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론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통해서 당신 사랑을 계시하셨다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Cap. 8,5-9,5: Funk 1,325-327)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통해서 당신 사랑을 계시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보시고 사랑으로 그를 다시 부르시고 은총으로 초대하시며 자비로 붙들어 주시고 애정으로 이끌어 주시려고 언제나 노력하십니다.

이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악으로 굳어져 버린 지상을 복수의 호수로 씻어 주시어 새 시대의 아버지인 노아를 부르시고는 부드러운 말로 권유하시면서 친구의 친밀성을 베푸시고, 현재 일들에 대해 거룩히 훈계하시며, 미래에 생길 일에 대해 은총을 통하여 위로해 주십니다. 또한 사랑의 계약으로 노예 상태에 빠져 있던 사람들의 두려움을 없애 주시고, 공동의 노력을 구출한 것을 공동의 사랑으로 계속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이제 명령을 내리지 않으시고, 노아의 노력에 협조하시어 온 세상의 동물들을 방주에 모아들이셨습니다.

이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그의 이름을 떨치게 하시고, 신앙의 아버지로 세우시며 길을 갈 때 동행하시어 외국인들에게서 지켜 주시고, 많은 재산을 베풀어주시어 승리의 영예를 주시며, 약속에 매이시어 그를 온갖 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사람들이 그를 맞아들이게 하시며, 그가 예기치 못한 후손을 갖게 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그렇게도 큰 은혜를 얻고서 하느님의 큰사랑에 이끌리어 하느님을 두려워하기보다 그분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두려움으로써가 아니라 사랑으로써 그분을 공경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피난길에 있는 야곱을 꿈속에서 위로해 주시고 그가 돌아올 때 싸우게끔 하시며 당신의 굳센 팔로 그를 굳세게 하셨습니다. 이것도 야곱이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의 주님을 아버지로서 사랑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그의 모국어로 부르시고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말씀하시면서 그를 당신 백성의 해방자로 초대하셨습니다.

위에서 우리가 되새긴 이 은총의 선물을 이들이 받을 때, 그들의 마음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불타오르고 그들의 감각은 넘치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도취되어 버려 흡족한 영혼은 육신의 눈으로 하느님을 뵙고 싶어하는 열망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온 세상이 담을 수 없는 하느님을 미약한 인간의 눈이 어떻게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랑의 법은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 또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생각지 않습니다. 사랑은 판단력을 지니지 못하고 이성도 지니지 못하며 한계를 알지 못합니다. 사랑은 어떤 일에 대해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난관에 봉착하여 중단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갈망하는 것을 이루지 못할 때 사랑한 것을 죽여 버립니다. 사랑은 의무적으로 가야할 곳으로 가지 않고 마음이 이끌리는 곳으로 갑니다. 사랑은 갈망을 낳아주고 열정으로 자라나가며 금지된 곳으로까지 가고 싶어합니다.

사랑에 대해서 무엇을 또 말하겠습니까?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보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모든 성인들은 하느님을 보지 못한다면 자신들이 얻게 된 모든 것을 하찮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 때문에 하느님을 뵙고 싶어하는 사랑은 판단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해도 노력의 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모세는 “제가 정녕 당신의 눈에 드셨다면 당신의 얼굴을 보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시편 작가는 “주여, 당신 얼굴을 보여주소서.”라고 말합니다. 이방인들이 우상들을 만드는 것도 자기들이 오류 가운데 경배하는 그를 자기들 눈으로 볼 수 있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주여, 우리의 마음을 분발시키시어, 독생 성자의 오실 길을 닦게 하시고, 또한 오시는 성자를 맞아 깨끗한 마음으로 주를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대림 2주간 2021.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