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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감동순간 그림과 사진

[스크랩] 칼레의 시민들(The Burghers of Calais, 1895) 로댕(Auguste Rodin)

칼레의 시민들(The Burghers of Calais, 1895)

 

로댕(Auguste Rodin)

 

 

 

 

 

 

 


 

 

 

칼레의 시민들(The Burghers of Calais)

1889, Bronze,  231 x 245 x 203 cm, 로댕미술관, 파리

 

 

 

로댕(Rene-Francois-Auguste Rodin; 1840-1917)의 '칼레의 시민들'[The Burghers of Calais]을 만납니다. 조각가 로댕에 의해 작품화된 칼레의 시민 6명, 아니 독일의 극작가에 따르면 7명의 가슴 뜨거운 삶과 죽음의 결단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미리 말씀을 드리자면 로댕의 이 작품은 전 세계에 12개가 있는데 모두 진품입니다. 의아하게 생각하실까봐 설명드리자면 이 작품들은 청동주조 작품이기 때문에 생전에 로댕의 허락을 받은 프랑스 정부의 철저한 관리 하에 여러 작품을 찍어낼 수 있었는데 12개까지만 진품으로 인정해준다고 합니다. 한국 삼성(호암) 갤러리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에서 이 작품 사진을 찍었느냐에 따라 배경이 조금 다르게 나오곤 합니다.

 

1300년대 영국과 프랑스와의 100년 전쟁이 벌어지던 때의 일입니다. 프랑스 지방의 칼레는 1347년, 영국의 에드워드 3세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게 됩니다. 프랑스의 필립 6세는 칼레를 지키는 것을 포기했고 결국 11개월 동안 영국군의 전면포위에도 끝까지 저항하던 칼레는 항복을 선언할 수 밖에 없었으나 끝까지 저항하던 칼레에 대해 영국 에드워드 왕은 격노하여 모든 백성을 진멸할 것을 선포합니다. 항복을 조건으로 협상을 하고자 하던 칼레의 사람들에게 영국의 에드워드 3세 왕은 그렇다면 항복을 받아주되 적어도 6명의 대표자만은 반드시 본보기로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맨발로 목에 밧줄을 걸고 나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드워드 왕은 그 6명을 지명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6명을 지명하라고 말합니다. 칼레 시민들은 6명의 죽을 사람을 자기들끼리 골라내야 했습니다. 죽을 사람들! 6명이 죽어야할 사람으로 선출되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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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알 수 없지만 처형 전날 저녁 여섯명이 시민대표가 칼레의 광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전승에 따르면 전날 저녁에 7명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시장이 나오자 그 아들도 함께 따라 나섰다고 합니다. 한명이 더 나오는 바람에 제비를 뽑자는 의견을 생 피에르가 말했다는군요. 내일 아침 영국군의 진지로 교수형을 받으러 가기 위해서 선착순으로 오는 사람을 정하고 마지막에 오는 사람은 제외하자고. 그 밤이 얼마나 길었을까요. 다음 날 아침 생 피에르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6명이 모인 가운데 궁금해하는 시민들 앞에 생 피에르는 관 속에 누워 나타납니다. 결심이 흔들릴까봐 미리 죽음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훗날 이 내용에 감동하여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Georg Kaiser 1878~1945)가 쓴 희곡 "칼레의 시민들"(1914년에 발표, 1917년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초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날 시민대표로 7명이 나왔고, 상 피에르가 죽었다는 것은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의 해석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500년이 지나 1884년, 칼레 시청에서는 당시의 위대한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에게 이 6명의 영웅적인 모습을 담은 조각을 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이 선조들의 사건에 감동했던 로댕은 1895년, 이 6명의 조각을 10년에 걸쳐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로댕은 이 조각들을 영웅적인 모습으로 조각해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려워하고 고뇌하고 눈물을 흘리고 체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칼레 시청 측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조들의 당당한 모습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로댕은 10년 동안 한 인물 인물을 생각하면서 상 피에르를 포함한 6명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며 그들의 고민을 절실히 생각하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유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t Pierre)

칼레시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 가장 연장자

 

 

  장 데르(Jean d'Aire)

항복의 표시로 영국왕에게 증정해야 할 칼레시의 열쇠들을 들고 서 있다.

 

 

피에르 드 위쌍(Pierre de Wissant)

걸어가며 동생 자크에게  무엇인가 말을 하고 있다. 

 

 

 

자끄 드 위쌍(Jacques de Wissant)

  형 삐에르 드 위상의 뒤를 따르고 있는 동생 

 

 

 

쟝 드 피엥스(Jean de Fiennes)

두려워보입니까?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까?

강해보입니까?

 

 

 

앙드리에 당드르(Andrieus D'Andres)

머리를 감싼 채 걷고 있는 그는 두려워서 그러는 것일까요?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마지막 이 사진의 방향에서 보십시요,

그들은 결국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려웠지만 주어진 책임을 따라 갔습니다.

 

로댕은 진정한 영웅은 인간이기에 두려움에 떨며 고민하면서도 그러나 결국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회피하지 않았던 점에 있는 것이지 겉으로 보기에 담대함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로댕은 말합니다. 이 작품을 자세히 보면 그들은 두려움으로 당황하고 거부하고 반발하고 고민했지만 결국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결단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얼핏 보기에는 그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고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들은 고민하면서도 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고민하면서도, 두려워하면서도, 왜 하필 내가 이 죽음을 당하는 가 생각했을 법 하면서도 그들은 뒤돌아 서지 않고, 고민하면서, 갈등하면서도, 교수대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 조각 사진들, 그렇게 보이십니까?

 

출처 : 가르멜산 성모 재속가르멜회
글쓴이 : 장미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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