 짓는 모든 죄를 보속하기 위해, 이런 죄를 막고 제게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히 사랑하기 위해,"


십자가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사랑하는 분이 아프셨기에 나도 함께 아픈 것이다. 우리의 인간 관계에서도 "너와는 좋고 즐거운 것만 함께 할테니 어렵고 힘든 것은 너만 가지고 있어라. 그것은 네 몫이니 절대 나와 함께 나누지 마라!"고 말한다면 그 관계가 어찌 사랑하는 관계일 수 있겠는가! 기쁨은 물론 슬픔도 기꺼이 함께 할 때 진정 사랑하는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과 좋은 것만 함께 나누고 아픔과 슬픔은 거부한다면 우리는 결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출처 : 가르멜산 성모 재속 맨발가르멜회
글쓴이 : 장미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