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성인들에 대한 예정’에서 | (Cap. 15,30-31: PL 44,981-983) |
사무엘 하권에 의한 독서 | 7,1-25 |
제1독서 |
사무엘 하권에 의한 독서---예언자 나단이 메시아를 예언하다 |
그 무렵 1 주께서 사면의 원수를 다 물리쳐 주셨으므로 다윗왕은 궁에서 마음놓고 살게 되었다. 2 그렇게 되자 왕은 예언자 나단에게 말하였다. “내 말을 들으시오. 나는 이렇게 송백으로 지은 궁에서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모셔둔 채 그대로 있소.” 3 나단이 왕에게 아뢰었다. “주께서 함께 계시니 무엇이든지 뜻대로 하십시오.” 4 그날 밤, 주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내렸다. 5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주님의 말이라 하고 이렇게 일러라.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6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던 때부터 지금까지 천막을 치고 옮겨 다녔고, 집 안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7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여기 저기 옮겨 다니는 동안, 내 백성 이스라엘을 맡겨 보살피게 한 어느 영웅에게 어찌하여 나의 집을 송백으로 지어 주지 않느냐고 말한 적이 있었더냐?’ 8 너는 이제 나의 종 다윗에게 만군의 주님의 말이라 하며 이렇게 일러주어라.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 내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삼았다. 9 그리고 나는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들을 네 앞에서 쳐 없애 버렸다. 세상에서 이름난 어떤 위인 못지 않게 네 이름을 떨치게 해주리라. 10 또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이 머무를 곳을 정해 주어 그 곳에 뿌리를 박고 전처럼 악한들에게 억압당하는 일이 없이 안심하고 살게 하리라. 11 지난날 내가 위정자들을 시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던 때와는 달리 너희를 모든 원수에게서 구해 내어 평안하게 하리라. 주님인 내가 한 왕조를 일으켜 너희를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12 네가 살 만큼 다 살고 조상들 옆에 누워 잠든 다음, 네 몸에서 난 자식 하나를 후계자로 삼을 터이니 그가 국권을 튼튼히 하고 13 나에게 집을 지어 바쳐 나의 이름을 빛낼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를 영원히 든든하게 다지리라. 14 내가 친히 그의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만일 그가 죄를 지으면 나는 사람이 제 자식을 매와 채찍으로 징계하듯 치리라. 15 그러나 내가 일찍이 사울에게서 내 사랑을 거두었지만 그에게서도 그처럼 내 사랑을 거두지는 않으리라. 16 네 왕조, 네 나라는 내 앞에서 길이 뻗어 나갈 것이며 네 왕위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17 나단은 계시받은 대로 이 모든 말씀을 다윗에게 전하였다. 18 이 말을 듣고 다윗왕은 주님 앞에 나아가 꿇어 앉아 아뢰었다. “나의 주 하느님, 제가 무엇이며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저를 이런 자리에까지 끌어올려 주셨습니까? 19 나의 주 하느님, 이것만도 분에 넘치는 일인데 훗날에 이 종의 집안에 있을 일까지 말씀해 주시고 알려 주시니, 20 고마운 마음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나의 주 하느님께서는 종 다윗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21 개만도 못한 이 종을 돌보시어 이처럼 크신 일을 하심으로써 소인을 알려지도록 하셨습니다. 22 나의 주 하느님은 진정 위대하십니다. 우리는 일찍이 하느님과 같은 분이 또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다른 신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23 세상에 고생하는 민족을 찾아가서 손수 건져내어 자기 백성으로 삼고 유명하게 만들어준 신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당신께서는 두렵고 놀라운 일을 하셔서 하느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시고, 여러 민족을 그들이 섬기던 신과 함께 몰아내셨습니다.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 같은 민족이 천하에 어디 있겠습니까? 24 하느님께서는 이 백성 이스라엘을 영원히 움직일 수 없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주셨습니다. 25 주 하느님, 이제 이 종과 종의 왕실을 두고 하신 말씀을 길이 변치 마시고 이루어 주십시오. |
제2독서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성인들에 대한 예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으로 말하면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이신 인간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세주는 하느님의 예정과 은총의 찬란한 빛이십니다. 인간 예수가 지니신 그 위대한 지위는 그분이 과거에 행하신 어떤 선행과 또 그분이 지니신 신앙의 공로로써 얻은 것입니까? 이 질문에 대답할 사람이 있으면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성부와 함께 영원하신 말씀께서 한 위격 안에서 인성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는데 그 사람은 무슨 공로로 하느님의 외아드님이 되셨습니까? 그것은 인간 예수께서 이미 행하신 어떤 선행 때문이겠습니까? 또 인간 예수께서는 표현할 수 없는 탁월한 그 지위에 이르려고 어떤 선행을 하시거나 어떤 신앙을 지니시거나 또는 어떤 기도를 바치셨습니까?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신 말씀께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 예수가 존재하기 시작할 때부터 하느님의 외아드님으로서 존재하시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께서 그 인간을 지어내시고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총의 원천이 우리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총은 지체들에게 그들 각각의 능력에 따라 흘러내립니다. 신자는 그 은총을 통하여 신앙의 시초부터 그리스도인이 되고 인간 예수는 같은 은총을 통하여 태어날 때부터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게 하는 그 같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는 태어나셨습니다. 우리에게 죄 사함을 베풀어 주시는 그 같은 성령께서는 인간 예수를 온갖 죄로부터 미리 건져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래에 하실 이 모든 것을 이미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성인들에 대한 예정은 성인 중의 성인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찬란히 빛났습니다. 진리가 말하는 것을 옳게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가 이 예정의 교리를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영광의 주님 자신도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만큼 예정되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친히 예정되셨습니다. 인성을 따라 다윗의 후손이 되실 그분은 거룩함의 영을 따라 권능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되시기로 예정되셨습니다. 이 때문에 그분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습니다. 하느님이신 말씀께서 독특하고도 형언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한 인간을 취하셨으므로 그분은 동시에 하느님의 아들이시오 사람의 아들이라고 참으로 또 합당히 일컬어질 수 있습니다. 말씀께서 취하신 인성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아들이시고 인성을 취하신 그 하느님의 외아드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삼위 일체가 아니시고 사위 일체이실 것입니다. 인성이 이렇게도 위대하고 높게 이렇게도 탁월한 위치로 예정되었으므로 그보다 높은 위치를 드높여질 수 없습니다. 한편 신성은 나약한 인성을 취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하심으로 자신을 그 이상 더 낮추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시기로 예정되신 것처럼 많은 수효의 우리도 그분의 지체가 되기로 예정되었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인간의 공로는 여기서 머리를 숙이고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신 홀로 주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얻는 하느님의 은총이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독특한 탄생이 그분이 이미 지니신 공로에 의한 것임을 본 사람은 누구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우리도 그분께서 이미 지니신 공로에 인해 재생했다는 것을 알도록 힘써야 합니다. |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천상 은총으로 우리를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신 천주여, 비오니, 우리로 하여금 오류의 어둠 속을 헤매지 않고, 진리의 광명 속에서 항상 깨어 있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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