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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감동순간 그림과 사진

[스크랩] 그리스도의 탄생

 

 

     그리스도의  탄생

 

 

 

 

성서에는 예수의 탄생 연도나 날짜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고대 로마에서는 일 년 중 하루해가 가장 짧았다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보고 이날을 축제로 삼아 농업을 주관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로마의 이교도들은 동지절(12월 24일~다음해 1월 6일)을 큰 축제로 지냈는데, 4세기 로마의 주교는 그리스도교가 이교도를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의 축제일인 동지를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채택하였다. 성서는 예수의 탄생장면을 루카복음 2장에서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들이 거기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날이 되어, 첫 아이를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사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루카 2;6-7)

 

조르주 드 라투르 [새로운 탄생] 1640년경
캔버스에 유채, 76x91cm, 렌 미술관, 프랑스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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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화’ 최초의 모티프, 소와 나귀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리고 구유가 텍스트에서 묘사되는 성탄장면의 전부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최초의 이미지에서 마리아가 등장하지 않고, ‘구유’라는 표현 때문에 소와 나귀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4세기에 제작된 밀라노 성 암브로시아 바실리카에 있는 석관 일부는 매우 압축적으로 ‘신의
육화’를 표현하고 있다. 중앙의 아기 예수 좌우로는 나귀와 소만이 등장한다. 신학자들은 소는 순수한 동물로 나귀는 순수하지 못한 동물로 해석했다. 암브로시우스(Ambrosius)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이러한 해석을 더욱 구체화시켜 소는 선택받은 유대민족의 상징으로, 나귀는 이교도들의 상징으로 설명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of Nazianzus)는 율법의 멍에를 맨 소와 우상숭배의 죄를 지은 나귀 사이에 놓인 예수는 양쪽 모두의 짐을 덜고 평화를 가져오는 구세주라고 설파하였다.

 

  • 1 [예수의 탄생], 라벤나의 대주교 막시미안의 옥좌(세부) 550년경
    아르치베스코빌레 박물관, 이탈리아 

  • 2 [예수의 탄생], 스틸리콘의 석관(부분), 385년경
    성 암브로조 교회, 밀라노 

 

 

한편, 마리아는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하느님의 어머니 (Theotokos)'로 선언됨으로써 예수 탄생에 빼놓을 수 없는 모티브로 자리 잡는다. 이제 6세기 이르면 비잔틴에서 아기 예수, 마리아, 요셉, 소와 나귀, 별 그리고 산파까지 등장하는 장면이 확립된다. 외경 [야고보 원복음서]에 의하면 살로메란 이름의 산파는 마리아가 처녀로 아이를 낳은 것을 의심하여 “성부의 이름으로 나의 손가락을 확인하지 않고는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마치 사도 토마를 예고하는 듯한 말을 하였고, 곧 손을 다치게 된다. 살로메는 아기 예수를 만지면 치유되리라는 천사의 명을 따른 후에 비로소 기적을 믿게 되었다. 그래서 산파는 항상 손이 강조되어 표현된다.

 

 

신성한 빛이 동굴을 밝게 비추었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는 베들레헴에 있는 한 석회암 동굴에서 태어났고, 32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이곳에 그 탄생을 기념하여 동굴 위에 교회를 지었다. 유목생활을 했던 유대인들은 마땅한 숙소가 없을 때에는 천막을 치고 겉옷을 펼쳐 잠자리를 마련하곤 했다. 마리아와 요셉 역시 여관에 머무를 방이 없자 근처 언덕의 동굴에 임시거처를 마련했음을 상상해 불 수 있다. 

 

예수 탄생 동굴은 2세기부터 교회의 성직자들에 의해 언급되었는데, 실제 베들레헴의 헛간이나 마구간은 돌을 깎아 만들었으며, 피신처로 제공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복음서에 언급되지 않았던 동굴 이미지가 6세기 이후, 비잔틴과 중세 이탈리아에서 자주 나타난 중요한 이유는 이 탄생의 동굴이 무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동굴에서의 탄생은 항상 신비스러운 빛이 강조되는데, [위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마리아가 동굴로 들어섰을 때, 그곳에는 태양이 있듯이 밝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 이렇게 하여 신성한 빛이 동굴을 밝게 비추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동굴장면은 비잔틴에서 확립된 것으로 1355년 파올로 베네치아노(Paolo Veneziano)가 그린 [그리스도의 탄생]은 비잔틴 전통을 잘 계승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예수 탄생이 외양간 혹은 동굴 안에서 일어났다는 두 전승이 합쳐져 바위 배경에 지붕이 있는 곳으로 탄생의 장소가 묘사되었다. 동굴을 비추는 거대한 별, 그리고 목자에게 예수 탄생을 알렸던 천사도 함께 등장한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예수가 누워있는 석관 혹은 제대이다.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석관과 제대는 모두 다가올 예수의 수난을 상징하는 의미이다. 이는 성체성사가 확립된 12세기부터 등장한 것으로 ‘인류구원을 위한 희생양’으로서 예수의 모습을 암시한다. 이와 함께 주목할 것은 마리아가 막 몸을 풀고 침대에 기대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자세이다. 이 같은 경배 자세는 14세기에 등장한 새로움으로 ‘겸손의 마리아(Madonna of Humility)’유형이다.


파올로 베네치아노 [예수 탄생] 1360~70년경
패널에 템페라, 76.3x54.8cm, 베오그라드 국립 미술관

  

 

탄생의 밤을 그리다.

