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프로바에게 보낸 편지’에서 | (Ep. 130,14,27-15,28: CSEL 44,71-73) |
성령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하십니다 |
“오직 하나 주게 빌어 얻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의심 없이 확신 가운데 청하는 것이고 또 그것을 얻으면 자기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를 얻지 못한다면 얻은 여타의 모든 것은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이 한 가지란 육신과 영혼에서 불명과 비부패를 얻어 영원토록 주님의 즐거움을 관조하는 참되고도 유일한 복된 삶입니다. 우리가 청하는 여타의 것은 이 한 가지 은총에 예속시켜 청해야만 타당한 청원이 됩니다. 이 복된 삶을 얻은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 전부를 갖게 되며, 따라서 타당치 않은 것을 얻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생명의 샘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희망 가운데 살면서 희망하는 것을 아직 보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동안에는, 기도 드릴 때, 그 샘을 목말라해야 합니다.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숨어” 우리의 온갖 열망이 향하는 그분의 면전에서 “당신 집 기름기로 흐뭇해지고 당신 진미의 강물을 마실 수 있도록” 그 샘을 목말라해야 합니다. 우리의 열망이 온갖 은총으로 충족되어 애통으로 청하는 일이 없고 모든 것을 기쁨 가운데 소유하게 될 때에만, 그분은 진정 우리 생명의 샘이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빛으로 빛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평화의 상태일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 속에 그것을 청할 때에도 우리는 무엇을 응당히 청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사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실제 그대로 생각해 내지 못할 때 그것에 대해 분명히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사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모두 실재와 맞지 않다고 보고서 그것을 거절해 버리고 경시해 버립니다. 이는 우리가 비록 그 실재를 사실 그대로 알지는 못한다 해도 우리가 구하는 바는 우리 사고에 들어오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는 우리의 나약성을 도와주시는 하느님의 영께서 가르쳐 주신 일종의 “유식한 무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고 끈기 있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한 다음, 이에 더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대신해서 간구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음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성령의 생각을 잘 아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삼위 일체의 품안에서 불가견적인 하느님이시고 성부와 성자와 함께 한 하느님이신 성령께서 하느님이 아니신 것처럼 성도들을 대신하여 기도하신다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분께서 성도들을 대신하여 기도하신다.” 라는 말씀은 성도들이 기도하게끔 하신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이것은 너희가 너희 주 하느님을 사랑하는지 시험해 보시려는 것이다.”라는 구약의 말씀도 있는데, 이 말씀도 하느님께서 사람을 시험해 보시려 하는 것은 당신께서 사람의 마음을 “아시기 위해서”라는 의미가 아니고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하느님을 사랑하는지 “알게끔”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께서는 성도들이 끈기 있게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은 모르고 있는 그 위대한 것에 대한 열망을 그들에게 불어넣어 주시어, 그들로 하여금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며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르고 있는 것을 욕구할 때 어떻게 그것에 대해 기도 속에서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전혀 모르는 것이었다면 틀림없이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그것을 보았다면 욕구하지도 않고 탄식으로 찾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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