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성 요한 고考
글 김광서 토마스아퀴나스 신부
<제1강의>
십자가의 성 요한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개념들을 정확히 이해해서 설명한 책들보다는, 지금까지 나와 있는 책들은 주변적인 개념들을 다루어 소개한 경향이 있어서 십자가 성 요한을 이해하는데 오해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 하면 끊고, 비우고, 없애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접근 할 수 없는 초인간적인 극기를 요구하는 성인으로 존경을 하지만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는 성인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서 아쉽습니다.
성인의 가르침을 우리의 삶속에서 내적인 영성 안에서 가장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는 분으로 확신을 갖은 것이 성인을 친근하고 깊이 있게 만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 생애는
① 폰띠베르스에서 태어나서부터 수도원에 들어 올 때까지
② 수도원에 들어 온 후에서부터 49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고, 내면적인 특성에 있어서 크게 달라지는 사건으로 똘레도 감금사건을 기준으로 전반기 모습과 후반기 모습이 차이가 있습니다.
감금 전에도 영적으로 높은 단계에 있었지만 감금 전에는 글을 쓰지 않았고, 똘레도 감금 중에 당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시(로망스2편, 영적찬가31편)를 쓰셨고, 탈출 후 시에 대한 설명과 해설을 쓰셔서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1.영적찬가 2.가르멜 산길 3.어둔밤 4.사랑의 산불꽃>
성인의 저서4권의 내용을 보면 모두 일관된 목표를 제시하고 있고, 유기적인관계에 있습니다.
이 목표가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으면 성인이 제시하는 개념들에 대한 내적질서, 개념들 안의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중심적인 것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가르멜 산길(끊고 비우고 없애라) 어둔밤(정화에 있어서 끔찍스럽고 고통스러운 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중심적인 관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고 접근하므로 써 종속적인 내용들이 더 많이 소개되고 있지만(無의 박사), 성인의 영적체험의 바탕은 사랑입니다.
감금 중 로망스2, 영적찬가31편을 쓰셨는데 내용을 보면 남녀 간의 사랑의 노래로 직설적이고 관능적이고, 에로틱한 표현으로 인간본능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적찬가(cantico espiritual-영적인 노래)의 핵심적인 내용은 높은 단계에 도달한 영적인 차원에서의 하느님 체험으로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하느님 사랑과의 합일로써 평범한 모든 사람들이 도달 할 수 있는 영적여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가르멜 산길'과 '어둔 밤'은 끊고 비우고 없애라는 수단과 방법을 제시한 것이지 영적목표로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음
하느님 사랑의 합일은 절대적인 가치 영원한 자유 영원한 행복의 가치로 더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작은 것들은 끊고, 비우고 없애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산길 머리말>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당신과 완전히 합일을 이루는 것은 이승에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 하느님의 빛에 도달하려는 영혼이 거쳐 가야하는 어둔 밤을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내 지식과 경험의 빛보다 훨씬 더 큰 빛이 필요하다"
<어둔밤2부>-대신덕적인 차원에서 하느님과의 영적결합인 사랑 - 사랑의 사다리
<사랑의 산 불 꽃>- 가장 마지막 저서로 최고의 합일 경지인 영적결혼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있는데 세권의 저서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 결혼한 평신도 여자인 "빼날로사의 안나에게 헌정했다"는 작품으로 초대의 보편적인 가르침으로 모든 사람들이 영적인 최고의 경지에 도달 할 수 있음을 의미 함.
<제2강의>
성인이 똘레도 감금 9개월 동안에 하느님을 원체험한 사랑의 시를 왜 관능적이고, 애로틱한 방법으로 표현하였을까?
하느님사랑은 인간적으로 우리가 만들어낸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 먼저 존재하고 있는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 안에서 친교하는 신적사랑으로 이 사랑은 변증법적인(주고받는)방법으로 제시되는 사랑으로 내용은 함축적인 의미를 제시하고 있지만 상징적으로 표현한 사랑으로 복음적인 관계와도 연결됩니다. - 신약성서에서는 자연적인 사랑을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사랑, 신적이고, 친교적인 사랑, 아가페적인 사랑이다.
영적찬가에서 보여주는 특성은 실재적으로는 하느님의 높은 사랑을 담고 있지만, 인간적인 사랑(관능적인 표현)의 표현 방식을 담아서 신적사랑으로 이끌어갑니다.
