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성전에 예수를 봉헌함>, 1631년, 패널에 유채, 60⨉48cm,
마우리츠호이츠 왕립미술관, 네덜란드 헤이그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로 인간의 내면적 심리를 자신의 회화의 생명으로 삼았다. 그리고 인간이 겪게 되는
갈등과 번뇌, 사색과 신앙심 등을 주로 표현했다. 신앙적인 면에 있어서 렘브란트는 성경의 말씀을 한갓
그림의 소재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묵상을 통하여 말씀의 깊이를 헤아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성경
속으로 삽입시켰다. 종교적(또는 신화적) 소재나 자화상을 많이 그렸으며, 유화와 에칭에서 유럽 회화에서
최대 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아기 예수가 성전에 봉헌될 때의 장면이다. 봉헌을 다룬 그림들 대부분은 마리아, 요셉,
여자 예언자 한나 그리고 아기 예수를 팔에 안은 나이든 시메온이 나타나곤 한다. 이 그림의 중앙에 밝은
빛이 감도는 부분에는 예수를 안은 시메온과 그 옆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아버지 요셉 그리고 유대
복장을 한 두 사람이 있다. 또한 아기 예수를 보고 놀란 동작을 취하는 붉은색 예복을 입은 예언자 한나도
보인다. 시메온은 아기 예수를 감격한 듯 자신의 품에 안고 있으며, 그것을 두 명의 유대인은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반면에 화면 오른쪽의 하단, 어둠이 내려앉은 부분에는 검은 색 예복을 입은 두 명의 랍비는 예수를 둘러싼
모습을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어둠에 둘러싸인 이들은 전혀 그림의 중앙에 흐르는 빛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빛’과 ‘어둠’이란 두 요소를 놓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림의 작가 렘브란트는 ‘광선주의’
화가답게 빛과 어둠의 표현을 통해 주제의 의미를 한층 부각시키고 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물로 심판 하실 때 노아는 하느님께서 인정하는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다.
"노아는 당대에 의롭고 흠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갔다."(창세 6, 9)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어느 시대든 믿음이 있는 자을 선택하여 역할을 맡기신다. 시메온 역시 평생을 성경 말씀 안에서 살아온
“의롭고 독실한”(루카 2, 25) 사람이다. 성령께서 그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메시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전하였다. 나이든 시메온은 메시아가 구원의 빛이 되어 오실 것을 확신하였다. 그림에서 밝은 빛은
태양이나 다른 어떤 발광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아기 예수로부터 흘러나오며, 예수를 품에 안은
시메온은 눈부시게 환한 그 빛을 쳐다보며 감동하고 있다. 이 빛은 시메온에게 어둠이 깔린 망망대해에서
항해의 길을 잃어 헤매던 선장이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것과 같은 간절히 바랬던 희망의 빛일 것이다.
두려움에 떨었을 많은 선원들에겐 위로의 빛일 것이다. 이 그림에서 빛이 아기 예수에게서 품어 나오도록
한 표현은 바로 예수가 이방인들에게는 주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영광의 빛이 된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기다리던 메시아는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만민에게 구원의
문을 ‘위로의 빛’으로, ‘영원의 빛’으로 밝히시고 계시는 것이다.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으로 계신
예수를 품에 끌어안은 시메온은 얼마나 가슴 벅차며, 축복을 받은 사람일까? 노쇠한 시메온이지만 사람들
에게 빛의 증거자로 환희에 찬 모습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예수를 보고 놀라 손을 펼쳐든 여자 예언자 한나 역시 하느님은 그녀가 죽기 전에 예수를 만날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였고, 이 소식을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사명도 감당했다. 한나는 혼인 후
남편과 7년 동안 살다가 84세가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녀는 오직 예언자로서 하느님만 바라보며,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 없이 단식과 기도로서 하느님을 섬겼다고 한다. 한나도 시메온처럼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를 만나게 하고 증거케 한다. 이들은 일생동안 소망한대로 구세주를 만나가 되고, 예수의 사역(使役)을
예언하는 복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