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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스크랩] [스크랩] 자녀들에게 준 하느님의 사명은? (미주 가톨릭 다이제스트 기고 글)

자녀들에게 준 하느님의 사명은?

(미주 가톨릭 다이제스트에 기고한 글)

 

신성국 노엘 신부

캐나다 Saint John 주교좌 천주교회

보좌 신부 겸 한인 천주교회 담당

 

 

한국인의 교육열은 세계적으로도 최고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사교육비 지출과 사설 학원 수는 인구 대비 세계 1위를 고수할 것으로 본다. 교육열은 세계 최고이지만 과연 하느님이 원하시고 마음에 드는 교육을 시키고 있는가?

 

나는 미국에서 4년, 캐나다에서 7개월째 살고 있는 한국 신부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행복한 청소년들과 만나며 한국 청소년들의 불행을 깊이 묵상해본다. 

 

한국 사회, 교육, 종교, 경제, 군사 모든 분야가 하느님의 뜻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하느님을 저버린 이스라엘이 파멸했듯이 그렇게 망하고 말 것임을 성서를 통해 발견하게 된다. 이 글은 미주 가톨릭 다이제스트에 기고한 것이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한국 부모들의 교육관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교육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부모 욕심을 채우기 위한 교육인가? 진지하게 물을 필요가 있다. 청소년 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성직자의 입장에서 하느님이 기뻐하는 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하느님은 우리 자녀들에게 어떤 사명을 주었는가?’ 라는 주제로 글을 적어본다.

 

 

1. 복음의 눈으로

 

‘자녀들에게 준 하느님의 사명은 무엇인가?’ 새로운 관점에서 복음을 묵상하며 빛을 찾게 된다. 복음이 전하는 제자 소명 사화는 우리 질문에 대한 큰 빛을 던져준다. 예수님이 당신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셨다(마태 4,18-22). 복음은 다양한 관점에서 읽고 묵상할 때 그 속에 담긴 깊고 풍부한 의미를 발견하고 살아있는 주님 말씀으로 다가옴을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 안에는 두 가지 소명사화를 담고 있다.

 

제자들의 소명과 부모들의 소명이다.

복음 안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부모들의 소명도 담겨있다. 과거 한국의 농촌과 어촌 지역에서는 자식들을 많이 낳는 이유 중의 한 가지는 힘든 노동력과 가사 일에 큰 보탬을 주는 존재로서 자녀 출산의 목적도 있었다. 산업화 시대 이전 농경 문화와 어업으로 가사 노동이 주를 이루던 시대에 자녀들은 부모에게 큰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소명 사화 안에 나타난 부모들의 심정과 태도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어업에 종사하고, 아버지의 손과 발이 되어 상당한 노동력을 제공해준 소중한 일꾼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예수님이 자기 자녀들이며 동시에 귀한 일꾼들인 아들들을(베드로, 안드레아 형제들, 야고버와 요한 형제들) 부르시고 몽땅 데리고 가버린다.

 

 

2. 아버지와 아들의 소명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분을 따라나선 아들들을 붙잡지 않는 아버지들의 태도가 궁금하다. 바쁘게 일하는 현장에서 낯선 사람이 나타나 자기 아들들을 데려간다. 아버지로서 낯선 사람 예수님에게 아들을 빼앗겼다는 불만 그리고 아버지와 한마디 상의 없이 그물을 던져버리고 훌쩍 떠나는 아들들에 대한 서운함이 있을 터인데 복음에서는 아버지들의 반응이 생략되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녀들을 붙잡지 않는 아버지들의 태도를 우리는 묵상할 필요가 있다. 아들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해석했던 시각에서 아버지에게 초점을 돌리니 복음의 풍요로운 의미가 더해진다.

 

예수님의 부름의 결과는 아들들의 응답과 그들의 아버지 응답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마치 세례자 요한이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구세주로 소개하며 넘겨주듯이, 제자들 소명사화에서도 아버지들이 자기의 자녀들을 기꺼이 예수님의 제자로 내어준다. 아버지들은 비록 아들들처럼 예수님의 직제자로 나서지는 않지만 당신 자녀들이 예수님의 사명에 협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자유롭게 놓아준다. 혈연의 아들을 넘어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느님의 사명을 위해 받드는 아들로서 기꺼이 내어준다. 예수님의 제자들 뒤에는 부모들의 중대한 결심과 아낌없는 후원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예수님 제자들 못지않은 훌륭한 사도들이 또한 그들의 아버지가 아닌가 싶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하느님의 사명을 일깨워주며 봉헌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성서의 여러 군데에서 자주 드러난다. 특히 구약의 판관 사무엘 이야기도 대표적인 경우이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는데,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자식을 청하고 그 아이를 야훼께 바치겠다고 기도한다. 저는 이 아이를 야훼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의 한평생을 야훼께 맡기고 싶습니다.(사무엘 상 1,28) 한나는 사무엘을 하느님께 기꺼이 바친다. 그리고 사제 엘리는 사무엘에게 하느님의 소명을 일깨워주고, 그분의 사명을 받들도록 지도하였다.