거룩함과 세상을 이분화 시킨 것이 아니라 거룩함을 세상에 담아서 거룩함으로 이끌어 갑니다.
성인은 똘레도 감금 전에도 최고의경지에 들어가 있었으나 감금체험을 통해서 새롭게 변화되어 신비체험을 글로 써냄으로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신비체험(하느님의 직접적인 체험)과 신비현상체험(환시, 환청, 탈혼)은 다릅니다.
신비체험을 한 후 신비가들은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① 신비체험 후 침묵으로 들어가는 유형(80%) - 토마스아퀴나스
'신학대전'(하느님의 가르침을 스콜라적인 방식으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정 반 합의 방식)
"저는 당신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② 신비체험 후 글을 쓰는 유형(20%) - 예수의 성녀 데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십자가의 성 요한 똘레도 감금 전 최고의 경지로 올라가게 된 계기는
① 예수의 성녀 데레사께서 영적지도자로 초대하여 5년 동안을 함께 지내면서
②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영적결혼을 십자가의 성 요한께서 이끌어 내면서
예수의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을 비교하여 보면 영적체험이나 영적사상이 거의 한 영혼처럼 비슷하지만 표현방식은 조금 다릅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저서들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었고, 십자가의 성 요한의 저서들은 객관화시켜서 신학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제3강의>
성인께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보면 같은 내용이지만 다양한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용어들을 이해해야 성인께서 제시하는 개념들과 용어들 사이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성인께서 추구하는 최고의 영적목표는 '하느님 사랑의 합일'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는 '행복'입니다.
행복의 내용에 있어서는 각자 개인적인 차이가 있지만 보편적인 행복의 추구는 眞 善 美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종교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영원한 행복,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고 있으므로 진 선 미
+ 성(거룩함)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므로 신앙적인 차원에서는 구원, 영성적인 관점에서는 완덕입니다.
그러나 성인께서는 완덕이라는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으시는데 그 이유는 완덕이라는 개념은 자체적으로 스스로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께서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성 안에서 드러나는 최고의 목표나 최고의 가치를 표현할 때 1. 친교, 2. 하느님과 합일(변화), 3. 영적결혼 - 같은 의미를 다양하게 바꾸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합일은 인간이 하느님 화(하느님처럼 되는 것)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합니다.
하느님처럼 된다 -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초자연적으로 완성되는 것
<산길2:5:3> "그것은 영혼이 하느님과 합쳐져서 변화하는 것으로 초자연적인 합일은 두 의지, 말하자면 인간과 하느님의 의지가 하나로 합쳐서 상반됨이 없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영혼이 하느님의지와 상반되고 맞지않는 것을 온전히 끊어버리면 하느님 안에서 사랑으로 變化한다."
<산길2:5:4> "초자연은 사랑과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通交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과 보다 많이 합쳐진 영혼과는 하느님께서 보다 많이 통교하시고, 그 뜻이 온전히 같아진 영혼은 하느님 안에서의 합일과 변화가 초자연적으로 온전하게 된다."
<산긴2:5:6> "햇살이 유리창에 비친다 하자 유리가 티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하면 유리전체가 햇빛처럼 되고 밝아져서, 햇빛과 같이 보이고 햇빛과 같은 빛을 내 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햇빛과 같이 보인다 할지라도 그 본성은 광선 자체는 아니다."
<산길2:5:7> "영혼은 연혼이기보다 하느님인 듯 그렇다. 참여로서의 하느님인데 변화는 했다 할지라도 전과 같이 하느님의 본질과는 아주 다른 것이니, 아무리 태양빛을 함빡 받는 유리라도 그 광선과는 본질을 달리함과 같다."
<산길1:1;4> "하느님 사랑에 불 타 오로지 당신의 사랑 하나 때문에 당신이 이끌어 내 주시는 대로 밖으로 뛰쳐 나옴을 말하는 것이다"
- 사랑의 관점 안에서 끊고, 비우고 없앤다.
* 목표를 어디서 찾고 내 안에서 어떻게 실천 시킬 것인가?
1. 자연적인 현존, 본질적인 현존
하느님은 무소부재의 하느님이시므로 온 우주에 다 계신다. 이것은 자연적인 현존으로 하느님의 완벽한 현존을 말합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특별한 존재로서 당신(하느님)의 모상(하느님의 본질적인 모습은 사랑이십니다.)에 따라 창조되었고 하느님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 영혼 내면 안에 현존하십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성요한은 인간의 실체 안에 현존하신다고 하십니다.(본질적현존, 자연적현존)
그런데 이러한 현존을 가지고는 하느님의 완전한 현존을 만날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실천적인 만남의 관점에서 현존을 합일이라는 용어로 바꿉니다.