14세기의 새로움은 비단 아기예수를 경배하는 자세만이 아니다. 지오토(Giotto di Bondone)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교회에 그린 프레스코에는 어머니와 아기의 자연스러운 유대감이 표현되었다. 이제 아기 예수는 구유가 아니라 어머니의 침상에 함께 있으며, 갓 태어난 아기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현실에 눈을 뜨게 된 시대의 변화상이 미술에 반영되어 더 이상 성스러운 주제를 인간적인 모자관계로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기를 목욕시키는 두 산파의 모습을 한 장면에 그린 것은 지오토의 작품이 아직 중세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잔틴 미술에서 예수 탄생과 그의 목욕장면은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 함께 나타났다. 이는 아기 예수의 목욕이 예수 세례에 대한 암시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또한, 목자들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천사와 소식을 들은 목자의 놀라는 모습은 마치 한편의 성탄극을 보는 것과 같다. 사실 13세기부터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주관한 종교극이 화가들이 예수 탄생의 배경을 그리는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지오토는 황금색의 배경에서 벗어나 밤을 나타내는 짙은 남색의 하늘로 성탄의 밤을 표현했다.

 

지오토 [예수의 탄생] 1310년경
프레스코화, 성 프란체스코 성당, 아시시

헤르트헨 [예수 탄생] 1484~1490년
오크나무 패널에 유채, 34x25cm, 내셔널 갤러리, 런던

 

 

현실적인 표현을 선호했던 15세기 네덜란드 지방의 화가, 헤르트헨(Geertgen tot Sint Jans)은 깊은 성탄의 밤을 그리고 있다. 왼쪽으로 상단 멀리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장면이 나타난다. 이제 예수는 배내옷에 쌓여 있지 않고, 광배가 사라진 대신 금빛 광휘 안에 누워 있다. 온몸에서 환한 빛을 발하는 아기는 어두운 밤의 광원이자,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요한 1,9)’임을, 곧 그리스도의 탄생이 ‘빛’의 탄생임을 화가는 묘사하고 있다. 아기 예수에게서 나오는 빛의 표현은 스웨덴의 성녀 브리지타의 환시의 영향으로 그녀는 예수 탄생의 환영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나는 베들레헴 구유 앞에 있었는데 마리아는 너무나 아름다운 금발의 처녀였다. (...)
아기에서 너무나 밝은 빛이 나와 요셉이 가지고 온 촛불이 소용이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천사의 노랫소리를 들었고 마리아는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아들이자 하느님인 예수에게 경배를 드렸다.

 

한편, 17세기 조르주 드 라투르의 [새로운 탄생]에서는 모든 배경이 사라지고 성모자와 촛불을 들고 있는 안나(혹은 산파)로 압축된다. 세속적인 빛인 양초는 안나의 손에 가려지고 신성한 빛 자체인 아기 예수로 화면은 신비롭고 거룩하기까지 하다.

 

 

목자들의 경배

16세기에 접어들면 예수 탄생은 ‘목자들의 경배’ 이미지로 흡수되기 시작한다. 루카복음에 의하면 천사들로부터 예수 탄생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베들레헴에 가서 이 사실을 확인하고 예수 탄생의 소식을 세상에 전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목자들은 최초의 복음 선포자라고 할 수 있다. 목자들이 단순히 예수 탄생 장면에 등장하는 부속 인물이 아니라 경배를 하는 주체로 등장한 것은 예수의 가난한 탄생을 강조했던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영향으로 14세기 중반부터 이탈리아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 1 조르조네 [목자들의 경배] 1505~10년, 패널에 유채, 91x111cm, 내셔널 갤러리, 워싱턴
  • 2 엘 그레코 [목자들의 경배] 16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364x137cm, 부쿠레슈티 국립미술관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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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세기 베네치아에서 활동했던 조르조네는 [목자들의 경배]를 한 폭의 풍경화처럼 그리고 있다. 신성한 빛은 자연의 빛으로 대치되었고, 동굴 앞 마구간은 사라졌으며, 아기예수는 건초더미에 기대어 땅 위에 누워 있다. 이제 최초의 모티브 중 하나였던 구유마저 사라지고 바닥에 놓인 아기 예수는 겸손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한편, 반종교개혁 이후에 그려진 엘 그레코의 [목자들의 경배]에는 새로운 모티브가 등장하는데 화면 왼쪽 하단, 목자들이 선물로 가져온 다리를 묶은 어린 양이 그것이다. 이는 희생양이 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또 배경에 그려진 무너져가는 건물과 같은 폐허 이미지는 로마 중심에 있는 이교도 신전이 예수가 태어난 순간에 무너져 버렸다는 전설을 반영한 것으로 15세기 이후 예수 탄생에 종종 나타난다. 폐허의 건물 상단에 그려진 천사는 “수많은 하늘의 군대(루카 2, 13)를 암시하는 듯 강조되었다. 천사들이 들고 있는 두루마리에는 “Gloria in excelsis Deo et in terra pax hominibus bonae voluntatis”라고 적혀 있다. 이는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로 해석되며 신의 육화에 대한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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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진 / 문학박사 | 서양미술사 
중세 및 르네상스 미술사 전공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강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가르친다.

 

 

 

 

 

출처 : 가르멜산 성모 재속가르멜회
글쓴이 : 장미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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