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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란 더러움이 아니라 마음을 닦는 것이다”
‘더하기’가 아닌 ‘빼기’로 풍요로운 삶이 되는 스님의 특별한 청소법 《스님의 청소법》은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이자 일본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스노 슌묘 스님이 ‘청소’라는 행위를 통해 ‘진짜 풍요로운 삶’을 만드는 법을 담은 책이다.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고 모든 면에서 풍요롭다고 말하는 현대에 사는 우리는 과연 질적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을까? 그렇다고 답하기에는 우리 모두 마음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번뇌와 집착에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상을 살고 있다. 물질적인 풍요만으로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일본의 불교 사상인 ‘선’에서 중요시 하는 수행 가운데 하나가 바로 ‘청소’이다. 마스노 슌묘 스님은 바로 이 청소라는 물리적인 행위를 통해 마음을 닦고 수련하는 한 차원 높은 활동을 제안한다. “우리는 원래 한 점 흐림도 없는 거울 같은 마음을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살아가면서 마음에 여러 가지 티끌과 먼지가 쌓입니다. 이를테면 ‘저 사람은 ○○한 사람이다’라는 선입견이나 ‘어떻게든 ○○을 손에 넣고 말겠다’라는 집착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 티끌과 먼지가 한 점 흐림도 없는 거울 같은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선입견이나 집착에 휘둘려 괴로운 것은 다름 아닌 자신입니다. 그러한 마음의 티끌이나 먼지가 묻지 않도록 항상 깨끗이 닦아야 합니다. 더러움 하나를 털어 내면 그만큼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티끌 하나를 걷어 내면 그만큼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흐려진 마음을 닦아 반짝반짝 빛낸다는 생각으로 청소를 합시다. 정돈된 공간에서 지내면 마음 역시 흐려지기 어렵겠지요. 청소란 더러움을 털어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당신의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책 속에서) 이를 위해 왜 하필 청소라는 행위에 대해 이야기하는지부터 시작하며 포문을 연다. 이어서 저자가 나름대로 제안하는 수행 청소법, 리셋 청소법, 아침 청소법, 습관 청소법 등을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진짜 풍요로운 삶을 사는 법을 짚어 준다. 언뜻 하찮게 느껴지는 청소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가꾸고 다듬을 수 있는지, 《스님의 청소법》을 통해 그 방법을 만나 보길 바란다. 작가정보枡野俊明
1953년 일본 가나가와 현 출생으로 겐코지(建功寺)의 주지스님이자 타마미술대학 명예교수 및 정원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마음까지 디자인하는 인생 코치로 사랑받으며, 2006년 뉴스위크 일본판에서 ‘세계가 존경하는 일본인 100인’에 뽑히는 등 종교, 예술을 넘나들며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정원 디자이너로도 널리 알려진 그는 선 사상과 일본의 전통 문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선의 정원’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주요 작품으로는 도쿄의 캐나다 대사관, 베를린 일본 정원 등이 있다. 이에 힘입어 정원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일본 ‘예술선장 문부대신 신인상’을, 독일연방공화국 공로훈장인 공로십자훈장을 수상했다. 저서로 《불교 마음 수업》, 《일상을 심플하게》, 《심플하게 나이 드는 기쁨》, 《버리는 기쁨 다시 찾은 행복》 등이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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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말끔하게 정리된 방에 사는 사람은 마음도 산뜻해서 헛된 생각이나 고민에 잘 휘둘리지 않습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훤하게 꿰고 있어 물건을 찾느라 이리저리 헤맬 일도 없습니다.
한편, 발 디딜 틈 없이 어수선한 방에 살고 있으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여유를 좀처럼 갖지 못합니다. 뭐 하나 하려 할 때마다 물건을 치우거나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다면 어수선한 상태가 당연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감각이 마비되어 어질러진 상태에 익숙해진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닌가요.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방을 바라봐 주세요. 마음 상태가 고스란히 밖으로 드러나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방을 바라보세요. 신선한 눈으로 방을 바라보면 무엇이 느껴지나요? 〈방은 내 마음 상태를 보여 준다〉에서 좌선이 ‘정(靜)’의 수행이라면, 청소는 ‘동(動)’의 수행입니다. 작무 북소리를 신호로 수행승들이 모두 달려 나옵니다. 그리고 일제히 청소를 시작합니다. 청소 시간은 온 힘을 다해 몸을 움직이고 눈앞의 작업에 집중합니다. 잡담할 틈은 없습니다.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고참이라 불리는 수행 선배의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이러한 동의 시간과 좌선을 하는 정의 시간의 조화가 더없이 좋습니다. 동의 시간인 청소를 할 때는 모두 기합을 넣어 마음을 닦는다는 생각으로 철저히 마지막까지 해냅니다. 시간의 질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정해집니다. 약 15분이라는 시간 동안 대충대충 한 청소와 열심히 마음을 담아 한 청소의 차이는 길게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왜 귀찮다고만 생각하는가〉에서 선에서는 ‘지금’이라는 시간을 소중히 합니다. 우리는 내일이라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 믿지만, 사람의 목숨은 언제 다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아침에 웃으며 집을 나간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만나 목숨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밤에 잠들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반드시 눈을 뜰 수 있을 거라고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나중’이나 ‘내일’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것이 선의 사고방식입니다. 올지도, 오지 않을지도 모를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성심껏 살아갑니다.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그때그때 빈틈없이 처리합니다. 이것이 후회하지 않는 삶의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물건을 정리할 때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순간〉에서 사찰의 현관 입구나 계단에 들어서면 ‘각하조고(脚下照顧)’나 ‘간각하(看脚下)’라고 쓰여 있는 글귀를 볼 수 있습니다. 두 글귀 모두 ‘자신의 발밑부터 잘 살펴보라’,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아라’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가 있는데요. 발밑을 잘 살피라는 말은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라는 뜻입니다. 벗은 신발을 정돈해 두지 않는 사람은 마음도 정돈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음이 과거나 미래로 날아가 ‘지금 여기’에 없기 때문입니다. 고작 신발 벗는 방법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이것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벗은 신발이 비뚤어져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다른 물건이 비뚤어져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즉 그만큼 감성이 둔하거나 마음이 흐트러진 상태입니다. 벗은 신발을 가지런히 하는 그런 사소한 것에서 그 사람의 ‘인품’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당신 집 현관에 놓인 신발은 어떤 모습인가요? 〈“자신의 발밑부터 잘 살펴보라”〉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