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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강론에서) 당신의 어머니께서 십자가곁에 서 계셨다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강론에서 (Sermo in dom. infra oct. Assumptionis, 14-15: Opera omnia, Edit. Cisterc. 5[1968], 273-274)
예언자 이사야에 의한 독서 7,10-14; 8,10c; 11,1-9
평화의 왕이신 임마누엘
제1독서
예언자 이사야에 의한 독서----평화의 왕이신 임마누엘
예언자 이사야에 의한 독서
7,10-14; 8,10c; 11,1-9
평화의 왕이신 임마누엘

그 무렵, 7,10 주께서 아하즈에게 다시 이르셨다. 11 “너는 너의 주 하느님께 징조를 보여 달라고 청하여라. 지하 깊은 데서나 저 위 높은 데서 오는 징조를 보여 달라고 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나는 징조를 요구하여 주님을 시험해 보지는 않겠습니다.”

13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들어라.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도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도 성가시게 하려는가? 14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8,10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11,1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난다.
2 주님의 영이 그 위에 내린다.
지혜와 슬기를 주는 영,
경륜과 용기를 주는 영,
주님을 알게 하고 그를 두려워하게 하는 영이 내린다.

3 그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아
겉만 보고 재판하지 아니하고
말만 듣고 시비를 가리지 아니하리라.
4 가난한 자들의 재판을 정당하게 해주고
흙에 묻혀 사는 천민의 시비를 바로 가려 주리라.
그의 말은 몽치가 되어 잔인한 자를 치고
그의 입김은 무도한 자를 죽이리라.
5 그는 정의로 허리를 동이고 성실로 띠를 띠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8 젖먹이가 살무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뗀 어린아기가 독사의 굴에 겁 없이 손을 넣으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
땅에는 주님을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리라.


2022.9.15 목 통고의 복되신 동정마리아
제2독서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강론에서) 당신의 어머니께서 십자가곁에 서 계셨다
동정 마리아의 순교가 시므온의 예언과 주님의 수난기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경건한 노인 시므온은 아기 예수께 대해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될 것입니다.” 하고 말하고 마리아께는 “예리한 칼이 당신의 영혼을 찌를 것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복되신 성모여, 예리한 칼이 당신의 영혼을 창으로 찔렀습니다. 그 칼이 당신의 영혼을 찌름 없이는 당신 아드님의 육신을 꿰뚫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의 것이지만 특별히 당신의 것인 아들 예수께서 숨을 거두신 후, 그 잔혹한 창은 그분의 영혼에 가 닿을 수 없었습니다. 실상 그분이 죽임당하신 후 불능의 상태에서마저 마냥 두지 않은 그들이 그분의 옆구리를 펼쳐 놓았을 때, 그분께 고통을 줄 수 없었지만 당신께는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창은 당신의 영혼을 찔렀습니다. 그리스도의 영혼은 더 이상 거기에 계시지 않았으나 당신의 영혼은 거기서 떨어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영혼은 고통의 창으로 찔리었기에 우리는 당신이 순교자들을 능가하시는 분이라고 마땅히 일컫습니다. 당신 아드님의 수난에 참여함은 그 강렬함에서 순교의 모든 육체적 고통을 능가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는 그때 그 말씀은 당신의 영혼을 창으로 찌르고 당신의 영혼과 마음을 갈라놓을 정도로 깊숙이 들어간 칼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오, 놀라운 교환이여! 당신은 예수님 대신에 요한을, 주인 대신에 종을, 스승 대신에 제자를, 하느님의 아들 대신 제베대오의 아들을, 참 하느님 대신에 일개 인간을 받으셨습니다. 그 말씀을 기억할 때 돌이나 쇠보다 더 굳은 우리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지는데, 하물며 그 말씀은 당신의 섬세한 영혼을 찌르지 않았겠습니까?

형제들이여, 마리아께서 영신의 순교자가 되셨다는 말을 들을 때 놀라지 마십시오. 그 말을 듣고서 이방인이 지닌 최대의 결점 중에 하나는 동정심이 없는 점이라고 사도 바오로가 지적한 것을 잊어버리는 사람만이 놀랄 것입니다. 마리아께는 물론 그런 결점이 없었고 또 마리아를 섬기는 이들에게도 그런 결점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누군가가 “마리아께서 당신 아드님이 죽으셔야 한다는 점을 미리 알고 계시지 않았겠는가?” 하고 물어 볼지 모르겠습니다. 네,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아드님께서 즉시 부활하시리라는 확실한 희망을 갖고 계시지 않았겠는가?” 물론 갖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마리아는 슬픔을 느끼셨는가?” 더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셨습니다. 그런데 형제여, 마리아의 아드님이 느끼신 슬픔 자체에 대해서보다 그 수난에 참여하신 마리아의 고통에 대해 더 놀라는데 당신은 도대체 누구이고 무슨 판단을 가지고 있길래 놀랍니까? 아드님께서 육신으로 죽으실 수 있었다면 마리아께서는 영신으로 그 죽음에 참여할 수 없으셨겠습니까? 아드님은 다른 어떤 사람의 사랑보다 더 위대한 사랑으로 죽임을 당하셨고 마리아께서는 그리스도를 제외한 다른 어는 누구의 사랑에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으로 그 죽음에 참여하셨습니다.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당신 성자 곁에서 그 모친 마리아도 함께 수난하게 하신 천주여, 당신 교회로 하여금 성모와 함께 그리스도의 수난을 나눔으로써 그 부활에도 참여할 수 있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