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의 강론에서 | (Oratio 43, in laudem Basilii Magni, 15. 16-17. 19-21: PG 36,514-523) |
우리는 두 육신 안에 하나의 영혼을 가진 것 같습니다 |
사도 바오로가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 의한 독서 | 5,17-22; 6,10-14 |
원로들의 믿음의 싸움 |
27 일어나시어 우리를 도우소서 * 당신 자비 내리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후렴3주여, 일어나시어 우리를 도우소서. 당신 자비를 내리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
○ 네가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 내 이름으로 다른 이에게 전하리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가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 의한 독서 원로들의 믿음의 싸움 |
사랑하는 그대여, 5,17 남을 잘 지도하는 원로들은 갑절의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특히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시오. 18 성서에 “타작 마당에서 일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또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 않았습니까? 19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인이 없이는 원로에 대한 고발을 들어주지 마시오. 20 죄를 짓는 사람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징계하여 다른 사람들까지도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하시오. 21 나는 하느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선택된 천사들 앞에서 그대에게 엄숙히 명령합니다. 그대는 편견이 없이 이 규칙들을 지키고 불공평한 처사를 하지 마시오. 22 그대는 누구를 막론하고 너무 서둘러서 안수해 주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그리고 남의 죄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지 말고 자신의 결백을 지키시오. 6,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길을 잃고 신앙을 떠나서 결국 격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11 하느님의 일꾼인 그대는 이런 것들을 멀리하고 정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시오. 12 믿음의 싸움을 잘 싸워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시오.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그대를 부르셨고 그대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훌륭하게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13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앞에서와 본티오 빌라도에게 당당하게 증언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나는 그대에게 명령합니다.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대가 맡은 사명을 나무랄 데 없이 온전히 수행하시오. |
제2독서 |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의 강론에서 우리는 두 육신 안에 하나의 영혼을 가진 것 같습니다 |
우리는 마치 강의 지류처럼 같은 조국의 샘으로부터 학문을 추구하고자 서로 다른 행로로 떠나갔으나, 흡사 둘이서 약속이나 한 듯 하느님의 안배에 따라 아테네가 우리 두 사람을 상봉케 해주었습니다. 거기에 있는 동안 나는 나의 친구인 우대한 바실리오의 무게 있는 행동과 말하는 데 있어서의 슬기와 완숙함을 보고 그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를 모르고 있던 다른 이들에게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갖도록 권고해 주었습니다. 실은 많은 이들이 그에 대한 명성을 이미 들어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이 결과로 아테네에 처음 유학 오는 학생들이 보통 인정 받지 못하는 처지와는 달리 바실리오만은 이러한 통례를 넘어 특별한 영예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우정의 서곡이고 상호간의 친밀성을 불붙여 준 계기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 두 사람은 상호간의 사랑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는 서로의 친애감을 고백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 다 같은 지혜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각자가 서로에게 모든 것이 되어, 같은 지붕 아래서 살게 되고, 식탁을 함께 하며, 마음까지 함께 하였습니다. 우리 둘의 눈은 한 목적에 고정되고 우리의 친애감은 더욱더 깊어져 힘차게 자라났습니다. 우리 둘 다 학문을 추구하고자 하는 같은 소망으로 이끌려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은 대개 학생들간에 질투심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지만 우리 사이에는 질투심이 결코 없었고 경쟁을 좋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경쟁은 누가 일등을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그 자리를 양보할 수 있느냐 하는 경쟁이었습니다. 우리 각자는 상대방의 영광을 자신의 영광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 육신 안에 하나의 영혼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모든 것 안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으면 안되지만 우리는 각자가 서로 안에 있고 또 서로가 함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두 사람의 유일한 과업과 갈망은 덕을 쌓고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며 현세의 삶을 떠나기 전에도 여기를 떠나간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목적하는 이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생활과 행동을 하느님의 가르침의 지도에 따라 이끌어 나가면서 동시에 덕행에 대한 사랑을 서로 분발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이 좀 지나치다고 볼지 모르겠지만 우리 자신은 서로에게 있어 선악을 식별하는 규범과 척도였습니다. 자기 조상들로부터 이어받은 귀족 칭호들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고 자신의 노력과 행위로 얻은 칭호들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에겐 그리스도인이라는 것과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성 바실리오와 성 그레고리오의 생활과 가르침으로 당신 교회를 빛내신 천주여, 비오니, 우리로 하여금 겸덕으로 당신의 진리를 배우고 애덕으로 충실히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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