(현존-신학적인 면에서 제시하는 개념이 강하고, 합일-실천적인 관점에서 강하지만 같은 용어임)
<산길2:5:3 참조>
2. 초자연적인 현존
- 삼중적인 방식으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 주신다.<영적찬가Ⅰ 제11노래 참조>
⑴ 세례의 은총으로 (은총적인 현존 합일방식, 초자연적 현존)
⑵ 위로부터의 영성 (은총 - 하느님)
⑶ 아래로부터의 영성 (사랑 - 인간) - 닮아가는 합일방법
십자가 성 요한은 사랑의 현존과 합일을 통해 이루어져야만 완전한 현존이 이루어진다고 하십니다.
- 초자연적 현존 방식
<산길2:5:4> "하느님께서는 영혼 안에 항상 계시면서 그 자연의 존재를 주시고 유지하시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대서 항상 초자연적 존재를 주시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초자연은 사랑과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통교이기 때문이다."
<제4강의>
가르멜산길2권5장에서 실체적인 합일과 영혼의 깊은 곳 안에 계시는 실체적 현존에 대해서 구체적인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 실체적 개념 - 한 사람 한 사람 구체적으로 존재, 하나의 개별적 존재
* 실재 - 실제로 존재하는 것(Reality) - 사과 라는 표현
* 실제 - 실제로 있는 것(Actuality) - 용 이라는 표현 (허구 안에 있는 것)
실체적 개념의 용어 - 신학적인 용어로는 영혼, 윤리적 용어로는 인격으로 영성생활의 기초
존재의 주체인 나(생각하고 느끼고, 감각적인 표현)와 기능적인 면의 나 (지성, 기억, 의지 인식영역 안에서 드러나는 체험)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밀접하면서도 떨어져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외부 감각의 자극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기능적인 나)은 주체적인 나(영혼)가 아닙니다.
영혼은 존재의 영역 밑바닥에 있기 때문에 (인식보다 밑)체험이 되지 않습니다.
⑴ 인식 영역인 나 - 인식을 통해서 체험된 나
자신의 욕망, 체험된 구성 외부자료를 통해서 재구성된 나, 환상이고 허구인 나 실재하지 않 는다. 거짓된 나 (Ego) - 소유, 만족감(원하는 것 소유) - 나 중심
⑵ 존재 영역인 나 - 실체로서의 나, 영혼으로서의 나
체험영역, 인식영역이 들어오지 않는 나,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나 신적생명을 가지 고 있다. 참된 나(Self) - 존재, 기쁨, 사랑 - 하느님 중심
영혼의 모든 것이 삶의 주체임에도 체험이 잘 안되지만(예 눈동자는 눈동자 자신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참된 방식에 따라 살게 되면 체험이 됩니다.
<산길1:9:1> "천하일색인 얼굴도 검댕 칠을 하면 더러워지듯이, 고르지 못한 욕을 지니는 영혼도 더럽고 미워지는 것이니. 이 영혼이야말로 그 자체가 아름답기 짝이 없는 완전한 하느님의 모습인 것이다."
- 영혼 본성 자체는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파괴되지 않는다.
<어둔밤2:17:2> "이 캄캄한 관상을 비밀이라 부른다. 이것은 이성 및 다른 능력들의 작용이 캄캄한 채 비밀리에 진행된다. 영혼을 가르치시는 스승님이 실체적으로 계시는 곳이 영혼 안이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악마도 자연 감각도 이성도 이치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것은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이 계시는 영역은 기능적인 방법으로는 만날 수 없고 나눔, 기쁨, 사랑을 통해서만 우리의 실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잘 되고 있는지 아닌지, 자신이 일치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은 1차적인 감각의 요소 안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소한 작은 것 속에서 하느님과 일치되는 모습이 드러나는 것 이것이 소화 데레사의 영성입니다.
<제5강의>
하느님과 합일하는데 있어서는 하느님 사랑의 정도에 따라서 다르다.
