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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부활

[스크랩] 주님 승천 대축일

                                                                     전원 발토로메오신부

 

어릴 적에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은 늘 저 멀리 하늘에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 무한한 거리에서 빛을 밝히는 별을 바라보며 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영원성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우주에서 거꾸로 지구를 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구에서 수억 킬로미터 떨어진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은 그야말로 한 점 푸른빛을 내는 작은 별이었습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본다는 것은 마치 탁상 위에 작은 지구본을 올려놓고 바라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지구 표면에 사는 사람을 관찰하려면 다시 수십억 배로 확대할 수 있는 현미경으로 보아야만이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서로 잘났다고 키 재기를 하며 사는 세상이지만, 사실 먼 우주에서 바라본 우리는 이렇게 현미경으로도 관찰하기 어려울 정도의 작은 생물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지구는 저 멀리 우주에서 바라보면 한 점 별이지만, 다시 땅 위에 발을 딛고 서서 하늘을 바라보면 지구는 하늘의 한 중심에 있게 됩니다. 지구 위에 사는 사람도 광활한 우주 저 멀리에서 보면 존재 자체마저 가늠할 수 없는 지극히 작은 존재이지만, 반대로 지구의 한 점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면 온 하늘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위대한 존재가 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날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구름에 감싸여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성경』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은 우주 저 멀리로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늘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온 우주를 품고 섭리하시는 하느님 안에 하나가 되셨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한 점 작은 별에 사는 보이지도 않는 존재이지만, 하늘이 되신 주님을 모시고 살고 있으니, 다시 우리는 온 하늘을 품고 사는 가장 큰 존재가 됩니다. 주님 승천의 의미입니다.

 


 

 

                                                                  전승규 아우구스티노신부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인 러시아의 유리 가가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구는 푸르다. 그리고 너무도 아름답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하느님은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미국의 우주인 암스트롱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지구가 우연만으로 이만큼 아름답게 만들어질 수는 없다. 나는 우주에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얻었다.” 이처럼 같은 사실이라도 보는 시각과 믿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가가린은 우주의 공간적인 외면만 본 것이고, 암스트롱은 우주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손길과 섭리를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습니다(사도 1,9).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머리 위의 공간적인 하늘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영역, 곧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이 하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오르심으로써 인간 세계와 하느님의 영역에 사다리를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 승천 대축일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일정한 장소와 때에 갇혀 계시지 않게 되셨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분이 되셨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거룩한 곳, 하느님의 영역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입니다. 이 순례의 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험난한 곳을 만나 건너기 힘들 때 예수님께서는 다리가 되어 주십니다. 그리고 오르기 힘든 삶의 고통을 만날 때 사다리가 되어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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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르멜산 성모 재속가르멜회
글쓴이 : 장미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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