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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성 베다 사제의 ‘루카 복음 주해’에서)성모 찬송가

성 베다 사제의 ‘루카 복음 주해’에서 (Lib. 1,46-55: CCL 120,37-39)
성모 찬송가
19 그러나 하느님은 들어주시고 *
내 비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20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
당신의 자비를 거두지 않으신 *
하느님하 찬미를 받으옵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3능하신 임금께서 오실 때 우리 마음은 깨끗하여지고 그분을 합당하게 맞아들이게 되리니, 그분은 지체치 않고 오시리라.
 이교 백성들아, 주님의 말씀을 듣고,
 땅 끝까지 그 말씀 널리 전하라.
제1독서
 
49,14 “‘주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너 시온은 말하였었지.
15 여인이 자기의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어찌 가엾게 여기지 않으랴!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16 너는 나의 두 손바닥에 새겨져 있고
너 시온의 성벽은 항상 나의 눈앞에 있다.
17 너를 다시 일으킬 자들이 서둘러 모이니
너를 허물고 짓밟던 자들이 달아나리라.
18 고개를 들어 둘러보아라.
모두들 너에게로 모여 오고 있다.
내가 목숨을 걸고 맹세한다.”
주님의 말씀이시다.
“그들은 네 몸에 걸친 패물과 같으리니
네가 신부처럼 아름다우리라.
19 짓밟혀 쑥밭이 되고 폐허가 되었던 땅이,
이제는 비좁아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되어
너를 괴롭히던 자들이 모두 물러가리라.
20 여읜 줄로 알았던 자식들이 돌아와,
이곳은 살기 좁으니
자리를 넓혀 달라고
떼쓰는 소리를 네 귀로 들으며,
21 너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리라.
‘이것들을 누가 나에게 낳아 주었을까?
나는 자식을 여의고 다시 낳을 수도 없는 몸이었는데
누가 이것들을 이렇게 키워 주었을까?
나 혼자만 살아 남았었는데
이것들이 다 어디에서 왔을까?’”
22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손을 들어 만국을 부르리라.
백성들을 향하여 나의 깃발을 날리리라.
그러면 그들은 너의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너의 딸들을 목말태워 오리라.
23 왕들은 너의 양아버지가 되고
공주들은 너의 유모가 되리라.
그들은 땅에 이마를 대고 너에게 경배하며
네 발의 먼지를 핥으리라.
그때 비로소 너는 알리라,
내가 주님인 줄을,
나에게 걸었던 희망은 하나도 어긋나지 않는 줄을.”
24 적장에게 사로잡힌 사람을 빼낼 수 있느냐?
폭군의 손에서 포로를 건져낼 수 있느냐?
25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적장에게서 포로를 빼낼 수 있다.
폭군에게 사로잡힌 사람도 건져낼 수 있다.
너와 다투던 자를 내가 몸소 치고
너의 아들들을 내가 몸소 건져내리라.
26 그리하여 너를 박해하던 자들은 제 살코기를 먹고
제 피를 술처럼 마시고 취하리라.
그때에 모든 인생은 알리라.
내가 너의 주 구원자임을,
너의 원수를 갚는 야곱의 강한 자임을.”
50,1 주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 어미를 쫓아내며
이혼장을 써준 일이 없다.
나는 너희를 채권자에게 판 일이 없다.
너희는 너희의 잘못으로 팔려 간 것이다.
너희가 못되게 굴었으므로
너희 어미가 쫓겨난 것이다.”
 
제2독서
성 베다 사제의 ‘루카 복음 주해’에서 성모 찬송가
“그리고 마리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이다.’” 주님이 그다지도 엄청난 전대 미문의 은총으로 나를 높여 주셨기에 어떤 말로도 그것을 표현할 수 없고 또한 마음의 가장 깊숙한 정감도 그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영혼의 힘을 다 합쳐 감사와 찬미를 바치는 데 모두 소모해 버립니다. 내 모든 삶과 모든 정감과 모든 이해력으로 감사와 찬미 가운데 끝없으신 그분의 위대함을 관조합니다. 나의 태중에 시간 안에 육신으로 잉태된 구세주 예수님의 영원한 신성을 보고 내 영혼은 기쁨 속에 즐겨 뛰놉니다.

“능하신 분이 큰일을 내게 하셨음이요, 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시로다.” 마리아는 여기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나이다.”라는 찬가의 시작 부분을 되돌아보시고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즉 주님이 위대한 일을 해주시는 영혼만이 마땅한 찬송으로 주님을 찬미할 수 있고 그와 함께 구원의 약속을 받은 이들에게 함께 찬송하라고 다음과 같이 응당히 요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와 함께 주님을 찬송하라. 우리 함께 그 이름을 높여 드리자.”

자기가 알고 있는 주님을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찬송하는 것과 그분의 이름을 거룩히 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라고 불리웁니다. 그분은 당신이 지니신 유일하고도 가장 큰 능력으로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시고 당신이 지어내신 만물에서 멀리 떨어져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비하심을 아니 잊으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도다.” “이스라엘은 내 종이기에 나는 그를 사랑했노라.”는 호세아서의 말씀에 따라 주님은 복종 잘하고 겸손한 이스라엘을 구하시고자 뽑으셨기 때문에, 마리아는 이스라엘을 아름다운 말로 “주님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을 낮추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고, 예언자와 더불어 “보라, 주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께서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도다.”라고 말할 수도 없으며,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라는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위하여 영원히 우리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바로다.” 마리아는 여기서 아브라함의 육신적 후손이 아닌 영신적 후손을 말해 줍니다. 즉 아브라함으로부터 육신을 따라 내려오는 할례를 받은 이들만이 아니라 할례를 안 받았어도 아브라함의 신앙의 발자취를 따르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 역시 할례를 받기 전에 믿어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따라서 구세주의 오심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 즉 약속의 자녀들에게 약속되었습니다. 그들에 대해 바오로는 말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따라서 약속에 의한 상속자들입니다.”

주님의 어머니도 요한의 어머니도 자기 자녀들의 탄생을 예언 중에 미리 전하는 것은 옳습니다. 죄가 여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처럼 축복도 여인으로부터 비롯되고, 한 여인이 속임을 당해 잃어버린 그 생명이 서로 다투듯이 예언하는 이 두 여인으로 인해 되찾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주여, 이미 천사의 아룀으로 성자 그리스도 사람이 되심을 알았으니, 그의 고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우리 마음에 내리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