<산길2:5:4> "그 정도가 같지 않아서 사랑 나름으로 저 통교를 많이 혹은 적게 가지는 것이다. 사랑 안에서 보다 많이 나아간 영혼과는 보다 더 많이 통교하시고 "
<산불꽃 1노래 13> " 영혼은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혼이 높은 단계(강도)의 사랑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만큼 하느님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며, 하느님께 집중한다."
<어둔밤2:18:5> "관상이란 사랑의 지식, 하느님께서 내리신 사랑 겨운 지견으로서 영혼이 그 창조주 하느님께 한층 한층 올라가기까지 영혼을 비춰주며 사랑에 불타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사랑만이 영혼을 하느님께 결합시켜 하나가 되게 하는 까닭이다."
십자가 성 요한은 하느님 합일의 정도의 차이에 따라서 상징적인 비유로 '어둔밤'에서는 사랑의 사다리 10단계로, '영적찬가'에서는 사랑의 술광 7단계로 구분하였지만 이 숫자들은 완성을 상징하는 숫자로 사랑의 층계(어둔밤)와 사랑의 술광(영적찬가)은 영혼이 합일하기 까지 흐름이 같습니다.
<어둔밤> - 비밀사다리
* 첫 층 - 영혼을 좋이 병들게 하는 것 (상사병)
* 둘째 층 -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게 한다. (행동으로 나아간다)
* 셋째 층 - 일을 하게하고 지치지 않도록 열을 안겨준다.
* 넷째 층 - 사랑의 불이 안으로 깊이깊이 타오른다.
* 다섯째 층 - 하느님을 못 견디게 그리워하고 열망하게 한다.
* 여섯째 층 - 영혼은 거침없이 희망을 가지고 내닫는다. (하느님과 나와 속삭인다.)
* 일곱째 층 - 영혼을 매우 대담하게 만든다.
* 여덟째 층 - 하느님을 영혼이 붙들고 놓지 않으려한다.
* 아홉째 층 - 영혼을 맛깔스럽게 불태워준다.
* 열째 층 - 영혼이 온전히 하느님을 닮게 한다.(변화적인 합일에 도달)
<영적찬가 26노래 3번> "술광이란 이 세상에서 한 영혼이 달성 할 수 있는 사랑의 최종이요, 가장 긴밀한 절정이다. 그래서 이것을 술광의 내부라 부른다. 사랑의 단계 또는 술광이라는 것은 일곱 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영혼은 성령칠은을 자기 힘에 상응하는 양식으로 받아들일 때 완전하게 소유하는 것이다."
십자가 성 요한의 가르멜에서의 하느님 체험은 신비체험, 신비신학이라고 합니다.
⑴ 신비체험 - 하느님 체험 중에서 가장 깊고 높은 최고의 절정인 직접적인 체험.
⑵ 신비현상 체험 - 신비체험의 한 요소로 환청, 환시, 탈혼
신비현상체험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하고 항상 식별해야 하는 부분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기 때문에 영적단계에서 볼 때 최고의 단계에서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주실 때는 은총이고 선물로 좋은 것이지만 은총을 받지 않음만 못할 경우가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 은총을 받아드리는 사람의 마음자세, 성숙도에 초점을 맞추어 식별의 문제를 제시하며, 하느님의 은총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집착하거나, 애착하게 되면 영혼에 해가 주어 줄 수도 있고, 반면에 하느님의 은총이 아닐 경우라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영혼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므로 영혼의 겸손한 자세를 강조합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신비현상 체험에 대한 특별한 신심이 강합니다.
* 신앙 :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필수적으로 교회 방침에 따라야 하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
* 신심 : 선택사항으로 자신의 취향과 관점, 자신의 삶의 자리에 맞추어 갖고 있는 개인적인
성향의 믿음 행위
신심은 신앙을 강화하기위한 부수적인 선택입니다.
식별 방법
1. 교도권의 순명
2. 겸손함을 통해 얼마나 덕을 실천하는가.
신비현상은 하느님의 특별한 체험으로 사람들의 덕행을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은총자체는 하느님의 선물이지 하느님이 아니므로 은총을 주신분인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야합니다. 은총의 선물에 집착하고, 애착하고 매어달리기 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에 대해서 항상 끊임없이 겸손하게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이 성숙한 영적기도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비현상 체험은 예수의 성녀 데레사에게서도 영적약혼 단계에서 일어났지 영적결혼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성 요한은 영적찬가에서 이것은 신심의 부족에서 오는 현상이고 최고의 완덕에 올라간 사람들은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일치가 하느님 합일의 최고의 경지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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