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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요한 1서 주해’에서)우리 마음은 하느님을 갈망합니다

2023년 2월 17일 금요일
 연중 제6주간 금요일    † 마리아의 종 수도회 창설자 7성인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요한 1서 주해’에서
(Tract. 4,6: PL 35,2008-2009)
우리 마음은 하느님을 갈망합니다
잠언에 의한 독서 15,8-9. 16-17. 25-26. 29. 33; 16,1-9; 17,5
하느님 면전에 있는 사람
제1독서
잠언에 의한 독서---하느님 면전에 있는 사람
15,8 주께선 악한 사람의 제물을 역겨워 하시고
바른 사람의 기도는 반가워 하신다.
9 나쁜 일 하면 주님의 미움을 사지만
올바로 살려고 애쓰면 사랑을 받는다.
16 재산을 쌓아 놓고 다투며 사는 것보다
가난해도 주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 낫다.
17 서로 미워하며 살진 쇠고기를 먹는 것보다
서로 사랑하며 채소를 먹는 것이 낫다.
25 주께서 거만한 사람의 집은 헐어 버리시고
과부의 밭 경계선은 지켜 주신다.
26 주께서 악한 사람의 음모는 미워하시고
결백한 사람의 말은 기뻐하신다.
29 주께서는 나쁜 사람을 멀리하시고
착한 사람의 기도는 들어주신다.
33 교육을 받아 지혜를 얻으면 주님을 경외하게 된다.
겸손을 배우면 영광이 뒤따른다.
16,1 계획은 사람이 세우고 결정은 주께서 하신다.
2 사람의 일이 제 눈에는 모두 잘돼 보여도
주께서는 속 생각을 헤아리신다.
3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맡기면
생각하는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4 주께서는 모든 것을 각각 쓰임에 맞게 만드셨으니
불의한 사람은 재앙이 내리는 날에
재앙받을 사람으로 만드신 것이다.
5 주께서 마음이 거만한 자를 미워하시니,
그런 자가 어찌 벌을 받지 않으랴.
6 하느님을 참마음으로 사랑하면 죄를 용서 받고
주님을 경외하면 재앙을 면한다.
7 사람이 주님 마음에 들게 살면
원수라도 그와 화목하게 해주신다.
8 정직하게 살아 적게 버는 것이
불의하게 재산을 쌓는 것보다 낫다.
9 사람은 속으로 제 할 일을 계획해도
그것을 하나하나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17,5 가난한 사람을 조롱함은 그를 지으신 이를 모욕함이다.
남 망하는 것을 좋아하면 벌을 받고야 만다.
 
제2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요한 1서 주해’에서)우리 마음은 하느님을 갈망합니다
우리가 무슨 약속을 받았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뵙겠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요한은 자기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다 말했습니다. 그 나머지는 마음의 숙고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서 요한이 말하는 것을 실재와 비교해 본다면 그것은 얼마 되지 않는데, 요한이 지닌 능력과 비교도 안 되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마음 안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주님 임재의 은총으로 돌아갑시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그것을 아직 볼 수 없기 때문에 애타게 갈망할 뿐입니다.

열심한 그리스도인의 전생활은 하나의 거룩한 갈망입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아직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갈망한다면 장차 보게 될 것에 이를 때 그것을 누릴 능력을 갖게 됩니다.

어떤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할 때 받아 넣을 것이 너무 많다면 그 용기가 자루이건 부대이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을 더 크게 만듭니다. 그리고 넣을 것이 너무나 많고 담아 넣을 용기는 작을 때 그 용기를 늘려서 용량을 늘립니다. 하느님도 이렇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갈망을 채워 주시는 것을 늦추심으로써 그 갈망을 더 크게 하시고 갈망을 더 크게 하심으로써 우리 영혼을 넓히시고 또 이렇게 넓히심으로써 영혼의 용량을 늘리십니다.

형제들이여, 언제나 갈망하는 마음을 갖도록 합시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언제나 채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 바오로는 장차 올 것을 받을 수 있도록 자기 마음을 활짝 펼쳤습니다.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이미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희망을 아직 이루지 않았으면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만 나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바오로는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고 갈망하는 것을 따라간다고 말합니다. 그는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갈망하는 것 - 이것이 우리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서 세상에 대한 사랑을 끊어 버리면 끊어 버리는 그만큼 거룩한 갈망은 우리 마음에서 자라나게 됩니다. 이미 말했듯이 비어 있는 것만 채울 수 있습니다. 선으로 채우고자 한다면 먼저 악을 쏟아 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꿀로 채우고 싶어하신다고 합시다. 만일 우리 마음이 식초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어디에다 꿀을 넣겠습니까? 먼저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을 비워야 합니다. 그릇도 씻어야 합니다. 받아 넣을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도록 부지런히 거듭거듭 속을 닦아 내야 합니다. 그 안에다 담아 넣을 것의 이름을 붙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꿀도, 황금도, 포도주도 아닙니다. 그래도 굳이 이름붙이고 싶다면 “하느님”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세 마디로 된 이 한 단어가 우리가 기대하는 전부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그분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실재보다 부족합니다. 그분이 오실 때 우리를 채우실 수 있도록 그분께로 우리 자신을 펼칩시다. “우리는 그분의 참모습을 뵙겠기 때문에 그분과 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친히 말씀하신 대로 바르고 솔직한 마음속에 머물러 계시는 천주여, 우리에게 당신의 은총을 내리시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모실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