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목 碑木
비 목
이 가곡의 탄생배경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3년 어느 날, 6.25전쟁 때 치열했던 전쟁터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 기슭에서 비롯된다. 백암산 기슭엔 소위 계급장을 단 육군 장교 한 명이 부하들과 함께 순찰을 돌고 있었다. 전방 소대장직을 맡고 있었던 이 장교는 산을 오르내리면서 우연히 이끼 낀 돌무덤을 발견했다. 시선을 따라 무덤 쪽으로 발길을 옮긴 소대장은 깜짝 놀라 멈칫했다. 일반 무덤처럼 생긴 그 곳엔 6.25전쟁의 가슴 아픈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묘비처럼 꽂혀 있던 썩은 나무등걸, 녹슨 철모, 카빈소총 한 자루, 그리고 고즈넉이 피어있는 산목련…. 적과 총을 겨누며 싸우다 숨진 한 군인의 초라한 무덤이라는 게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전사한 용사가 누구인지, 또 그를 누가 묻어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1953년 7월 27일(판문점휴전협정일) 6.25전쟁이 끝나고 10년 남짓 세월이 흐른 그 때서야 장교의 눈에 띄인 것이다. 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이끼 되어 맺히고 지나는 이들이 던진 돌이 더미 되어 쌓여있었다. 젊은 소대장은 즉석에서 시 한편을 지어 바치며 땅속에 누워있는 묘 주인의 넋을 달랬다. 꽃다운 나이에 나라를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의 숭고한 넋을 위로하며 헌시를 지은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는 훗날 음악인 장일남 씨에 의해 작곡된 <비목>의 노랫말이 돼 훌륭한 가곡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묘비처럼 꽂혀있던 썩은 나무등걸은 노랫말에서 ‘이름 없는 비목’으로 표현됐다. 나무로 세워진 묘비란 뜻이다. 백암산에서 순찰을 돌다 시를 지은 그 소대장은 국립국악원장을 지낸 음악평론가 한명희 씨(65·서울시립대 음악과교수)가 장본인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목>은 1970년대 TV연속극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후 국민들의 귀에 익숙해져 애창가곡으로 확실하게 뿌리내렸다. 특히 안방에까지 파고든 <비목>이 단순히 노래의 틀에서만 머물지 않고 축제로 승화되는 계기를 만들어 더욱 눈길을 끈다. 1996년 6월 6일 현충일 때부터 시작된 비목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부근에 조성된 비목의 계곡엔 해마다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지고 있다. 서울에서 150여㎞ 떨어진 비목의 계곡은 평소엔 인적이 뜸하지만 축제기간을 전후해선 꽤 시끌벅적해진다. 보통 현충일 하루 전날부터 사흘 동안 열리는 이 축제는 주먹밥 먹기, 돌탑 쌓기, 비목 깎기 경연대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병영체험행사(1박 2일) 등이 열린다. 또 이 기간 중엔 1960년대 파월장병훈련소(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를 거쳐간 장병들을 위한 ‘옛 전우 만남의 장’행사도 펼쳐져 인기를 끈다. 이들은 격전지를 돌고 출신부대도 방문, 우의를 다지고 있다. 가곡 <비목>을 좋아하는 1백 여명의 문화동호인(비목마을사람들) 주최로 첫 테이프를 끊은 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이름 없는 비목의 넋을 달리며 전쟁의 상흔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한 시대의 정서를 공유한 6.25세대의 한판 굿이라고나 할까. 이제 6.25전쟁은 이토록 슬픈 시와 노래로 승화되어 우리 곁을 맴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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