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에서 | (Nn. 18. 22) |
죽음의 신비 |
신명기에 의한 독서 | 32,48-52; 34,1-12 |
모세의 죽음 |
41 없는 이들은 비참에서 건져내시고 * 그 집안을 양 떼처럼 수많게 해주셨도다. 42 옳은 사람들 이를 보고 기뻐하며 * 모든 악은 제 입을 봉하고 마나니, 43 그 누가 지혜로워 이 일을 좋이 살피며 * 주님의 자비를 깊이 깨칠꼬.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후렴3의인은 주님의 자비를 보고, 기뻐하며 깊이 깨치나이다. |
○ 주여, 당신 자비가 하늘까지 이르고, ◎ 진실하심이 구름까지 닿나이다. |
제1독서 |
신명기에 의한 독서 모세의 죽음 |
그 무렵 32,48 바로 같은 날,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49 “너는 예리고 맞은 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맥을 타고 느보산 봉우리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 차지하게 할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50 그 산에서 죽어라. 네 형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어 앞서간 겨레에게로 돌아갔듯이 너 또한 앞서간 겨레에게로 돌아가거라. 51 너는 씬 광야에 있는 카데스의 므리바 샘 가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둘러선 가운데 나를 배신하였다. 내가 하느님인 것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드러내지 아니하였다. 52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저 땅을 건너다 볼 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34,1 모세가 모압 광야에서 예리고 맞은편에 있는 느보산 비스가 봉우리에 오르자, 주께서 그에게 온 땅을 보여주셨다. 단에 이르는 길르앗 지방, 2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나쎄 지방, 서쪽 바다에 이르는 온 유다 지방, 3 네겝과 종려 도시 예리고 골짜기의 분지를 소알에 이르기까지 보이시며 4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한 땅이다. 이렇게 너의 눈으로 보게는 해준다마는, 너는 저리로 건너가지 못한다.” 5 주님의 종 모세는 그 곳 모압 땅에서 주님의 말씀대로 죽어 6 모압 땅에 있는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묻혔는데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오늘까지 아무도 모른다. 7 모세는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다. 그러나 그의 눈은 아직 정기를 잃지 않았고 그의 정력은 떨어지지 않았었다. 8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광야에서 삼십 일 동안 모세의 죽음을 슬퍼하며 곡했다. 이렇게 그들은 모세의 상을 입고 곡하는 기간을 채웠다. 9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하느님의 영을 받아 지혜가 넘쳤다. 모세가 그에게 손을 얹어 주었던 것이다. 그의 지휘 아래 이스라엘 백성은 주께서 이미 모세에게 분부하신 일을 다 이루었다. 10 그 후로 이스라엘에는 두 번 다시 모세와 같은 예언자, 주님과 얼굴을 마주보면서 사귀는 사람은 태어나지 않았다. 11 모세가 주님의 사명을 띠고 이집트 땅으로 가서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과 그의 온 땅에 행한 것과 같은 온갖 기적과 표적을 행한 사람은 다시 없었다. 12 모세처럼 강한 손으로 그토록 크고 두려운 일을 온 이스라엘 백성의 눈앞에서 이루어 보인 사람은 다시 없었다. |
제2독서 |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에서 죽음의 신비 |
죽음 앞에서 인간 운명의 수수께끼는 절정에 달한다. 인간은 아픔과 꺼져 가는 육체의 파멸을 괴로워할 뿐 아니라 영원한 소멸을 두려워한다. 인간 실존의 완전한 파멸과 결정적 끝장을 싫어하고 거부할 때 마음의 본능에 따른 이 판단은 옳은 것이다. 인간이 자기 안에 지니고 있는 영원의 씨는 순수 물질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기에 죽음에 저항하여 일어설 수밖에 없다. 기술의 모든 노력이 제아무리 유익하다 해도 인간의 불안을 해소시킬 수는 없다. 생물학적 수명의 연장은 마음속 깊이 뿌리박힌 고차적 생명에 대한 갈망을 만족시킬 수 없다. 어떤 상상도 죽음 앞에서는 맥없어지지만 하느님의 계시를 들은 교회는 인간이 지상 불행의 한계를 넘어서 행복한 목적을 위하여 하느님께 창조되었음을 주장한다. 그뿐 아니라 육체의 죽음도 인간이 범죄치 않았던들 모면할 수 있었을 것이며, 죄로 잃었던 구원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구세주의 은덕으로 인간이 다시 회복할 제 죽음은 패배를 당할 것이라고 그리스도교 신앙은 가르친다.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성 전체로써 당신과 영원히 결합하여 당신 불멸의 생명을 나누어 받도록 인간을 이미 부르셨고 거듭 부르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승리는 그리스도 친히 당신 죽음을 통하여 인간을 죽음에서 해방시키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써 거두신 승리다. 따라서 확고한 논증에 바탕을 둔 신앙은 깊이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답을 주며 미래 운명에 관한 그의 불안을 해소시켜 준다. 그와 동시에 신앙은 또한 죽음이 먼저 앗아간 사랑하는 형제들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결합할 가능성을 제공하며 그들은 이미 하느님 곁에서 참 생명을 얻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준다. 물론 그리스도교 신자는 많은 환난을 겪으면서 악을 거슬러 싸우고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는 파스카 신비에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죽음을 닳은 모습으로서 벅차오르는 희망을 품고 부활을 향해 전진할 것이다. 이것은 비단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역사하는 은총을 마음에 지니고 있는 모든 선의의 인간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고 인간이 불린 궁극 목적도 사실은 하나뿐이며 그것이 신적인 것이므로 성령께서는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파스카 신비에 참여할 가능성을 주신다고 믿어야 한다. 인간의 신비는 이와 같이 위대한 것이며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계시가 믿는 이들에게 밝혀 주는 진리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고통과 죽음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그의 복음을 떠나서는 이 수수께끼가 우리를 질식시켜 버릴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으로 당신 죽음을 쳐부수시고 부활하셨으며 풍성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로써 우리는 성자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의 은총으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천주여, 우리의 행위를 당신의 뜻대로 인도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이 사랑하시는 성자의 이름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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