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무엇입니까>
3월 16일 사순 제5주간 수요일
(요한 8,31-42)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한 공동체에 특강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넓디넓은 대성당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의 분위기를 보면서
저는 즉시 한 가지 느낌이 왔습니다.
자발적으로 오신 분들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오신 분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아마도 주임 신부님께서는 사순절 공동 보속으로
특강 듣기를 의무화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강사를 소개하는 동안 마음속으로
‘괜히 왔구나!’하는 후회감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즉시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그리고 거기 심드렁한 얼굴로 앉아계신
모든 분들 한분 한분을 위해 성심껏 기도했습니다.
“주님,
마치 예비군 교육 받으러 온 듯한 이 분위기
이거 어떡하실 것입니까?
이제부터는 당신께서 움직이셔야 합니다.
당신께서 이분들을 축복하시고,
얼음장처럼 닫힌 이분들의 마음을 당신께서 활짝 열어주시어
당신을 온몸과 마음으로 맞이하게 도와주십시오.”
제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던지
강론대에 올라가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오신 분들을 보니 고생하는 그분의 팍팍한 삶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지면서 연민과 측은지심의 정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마치 부모님께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드리듯이,
마치 동생에게 타이르듯이,
마치 제자들에게 훈화하듯이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편안히 강의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강론대에 올라갈 때 마다 드는 느낌입니다.
세상의 높은 파도에 기진맥진한 형제자매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일주일을 살아갈
영양가 있는 말씀 한 마디, 진리 한 구절 건지려는
신자들의 마음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 사제들이 신자들을 향해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 지극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더 정성껏 강론을 준비해야겠습니다.
이단을 선포하지 않도록, 실언을 남발하지 않도록
사전에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겠습니다.
진리가 아닌 말, 신자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전해주시는 진리만을 선포해야겠습니다.
이제 먼 길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으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아주 특별한 한 말씀을 던지고 계십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3)
여기서 진리는 과연 무엇입니까?
진리는 하느님 사랑의 최종적인 결론인 육화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진리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중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각별히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느님께서 죄인에게도 선인에게도 똑같이
비를 내리시며 언젠가 우리 모두,
인류 전체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최종적인 진리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곧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 안에 영원한 생명과 구원이 있다는 것이 곧 진리입니다.
주님 안에서 한번 제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 쳐 보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한계와 부족함을 지닌 인간일 따름입니다.
때로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순식간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우리들입니다.
때로 마치 성인성녀처럼 처신하지만
어느새 죄의 올가미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이런 우리를 자유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그분의 한없는 사랑과 끝없는 자비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바보 같은 사랑,
한량없는 인내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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