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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아름다운 리듬

[스크랩]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My Way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My Way


30년대 프랭크는 해리 제임스 밴드와 계약을 맺고         

토미 도시 오케스트라와 함께 노래를 했었다.                

  이후 1943년 프랑크는 콜롬비아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고  

        해리 제임스 시절인기곡이었던 All or nothing at all 을 취입한다.

   이곡은 큰 인기를 얻게되나 불화로 프랭크는 레이블을 떠나

1952년 캐피톨과 계약을 하고 다시 시작한다.                

          1953년에는 영화 From here to eternity 에 출연해 오스카상을     

         수상하게 되고 그의 명성은 급상승하게 된다.                          

캐피톨과 일하게 되면서 프랑크는 넬슨 리들,                 

         고든 잰킨스, 빌리 메이와 같은 위대한 편곡자들과 일을 하게되어

많은 히트곡을 발표하게 된다.                                    

Young at heart, Love and Marriage, Hey Jealous lover 등   

많은 히트곡을 기록하게 된다.                                   

  1960년 캐피톨을 떠나 리프라이즈라는 레코사를 설립한다.
     1966년 Strangers in the night 로 No1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랭크 시나트라 하면 역시 My way 가 떠오른다.

      My way : Frank Sinatra (프랭크 시나트라)

      And now the end is near
      이제 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와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인생의 마지막 장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my friend I'll say it clear
      나의 벗이여, 이제 사심없이
      I'll state my case
      내가 자신있게 살아온
      of which I'm certain
      나의 인생을 밝히고 싶군요
      I've lived a life that's full,
      난 나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왔고
      I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살아오면서 수많은 일을 겪어왔습니다.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I did it my way
      난 내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아왔다는 겁니다.

      Regrets I've had a few
      조금의 후회도 없지는 않아요
      but then again too few to mention
      그러나 다시금 되새길 만한 후회는 없었지요
      I did what I had to do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다했고
      and saw it thru
      힘들었던 고난의 일들을
      without exemption
      아무런 편법도 쓰지 않고 해왔습니다.

      I planned each chartered course
      나는 내 모든 인생의 길을 계획했고
      each careful step along the by way
      그 길을 따라 최선을 다해 걸어왔습니다.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I did it my way
      난 내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아왔다는거지요.

      Yes, there were times,
      그래요, 친구도 알고 있으리라 확신하지만
      I'm sure you knew
      난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에도
      When I bit off
      터무니 없이 대들기도 했었던
      More than I could chew
      그런 적도 있었습니다.
      But through it all
      그러나 그 모든 일을 겪어오면서도
      when there was doubt
      행여 의심스러웠을 때는
      I ate it up and spit it out
      그 모든걸 다 먹었다가도 뱉어내버렸죠
      I faced it all and I stood tall
      난 모든 것에 맞서서 자신있게 견뎌냈어요
      and did it my way
      그래요 난 내 방식대로 살아온겁니다.

      I've loved, I've laughed and cried
      난 사랑도 했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I've had my fill,
      소유하는 만족감도 얻었고,
      my shere of losing
      잃어 버리는 좌절감도 겪었습니다.
      And now as tears subside
      그런데 이제 눈물을 거두고 나니
      I find it all so amusing
      그 모든 것이 우스웠다는걸 알게 됩니다.
      To think I did all that
      내가 해온 그 모든 일들을 생각해보면
      And may I say,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었다고
      Not in a shy way
      난 말할 수 있습니다.
      Oh,no,oh,no not me
      그래요, 아녜요, 난 부끄럽게 살지 않았어요.
      I did it my way
      난 내 방식대로 살아온 겁니다.

      For what is a man
      남자란 무엇을 위해 사는가
      what has he got
      남자란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가
      if not himself then he has not
      자신을 지키지 못하면 아무 것도 없는 거지요.
      To say the things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he truly feels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And not the words
      무릎을 꿇고 말하는 그런
      of one who kneels
      비굴한 자들의 말이어서는 안되는거지요.
      The record shows
      지난 세월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I took the blows
      내가 온갖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이죠
      And did it my way
      난 내 방식대로 살아온겁니다.

