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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요한 복음 주해’)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왔다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요한 복음 주해’에서 (Tract. 15,10-12. 16-17: CCL 36,154-156)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왔다
출애굽기에 의한 독서 22,19-23,9
순례자와 약자에 관한 법

 

출애굽기에 의한 독서----순례자와 약자에 관한 법
주께서 말씀하신다. 22,19 다른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는 죽여야 한다. 제사는 주님께만 드려야 한다.

20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사람을 구박하거나 학대하지 말아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붙여 살지 않았느냐? 21 과부와 고아를 괴롭히지 말아라. 22 너희가 그들을 괴롭혀 그들이 나에게 울부짖어 호소하면, 나는 반드시 그 호소를 들어주리라. 23 나는 분노를 터뜨려 너희를 칼에 맞아 죽게 하리라. 그리하면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아들은 고아가 될 것이다. 24 너희 가운데 누가 어렵게 사는 나의 백성에게 돈을 꾸어 주게 되거든 그에게 채권자 행세를 하거나 이자를 받지 말라. 25 만일 너희가 이웃에게서 겉옷을 담보로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 26 덮을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고, 몸을 가릴 것이라고는 그 겉옷뿐인데 무엇을 덮고 자겠느냐? 그가 나에게 호소하면 자애로운 나는 그 호소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27 너희는 하느님께 욕되는 말을 하거나 너희 백성의 지도자에게 악담을 하지 못한다.

28 너희는 타작한 첫 곡식과 술틀에서 나온 포도즙은 미루지 말고 바쳐야 하며 너희 맏아들을 나에게 바쳐야 한다. 29 너희 소나 양도 그렇게 하여야 한다. 이레 동안은 어미 품에 두었다가 여드렛날에는 나에게 바쳐야 한다.

30 너희는 나를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다. 그러니 들에서 맹수에게 찢긴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말아라. 그런 것은 개에게나 던져 주어라.

23,1 너희는 근거 없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죄 있는 편에 합세하여 권세 부리는 자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지 말아라. 2 다수를 따라 불의에 가담하지 말아라. 재판정에서 다수를 따라 그릇된 판결이 내려지도록 증언을 해서는 안된다. 3 송사에 있어 영세민이라고 해서 사정을 보아 주어서도 안된다.

4 너희는 길을 잃은 원수의 소나 나귀를 만나면 그것을 임자에게 반드시 데려다 주어야 한다. 5 너희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에 깔려 있는 것을 보면 내버려 두지 말고 그 일으켜 세우는 것을 반드시 도와주어야 한다.

6 너희는 가난한 자가 낸 소송 사건에서 그의 권리를 꺾지 말아라. 7 허위 고발을 물리쳐라. 죄 없고 올바른 사람을 죽이지 말고 악한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하지 말아라. 8 너희는 뇌물을 받지 말아라. 뇌물은 멀쩡한 눈을 가려 올바른 사람들의 소송을 뒤엎는다. 9 몸붙여 사는 사람들을 학대하지 말아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붙여 살아 보았으니, 몸붙여 사는 자의 심정을 잘 알지 않느냐?
 
제2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요한 복음 주해’)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왔다
“한 여인이 왔다.” 이 여인은 아직 의화되지는 않았지만 의화되려고 하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 내용입니다. 그 여인은 무심코 와서는 예수를 만나고 주님은 그 여인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이 무엇을 하는 여인이었고 왜 물을 길러 왔는지 알아봅시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다 민족에 속하지 않는 민족으로서 외국인이었습니다. 교회의 상징인 이 여인이 외국인이었다는 것은 깊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교회 역시 유다인들에게는 외국인이었던 이방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우리를 표시하는 그 여인 안에서 우리 자신을 생각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받은 은혜를 인식하며 하느님께 감사 드립시다. 그 여인은 본래 실재가 아니고 상징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상징이 되는 것을 허락하였기 때문에 실재가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우리에게 자신을 상징으로 놓아주신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 여인은 물을 길러 왔다.” 일반 사람들이 그렇게 하듯 그 여인도 단지 물을 길러 왔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물을 좀 달라고 청하였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시내에 들어가고 없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께 ‘당신은 유다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유다인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여러분은 여기서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상종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의 그릇조차 사용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이 물동이를 가지고 왔을 때 유다인이 와서는 다른 유다인과는 달리 마실 물을 달라고 청하므로 그 여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비록 마실 물을 청했지만 주님이 참으로 목말라 하신 것은 그 여인의 믿음이었습니다.

물을 달라고 하는 이가 누구인지 들어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그 여인에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또 너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마실 물을 청하시고 또 마실 물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님은 무엇을 기대하는 사람처럼 결핍 상태를 표시하시고 만족할 정도로 줄 의향이 있는 사람처럼 풍요를 약속하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네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하느님이 주실 선물은 성령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여인에게 넌지시 말씀하시면서 조금씩 그 안에 들어가시며 교훈을 주십니다. 이 권고 말씀보다 더 감미롭고 더 자비로운 것이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또 너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

그 여인에게 주시고자 하는 물은 확실히 성서에 기록된 물이 아니겠습니까? “생명의 샘이 진정 당신께 있나이다.” 그런데 “당신 진미의 강물을 마시게 된” 이들이 어떻게 목마르겠습니까?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풍족한 음식과 성령의 충만함을 주겠다고 제의하시지만 그 여인은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해가 결핍된 가운데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이 말씀을 듣고 그 여인은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좀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고 물을 길러 여기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그 여인은 물이 필요하기에 수고를 해야 되지만 나약하기 때문에 그 수고를 피하려 했습니다. 그 여인이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을 들었더라면! 그 여인의 고생이 없어지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이 그 여인에게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아직 그 말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모든 사랑과 온갖 선의 원천이신 천주여, 당신은 재계와 기도와 희사를 죄 사하는 방법으로 보여 주셨으니, 겸손되이 죄를 고백하는 우리를 굽어보시고, 죄의 가책으로 낮추어진 우리를 항상 당신의 자비로 일으켜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3/20 미사후 평의회와 아치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