 

성서는 부모와 지도자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계시하고 있다. 부모의 사명은 자녀들에게 주신 하느님의 사명을 밝혀주고, 그 사명을 수행하도록 적극 협력하는 역할이다. 내 품안, 내 혈연, 가문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자녀를 넘어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아버지 나라의 일꾼으로서 우리 자녀들을 바쳐야 함을 성서는 가르치고 있다.

 

 

3. 민족의 아들로서

 

한국 민족사 안에서 애국지사의 선봉에 선 안중근 토마스 의사 가문을 조명해본다.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베드로)에게서 예수 제자들의 아버지들과 유사성을 본다. 안태훈은 황해도 해주 지역의 부호가문으로서 선비였다. 대한조국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로 전락할 때, 전답을 팔고 가산을 정리하여 아들 안중근의 애국 독립 운동에 적극 협력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양반들, 부호 가문들은 일본 식민지 정권과 야합해야 자기 재산을 보호받고, 기득권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안중근의 부모는 아들이 민족 공동체의 아들로서 봉헌하고, 조국 독립을 위한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기꺼이 세상의 명예와 부를 포기하였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넓은 차원에서 민족의 영광이 되도록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안중근 의사는 탈출기에 등장하는 모세와 비슷한 입장에 있었다. 모세 역시 이집트 왕궁에서 고급 교육을 받고 이집트의 지도자로서 자질을 갖추고 향후 보장된 명예와 권력을 누릴 수 있었지만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이 파라오의 억압과 고난 속에서 신음하는 소리를 견디지 못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온 몸을 투신하였다. 모세의 어머니 역시 아들이 하느님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지혜와 용기로서 과감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세상에 존재할 때 누구나 하느님의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부모의 역할은 내 자녀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식별하고 발견하는 협조자들이다. 신앙적 차원에서 부모가 원하는 자녀의 삶이 아니라 하느님이 원하는 자녀의 삶을 열어주는 것이 참 부모의 역할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행복을 바란다면 먼저 자녀가 받은 하느님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경쟁에서 이겨서 남보다 더 뛰어난 자녀, 명문대학에 입학하여 부모의 자랑거리로 삼고 싶고 세상에서 성공한 자녀로 키우려는 부모들이 과연 행복한 자녀를 만드는가?

 

 

4. 부모 - 하느님의 사랑의 대리자

 

부모란? 하느님 사랑의 대리자이다. 부모가 자녀들을 낳아 번성시키는 것은 하느님의 명령에 따른 성스런 행위이다(창세 1,28). 또한 부모는 하느님 사랑의 전달자이다. 자녀들을 사랑으로 보살피고, 정성스레 양육하고, 희생을 다하는 것은 부모를 통하여 하느님 사랑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부모를 통하여 하느님의 축복과 사랑을 느끼며 하느님에 대하여 눈을 뜬다.

 

더 나아가 부모는 하느님의 뜻을 자녀들에게 전달하는 선포자로서 사명을 다할 때 부모로서 참으로 보람되고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고, 부모의 욕심을 강요할 때, 부모뿐 아니라 자녀들도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성가정의 모범으로 요셉과 마리아, 예수님을 삼는 이유는 요셉과 마리아는 부모로서 충실하게 하느님의 뜻을 따라 자녀들 키우고, 하느님 말씀을 양식 삼아 가정을 일구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가 사제성소 뿐 아니라 가정을 이루는 결혼 성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부모가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성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에게 하느님의 사명을 전파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모들이 예수님 제자들의 부모와 안중근 의사의 부모처럼 혈연을 넘어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기꺼이 바치고 하느님의 영광된 자녀가 되도록 봉헌할 때, 참된 행복을 이루는 부모와 자녀가 될 것임을 성서는 증언하고 있다.

 

하느님이 우리 자녀에게 주신 사명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교육의 시작이며 마침이다.

 

* 옮긴 글 *

출처 : 가르멜
글쓴이 : 레베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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