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성령 강림 대축일>(6.8) -교회 창립일-'새로운 시작!'"Fiat voluntas tua."


 <성령 강림 대축일>(6.8) -교회 창립일-

"성령을 받아라."(요한20,22) 

'새로운 시작!'

오늘 복음(요한20,19-23)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가톨릭교회 4대 축일(주님성탄대축일.주님부활대축일.성령강림대축일.성모승천대축일)' 가운데 하나인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신 것을 기념하는 날(오순절)'입니다.
성령강림일은 세례로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생겨난 '교회 탄생일'입니다. 그리고 오늘로 부활시기가 끝납니다.

성령강림은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 구원 사업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완성은 '성령의 활동으로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우리를 통해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끝맺음이 없는 사도행전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해 계속 다시 씌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성령을 받아라."(요한20,22)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1코린12,7)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몸과 마음이 온전하게 하느님께로 향해 있는 이들에게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주십니다. 그 은사는 '지혜(슬기), 통달(깨달음), 식견(깨우침), 용기(굳셈), 지식(앎), 공경(받듦), 경외(두려워함)'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신자들은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미사참례와 기도와 말씀을 통해 오는 성령을 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 안에서 살아갑니다. 성령 안에서 기뻐 즐거워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10,20)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14,17)

(~ 에제38,16)

이병우 루카 신부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6.9)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19,26.27)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오늘 복음(요한19,25-34)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요한을 어머니와 아들의 새로운 관계를 맺어 주시고,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는 말씀'입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19,26)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19,27) 
"목마르다."(요한19,28)
"다 이루어졌다."(요한19,30)

오늘은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이 기념일은 비교적 최근인 2018년에 전례력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18년에 성령강림대축일 다음 월요일을 이 기념일로 제정하셨습니다.

성령강림으로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교회의 어머니가 바로 마리아이고, 교회가 마리아의 보호에 맡겨졌음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어 돌아가시기 직전에 유언으로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Fiat voluntas tua."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마리아의 이 결정적인 응답으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 주님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새해 첫날인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1)에 이를 기념합니다.

성령강림대축일 다음 날에는 마리아가 교회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가 되신 것을 기념합니다.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믿는 이들의 영적 어머니'이십니다. '이제와 영원한 부활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들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어머니 마리아께 의탁합니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에제38,17)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10주간 화요일>(6.10)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5,13.14)

'아멘의 삶!'

오늘 복음(마태5,13-16)은 '세상의 소금과 빛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3ㄱ.14ㄱ.16)

우리는 소금의 역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소금은 음식에서 맛을 내는데 꼭 필요한 재료이고, 부패를 방지합니다. 그리고 빛은 어둠을 밝힙니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이런 소금과 빛의 존재자이시고, 우리도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독서(2코린1,18-22)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는(예수님께는) 늘 '예!'만 있을 따름입니다. 하느님의 그 많은 약속이 그분에게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도 그분을 통해서 '아멘!' 합니다."(2코린1,19ㄴ-20)

'아멘의 삶!'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따르는 사람들의 삶은 '아멘의 삶!'입니다.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아멘으로 응답하는 삶'입니다.

"아멘!"은 신앙고백입니다. 지금 나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드러내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기도 드릴 때마다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미사를 드릴 때마다 사제의 기도에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영성체 때 성체를 받아모시기 직전에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제의 말에, "아멘!" 하고 성체를 받아모십니다.

'아멘(Amen)'은 '예(Yes)'입니다.
'동의(Agree)'입니다.
'아멘의 삶'이 곧 '소금과 빛의 삶'이며, '복음화의 삶'입니다.

말씀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이 뜻에 언제나 "예!"라고 응답하는, 응답하려고 노력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 에제39,24)

이병우 루카 신부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6.11)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10,8)

'그리스도인의 삶은 거저 주는 삶!'

오늘 복음(마태10,7-13)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는 사도들의 파견 사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10,7-8) 

오늘 독서(사도11,21ㄴ-26; 13,1-3)는 '이방인 지역인 안티오키아에 교회가 세워지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바르나바와 그리고 사울의 노력으로 그곳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신 예수님(환희의 신비), 땀을 흘리신 예수님(빛의 신비), 수난하고 죽으신 예수님(고통의 신비),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영광의 신비),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10,8ㄷ)고 하십니다.

'무엇을 거저 받았는가?'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를, 곧 예수님의 육화와 땀과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습니다. 매일 성체성사(미사)를 통해 성체(그리스도의 몸)를 선물로 받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2,20)

'거저 받은 이 큰 선물을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거저 주는 삶'은 '성체의 삶'이며, 그 구체적인 모습이 바로 바르나바 사도가 간직했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사도11,24) 

(~ 에제42,20)

이병우 루카 신부
●생(生)의 목표(目標)
-글 이해인-

인생(人生)의 7할(割) 을 넘게 걸어왔고
앞으로의 삶이 3할도 채 안 남은 지금ᆢ

내 남은 생(生)의 목표(目標)가 있다면
그것은 건강(健康)한
노인(老人)이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늘어나는
검버섯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옷을 깔끔하게 입고 남의 손 빌리지 않고
내 손으로 검약(儉約)한 밥상을 차려 먹겠다.

