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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목자들에 대한 강론’에서)바오로의 모범

2023년 9월 19일 화요일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 성 야누아리오 주교 순교자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목자들에 대한 강론’에서
(Sermo 46,4-5: CCL 41,531-533)
바오로의 모범
예언자 에제키엘서에 의한 독서 8,1-6. 16-9,11
죄를 범한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제1독서
예언자 에제키엘서에 의한 독서---죄를 범한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8,1 제육년 유월 오일, 나는 집에 앉아 있었다. 유다 장로들이 내 앞에 앉아 있는데 주 하느님께서 손을 내밀어 나를 사로잡으셨다. 2 내 눈에 비친 그 모습은 사람같이 보였으나, 허리 아래 모양은 불 같았고, 허리 위는 놋쇠처럼 환히 빛나는 것이었다. 3 그분이 손같이 생긴 것을 내미시어 내 머리를 잡으시자, 그의 기운이 나를 공중에 번쩍 들어올렸다. 나는 신비스런 발현 속에서 예루살렘으로 들려갔다. 그 곳은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우상이 자리잡고 있는 북향 안문 문간이었다. 4 거기에서 나는 전에 들판에서 본 것 같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영광을 보았다. 5 거기에서 “너 사람아, 어서 북쪽을 바라보아라.” 하시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제단 문 북쪽 초입에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우상이 있었다. 6 그분은 “너 사람아,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이느냐?” 하시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집안이 여기에서 하고 있는 짓은 너무나도 역겨운 짓들이다. 이런 행위로 그들은 나를 내 성소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다. 너는 여기에서 이 외에도 그들이 하는 역겨운 일을 더 보게 되리라.”

16 그리고는 나를 주님의 성전 안마당으로 데리고 가셨다. 거기 주님의 성전 정문간, 현관과 제단 사이에 사람 이십오 명 가량이 주님의 성전을 등지고 동쪽을 향하여 해를 보며 절하고 있었다. 17 “너 사람아, 보았느냐?” 하시면서 그분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유다 가문이 여기에서 이런 역겨운 짓을 하는 것을 어찌 작은 일이라 하겠느냐? 이러고도 부족해서 그들은 불법이 판을 치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의 화만 돋구어 주었다. 저렇게 나뭇가지를 코에 갖다 대고 있지 않느냐? 18 나도 이제는 화나는 대로 하리라. 가엾게 여기지도 아니하고 불쌍히 보지도 아니하리라. 그들이 내 귀가 찢어지도록 소리를 질러도 들어주지 아니하리라.”

9,1 그리고 큰소리로 외치시는 그분의 음성을 나는 들었다. “이 도시를 벌할 자들아, 모두들 두드려 부술 연장을 손에 들고 나오너라.” 2 그러자 북쪽에 있는 높은 문에서 사람 여섯이 나왔다. 그들은 모두 손에 망치를 들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모시옷을 입고, 허리에는 서기관의 필묵 통을 차고 있었다.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자, 3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영광이 자리잡고 계시던 거룹에서 떠올라 성전 문턱으로 나오시어 모시옷을 입고 필묵 통을 허리에 찬 그 사람을 부르시며 4 말씀하셨다. “너는 예루살렘 시내를 돌아다니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발칙한 짓을 역겨워하여 탄식하며 우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주어라.” 5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내가 듣는 데서 이렇게 이르셨다. “너희는 저 사람 뒤를 따라 도시 안을 돌아다니며 마구 쳐라. 가엾게 여기지도 말고 불쌍히 보지도 마라. 6 노인도, 장정도, 처녀도, 어린이도, 부인도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건드리지 마라. 우선 나의 성소에서부터 시작하여라.” 그러자 그들은 성전 앞에 있는 장로들부터 치기 시작하였다. 7 그분이 그들에게 이르셨다. “울안에 시체가 가득하도록 성전을 더럽혀라. 그리고 나가라.” 그들은 시내로 나가 거기에서 사람들을 쳐죽였다.

8 그들이 사람들을 쳐죽이는 동안, 나는 홀로 남아서 앞으로 쓰러져 호소하였다. “아, 주 하느님이시여, 예루살렘이 하는 짓이 아무리 노여우시기로, 이스라엘의 얼마 남지 않은 사람마저 이렇게 다 없애실 작정이십니까?” 9 그분이 대답하셨다. “이스라엘과 유다 가문의 죄악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 너는 아느냐? 주님이 이 나라를 내버리고, 돌보지도 않는다고 하며 온 나라에 유혈 참극을 벌인 것들, 부정 부패로 이 수도를 채운 것들, 10 어떻게 내가 그들을 가엾게 여기고 불쌍히 보겠느냐? 그 소행대로 벌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11 그러는데 모시옷을 입고 허리에 필묵 통을 찬 그 사람이 돌아와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제2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목자들에 대한 강론’에서)바오로의 모범
바오로 사도가 한 번은 진리의 증거 때문에 감옥에 갇혀 큰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형제들로부터 그 궁핍을 해결할 생계 수단을 전해 받았습니다. 그때에 그들에게 감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여러분은 고맙게도 내 어려움을 함께 해주었습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비천하게 살 줄도 알며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맙게도 여러분은 나와 고생을 같이 해주었습니다.”

바오로는 자기가 신자들에게 행한 선행에서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며 또 자신이 자기 자신만을 돌보고 양 떼를 기르지 않는 목자들 틈에 끼어 들어가는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형제들이 자기의 궁핍을 해결해 주는 것을 기뻐하기보다 그들이 열매 맺는 일에 대해서 기뻐한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선행에서 무엇을 구했습니까?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선물을 받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일뿐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만족감을 누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이 열매 맺지 못하는 신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오로처럼 자기 손으로 벌어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목자들은 신자들한테 생계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받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양들의 나약성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그들 목자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 복음을 전파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자기 유익만을 찾지 말아야 하며, 사람들을 밝게 비출 수 있도록 진리의 말씀이라는 빛을 발해야 합니다. 다음의 복음 말씀처럼 그들은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준비하고 있어라.”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알겠느냐?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여러분이 집에서 등불을 켜놓으면 그것이 꺼지지 않도록 기름을 계속 부어 넣지 않겠습니까? 기름을 부은 후 등불이 빛을 계속 비추지 않는다면 등경 위에 놓아 두기보다는 더 이상의 수고의 필요없이 부숴 버릴 것입니다. 생계에서의 어려움은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고 사람은 그것을 줄 의무를 집니다. 그러나 복음이 마치 팔아야 할 물건인듯 그것을 전파하는 이들이 자기 생계를 위해 받는 것을 그 복음의 대가로 생각해야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누가 복음을 이런 식으로 판다면 가치로운 것을 헐값으로 파는 결과가 됩니다. 그들은 생계에 필요한 것을 신자들로부터 받되 자기 봉사에 대한 참된 상급은 주님에게서 기대해야 합니다. 신자들은 복음에 대한 사랑 때문에 봉사하는 분들에게 제대로 보상할 수 없습니다. 목자들은 신자들이 구원을 받는 그 같은 원천에서가 아니면 다른 데에서는 상급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목자들이 힐책받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무엇 때문에 고발당합니까? 양 떼들의 젖을 짜 먹고 양털을 깎아 옷을 해 입으며 자기 양들을 돌보는 데 소홀하기 때문입니다. 이들 목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익이 아닌 자기 이익만 찾는 것입니다.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천주여, 우리를 굽어보시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자비를 깨닫고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