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벗에게
이 수방에 가득한 사랑의 언어들을
전할 수만 있다면
고독과 침묵 속에 평화를 나눌 수만 있다면
하늘의 공간을 드릴 수만 있다면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허락하신 것은
새로운 만남,
새로운 사랑,
새로운 생명,
새로운 삶을 위한 은총의 시간이지요.
나의 둘도 없는 친구여!
당신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는 나는 당신을 향한 마음에 무엇인가 나누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그것은 한 세상이 지나가고 다른 삶이 연결되는 미묘한 신비 속에 나약한 자신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 누구의 도움을 받으려고 손을 벌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희미한 기억이나마 지워 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무엇인가 당신과의 연결점을 찾고자 하는 하나의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잃어버린 추억의 시간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 현실 속에 우리의 만남을 보다 가치롭게 승화시켜서 삶의 의미를 다지고 드러냄으로써 보다 높은 가치를 찾고자 해서입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의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기에 그 사랑의 숨결 속에 살아가는 우리도 하느님 안에 언제나 아름답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나눔은 모든 것을 나누는 마음이겠지요.
나의 기쁨인 벗이여!
벗을 만나서 기쁜 것은 바로 벗의 사랑 때문이지요. 우리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가지고 있는 사랑은 그 마음 안에 자리하고 있는 신의로써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글은 하늘에 연을 띄우기 위해 하늘의 기색을 살피는 벗을 위한 나의 삶의 기도이길 바라면서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어떻게-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기에 깊은 사념 속에 빠지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사람들 가운데 존재하고 그들과 함께함은 매우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내 심정을 털어 놓을 수 있고 나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순수하고 진실된 이웃을 만나기란 그리 흔하지 않음을 봅니다.
만남 안에서 내가 나 자신에게만 얽매어 있고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아 자아 안에 폐쇄되어 있다면 나는 참다운 자유인이 아닐 것입니다. 자기변명과 편협한 자아도취의 완고함은 바로 스스로가 택한 고통이고 지옥이기 때문이겠지요.
이웃과의 만남 안에서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웃이 내 마음의 한가운데 자리할 수 있고 함께 내면의 세계를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러한 자유의 공간이며 그것은 인격과 인격과의 사랑의 일치를 이룰 수 있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마음 안에 모든 것을 아름다운 천상적인 것으로 승화시킬 때, 하느님 나라가 우리 안에서 커 갈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여!
사랑한다는 것, 곧 사랑을 나누며 어떤 것에서도 함께 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새 계명이고 우리의 소명이기도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인격체로서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느낍니다. 사랑은 자기와의 싸움이기에 자아가 살아 있는 한 나와 다른 존재의 고유함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픈 것이지만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더 큰 슬픔과 아픔이 동반됩니다. 참된 사랑은 회피도 소유도 만족도 아닌, 희생과 고통 속에 잉태되는 자유와 기쁨 속에 평화롭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나누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에 대한 조건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믿어 주는 것입니다. 신뢰한다는 것은 사랑의 큰 표현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바람도 없고 실망도 느끼지 않습니다.
쪼개지 않고 나누임이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웃을 깊이 사랑할 때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 자체로 만족을 주고, 그 자체로 마음에 들고, 공로도 상금도 되기에 사랑은 자기 자신 외에 다른 이유나 열매를 필요로 하지 않고 사랑의 열매는 사랑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이 말은 우리의 모든 것을 말해 줍니다.
나와 함께 하는 벗이여!
어떤 존재이건 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있고 그 삶의 뜰 안에 자리하고 있는 자신들의 고유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에, 그의 고유한 존재의 내면의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를 만나 그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오랜 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각각의 고유한 개성과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듯이 한 인간이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의 표는 한 인간의 인생의 의미와 그에게만 주어진 이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때 자아는 평화와 기쁨이 수반되고 많은 시련을 이겨낸 후, 한 줄기 섭리로부터 오는 미소는 그를 지켜보고 함께 했던 영혼에게도 희망을 주나 봅니다.
나의 소중한 벗이여!
봉쇄 수도원의 높은 담이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해 주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흠모하는 수도복이 나 자신을 보호해 주는 것도, 더욱이 수도자의 신분 자체가 나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욱이 따스한 인정 속에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도 좋지마는, 차라리 뺨에 차가움을 느끼면서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님을 따르는 내적 자유를 나는 더욱 누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진리는 변함이 없고, 진리를 찾고자하는 사람과 진리를 위해서 몸 바치려는 그런 인간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좁은 길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만이 참다운 진리이고 변할 수 없는 영원성임을 나는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서로가 서로를 위한 삶 속에서 각자의 부르심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성에 고귀한 존재의 가치와 품위를 높여주고, 자유인으로 향해 새로운 변화를 이룰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선행의 어리석음이 이기의 교활보다 매력이 있음을 아는 마음이 있고, 양심을 거스를 때 강한 듯해도 약하고’ 하늘의 법에 순응하는 것이 더 큰 힘이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진리로 향한 우리의 마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화이지요. 벗이여! 우리 날마다 새롭게 그리스도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태어나 그리스도의 향기가 우리 안에서 피어올라, 만나는 이웃에게 언제나 밝은 웃음과 기쁨을 전하는 우리가 됩시다.
당신이 내가 살아 있는 가르멜인이 되길 희망하듯, 나도 벗이 사랑받는 하느님의 아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너와 나는 하느님 안에 하나이기에 기쁜 과거의 추억이 아닌, 기도 안에서 만나며 함께 삶을 엮어 갑시다. 그분의 사랑 안에서.
Miracles of Sant'i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