눈은 어두워져 잘 안 보이겠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편협(偏狹)한 삶을 살지는 않겠다.

약(弱)해진 청력(聽力) 으로
잘 듣진 못하겠지만
항상(恒常) 귀를 열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

성한 이가 없어 잘 씹지 못하겠지만,
꼭 필요(必要)한 때만 입을 열며
상처(傷處)주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겠다.

다리가 아파 잘 못 걸어도
느린 걸음으로 많은 곳을 여행(旅行)하며
여행지(旅行地)에서 만난
좋은 것들과
좋은 사람들에게
배운 것을 실천(實踐) 하는
여유(餘裕)있는 삶을 살아가겠다.

어린 시절(時節)부터 줄곧 들어온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質問)에
이제 '건강(健康)한 노인(老人)' 이라고 답한다.

나이가 들면

건강(健康)한 사람이
가장 부자(富者)요

건강(健康)한 사람이
가장 행복(幸福)한 사람이요

건강(健康)한 사람이
가장 성공(成功)한 사람이며

건강(健康)한 사람이
가장 잘 살아온 사람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즐겁고
건강한 날 되시기 바랍니다.

 <연중 제10주간 목요일>(6.12)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5,20)

'보다 더(radical)를 향한 여정!'

오늘 복음(마태5,20ㄴ-26)은 '화해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화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율법의 의로움을 능가하여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서도 안 되고, '바보!', '멍청이!'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화해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5,23-24) 

믿는 이들이 추구하는 의로움은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의로움입니다. 이 의로움은 완전한 사랑의 표지인 '십자가'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믿는 이들은 이 완전한 의로움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보다 더(radical)'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보다 더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 우리의 '죄(너울)의 본질'입니다.

"(우리들)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2코린15-16) 

우리는 어제의 의로움을 능가해야 합니다.
어제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능가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너울)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이고, 그래서 '믿는 이들의 삶의 여정'은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인, '보다 더(radical)를 향한 여정'입니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마르10,31)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첫째가 되려고 노력합시다!

(~ 다니1,21)

이병우 루카 신부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6.13)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마태5,29ㄴ.30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설교!'

오늘 복음(마태5,27-32)은 '극기하여라.'는 말씀과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요즘 우리가 듣고 있는 복음은 산상설교(마태5-7장)입니다. '참 행복'(5,3-12)에 관한 말씀으로 시작되는 산상설교는 산 위에서 군중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설교는 내용이 간결하고 분명합니다.
그리고 우리들 삶 속에서 쉽게 짓는 죄, 습관적인 잘못에 대한 권고입니다. '칠죄종'(탐욕.교만.음욕.시기.분노.인색.게으름)에 대한 권고입니다. 이 죄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간음'에 대한 말씀으로, 눈과 손으로 짓는 간음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단호한 극기'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마태5,29)

오늘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소속인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안토니오 성인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나셨는데, 이탈리아 파도바의 성인으로 불립니다. 그 이유는 안토니오의 설교를 듣고 파도바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안토니오는 설교를 잘한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설교를 하셨기에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까?' '말재주가 뛰어나서 그랬을까?'

안토니오의 마음 안에 성령이 충만했고, 이 성령께서 안토니오의 마음과 입을 움직이게 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사부이신 성 프란치스코처럼 '복음' 안에 온전하게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의 겸손'과 '수난과 죽음의 사랑'을 열정적으로 설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다니3,90)
 

 <연중 제10주간 토요일>(6.14)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마태5,34)

'말을 절제하자!'

오늘 복음(마태5,33-37)은 '정직하여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마태5,33ㄱ)는 율법을 능가하여, "아예 맹세하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과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고, 나 자신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5,37)

우리의 많은 허물들이 입으로부터 나옵니다. 절제없이 마구 쏟아내는 말에서 우리의 죄들이 만들어집니다. 너와의 관계 안에서도 많은 말을 하려고 합니다. 많은 말 속에는 나의 위선과 정직하지 못함이 들어있습니다. 나를 감추려고, 나를 드러내려고, 인정받으려고 하는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말을 절제하라.'는 말씀으로, '침묵하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자기 PR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로 나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나의 신원에 맞는 묵직한 행동으로 나 자신을 드러내는 정직한 신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와 아니요'를 말할 수 있는 정직함을 드러내려면,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으셨다가 되살아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 앞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깊이 성찰해 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을 그대로 실행하기로 다짐해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2코린5,21)

"하느님, 감사합니다!"

(~ 다니6,29)

'예와 아니요'를 말할 수 있는 정직함을 드러내려면,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으셨다가 되살아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말을 절제하라.'는 말씀으로, '침묵하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2코린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