      Yes,
      그래요
      It was my way...
      그것이 바로 내가 걸어온 인생이었습니다.

       

       

       

      Frank Sinatra (1915~1998)

       

      프랭크의 가계(家係)는 빙 크로스비, 냇킹콜, 팻분의 가계처럼 유명한 연예인 집안이다. 딸 낸시 시나트라와 아들 프랭크 시나트라 Jr.도 싱어이자 배우다. 프랭크는 또한 여배우 에바 가드너(1951∼57년까지), 미아 패로우(1966∼68년까지)와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뉴저지 호보켄에서 이탈리아 이민의 아들로 태어난 (1915.12.12, 본명: Francis Albert Sinatra) 프랭크는 역시 전설적인 싱어이자 배우인 빙 크로스비(1903∼1977)의 노래를 좋아하며 싱어가 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호보켄 지방 밴드 포어의 멤버를 거쳐 뉴저지의 주점 루스틱 캐빈의 급사장겸 사회자이자 싱어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첫 부인 낸시 바바라와 결혼한(1939. 2. 4) 해 6월에는 해리 제임스 밴드의 창단 멤버이자 싱어가 되었다. 그리고 7월에 "From The Botton Of My Heart"와 "Melanchoy Mood" 같은 곡을 발표했다.

      1940년 1월에는 토미 돌시 밴드의 싱어로 스카웃 되며 더욱 주가를 높였다.  그 해 6월 8일에는 프랭크처럼 싱어이자 배우가 되는 딸 낸시 시나트라가 태어났다.

        프랭크의 45년 히트곡인     "Nancy"는 바로 딸에 대한 노래이다.

      프랭크가 출연한 주요 영화는 빙 크로스비,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주연한 56년의 "상류사회"를 비롯하여 "닻을 올려라"

      "아가씨와 건달들" "황금의 팔" "포옹" "밤의 표범" "달려오는 사람들" "하이 호우프" "캉캉" "오우션과 11인의 전우" "황야의 세 상사" "시카고 7인" 등이다.

      48년 6월 20일에는 차녀 크리스틴 시나트라가 태어났다.

      하지만 1950년 10월 프랭크는 부인 낸시 바바라와 이혼에 이르고 말았다.69년에 프랭크는 저 유명한 팝의 고전 "My Way"를 발표했다.이 곡은 원래 67년에 발표된 샹송 "Comme D' "Habitude"(평상처럼)으로, 작곡하고 노래한 오리지널 아티스트인 클로드 프랑소와는 파리의 자택에서 감전 사고로 39세의 한창인 나이에 사망(1978.3.11)한 사연이 있다. 샹송 "Comme D' Habitude"가 어떻게 "My Way"로 리메이크 되었을까?

      68년에 프랭크는 연예계 은퇴를 발표했고,

      이에 가장 놀란 사람은 프랭크를 누구보다 존경하던 싱어/송라이터인 폴 앵카였다.

      그래서 폴 앵카는 자신이 좋아하던 샹송 "Comme D' Habitude"의 멜로디에다 영어가사를 붙혀 프랭크에게 선사했다.

      프랭크도 이 곡에 크게 만족하여 은퇴 직전에 마지막으로 녹음한 것이다. 프랭크의 수많은 히트곡 중 "My Way"는 그의 자전적인 곡이다. 이 곡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히트한 팝 음악의 고전이자 삶의 송가가 되었다.

      황혼기에 접어든 한 인간이 살아온 과거를 숨김 없이 표현한 가사로 된 이 곡을 선사한 폴 앵카는 "My Way"는 프랭크가 노래해야만 빛을 발하는 곡"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은퇴 직전에 있던 프랭크의 곡으로 "My Way"는 적격이었다.

      비록 이 곡은 69년 싱글 차트 27위까지 진입하는데 그쳤으나

      싱글 차트와는 관계없이 아직까지도 세계적으로 가장 애청되는,

      팝 팬이라면 모르는 이 없는 프랭크의 대표 히트곡이 되었다.

    출처 : 가르멜산 성모 재속가르멜회
    글쓴이 : 장미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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