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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일>(24.8.11)"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요한6,51)'재육화(再肉化)의 삶!'

하느님의 어린양 2024. 8. 12. 06:23

<연중 제19주일>(8.1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요한6,51)

'재육화(再肉化)의 삶!'

오늘 복음(요한6,41-51)은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요한6,41)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유다인들이 수군거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6,43-44) 

"나는 생명의 빵이다.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요한6,48.50)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6,51)

예수님의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은, '이제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받아 모시고 또 하나의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이들의 삶'인 '재육화의 삶'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페4,30-5,2)는 우리가 살아야 할 '재육화(再肉化)의 삶의 모습에 대한 말씀'입니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용서하십시오. 그리스도께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에페32-5.2)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이상 기후가 심각합니다.
우리의 잘못인 '온실 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의 결과'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사랑하면서 '재육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녀 글라라와 성녀 수산나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2사무 10,12)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제목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8.12)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마태17,22-23)

오늘 복음(마태17,22-27)은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와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바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죽음)과 부활을 세 번에 걸쳐 예고하십니다. 세 번에 걸쳐 반복해서 예고하신다는 것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를 드러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굳게 믿고, 우리도 서로를 위해 죽고 부활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자 핵심'입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죽어야 산다.' '죽어야 부활한다.'는 것이 진리이지만, 참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힘든 '십자가'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첫 번째 예고' 때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마태16,22) 라며 반박했습니다.

두 번째 예고 때는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마태17,23ㄷ)고 전하고 있고, 세 번째 예고에서는 제자들의 반응이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육(사람)이 되어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육으로만 바라봅니다. 그 너머에 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바리사이들이나 율법 학자들이 그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그것도 '아주 작은 믿음인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을 강조하셨고, 이 믿음이 있어야 '예수님 인성과 신성을 둘 다 믿어 고백하는 신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온전히 믿는 신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고 계십니다.

나의 믿음이 반쪽짜리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함께 믿도록 합시다!

신부님들도 세금을 냅니다. 저는 22,000원(8월)

(~2사무11,27)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제목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연중 제19주간 화요일>(8.13)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마태18,1)

오늘 복음(마태18,1-5.10.12-14)은 세 단락으로 이루어진 말씀인,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에 대한 말씀과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마라.'라는 말씀과 '되찾은 양의 비유'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마태18,1)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18,3-5)

그리고 이어서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마라.'는 말씀과 '되찾은 양의 비유'가 전해집니다.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작은 이들, 보잘것 없는 이들을 업신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들을 예수님처럼 여기는 사람'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되찾은 양의 비유'를 통해서 이것이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임을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나서지 않느냐?"(마태18,12)

작은 이들이 무시당하는 세상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왕따 당하는 세상입니다.
혹시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그런 모습은 존재하지 않을까요?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은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 2사무 12,15)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제목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8.14)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18,18)

'자기 희생의 삶!'

오늘 복음(마태18,15-20)은 '형제가 죄를 지으면 깨우쳐 주어라.'는 말씀과 '함께 기도하면 아버지께서 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형제가 죄를 지으면 깨우쳐 주고', '함께 청원기도를 드리는 모습'은 '모두의 구원'이라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교회 공동체가 해야 할 일', '교회 공동체의 일원을 이루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은 '또 하나의 그리스도
(Alter Christus)'라고 불리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제자인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은 폴란드 태생이고, 콘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 사제로서, 성모신심 단체인 '성모 기사회'를 설립하셨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순교하셨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신부님께서는 악명 높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히게 되셨는데, 거기에서 예수님처럼 너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수용소에서는 한 명이 탈출하면, 열 명을 지목하여 처형한다는 규칙이 있었는데, 실제로 탈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지목된 열 명 가운데 한 사람이 가족이 있다며 울부짖자, 그를 대신하여 벌을 받겠다고 자청하셨고, 그래서 굶겨죽이는 벌인 아사형을 받고 순교하셨습니다.

'Omnibus Omnia(옴니부스 옴니아), 이 라틴말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언어'로써,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주라.'는 뜻입니다.

'자기 희생의 삶!'
'너를 위해 죽는 삶!'

이것이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삶'이었고, 그분의 뒤를 따라간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또한 우리의 삶, 나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 2사무13,22)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오늘은 '또 하나의 그리스도
(Alter Christus)'라고 불리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제자인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제목 <성모 승천 대축일>(8
<성모 승천 대축일>(8.15)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루카1,42) 

'우리의 모범이시며 희망이신 마리아!'

오늘은 성모님께서 이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시고 하늘로 오르신 것을 기념하는 '성모승천대축일'입니다.

마리아의 방문 앞에서 친척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칩니다. 마리아를 이렇게 칭송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루카1,42) 

이는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이시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소식을 전하는 천사 가브리엘이 나자렛 처녀 마리아를 찾아가 '마리아가 인간 구원을 위한 도구로 선택되었다.'는 엄청난 소식을 전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루카1,30-32) 

처녀 마리아는, 죽음을 의미하는 이 엄청난 소식을 받아들입니다.
"Fiat voluntas tua!"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그래서 마리아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된 분이 되셨습니다.

이후 마리아는 한 생을 아들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아들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에 늘 함께 하셨고, 십자가 죽음을 품에 안으실 때까지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아들 예수님께서 어머님을 하늘로 불러올리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분'
이십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우리 신앙의 모범'이십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우리의 희망'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지금 여기에서 천국을 그리워하면서 사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주님을 찬미하면서 사는 복된 자녀들이 됩시다!

(~2사무13,37)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8월15일 목요일 [성모승천 대축일]


오늘 우리 모두는 또 다른 성모님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결핍과 흠결투성이인 저 자신의 모습, 백번 천번 결심을 하지만 크게 변화되거나 성장하지 않은 제 모습에 실망도 큽니다. 동료 형제들의 모습도 개진도진, 거기서 거기라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 가뭄에 콩나듯이 멋진 형제를 만납니다. 부족함과 미성숙을 극복하고 하루 하루 일취월장합니다. 주어진 탈란트도 잘 활용해서 자신의 능력치를 극대화시킵니다. 그런 능력치를 바탕으로 공동체와 교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봉사하고 헌신하니, 선배 입장에서 너무나 감사하고 뿌듯합니다. 

성장은커녕 퇴보하고, 겨우겨우 현상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니 참으로 부럽습니다. 성장하지 않는 인생, 성장하는 않는 신앙, 성장하지 않는 공동체, 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지.

이런 면에서 오늘 우리가 예의주시해야 할 분이 계십니다. 오늘 대축일을 맞이하시는 성모님이십니다. 그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이 올라간 분이십니다.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서 가장 큰 진보를 이룬 분이십니다.

성모님은 오늘 우리에게 한 인간이 얼마나 변화될 수 있는지, 얼마나 성장을 거듭할 수 있는지,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화’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잘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은 우리 모두에게도 희망과 자극을 주는 축제입니다. 예수님의 잉태와 출산, 양육을 위한 성모님의 큰 희생과 노고도 대단한 것이지만, 우리가 좀 더 예의주시해야 할 부분은 성모님의 신앙여정입니다. 

한 평생 다양한 위기와 고통, 큰 십자가와 험난한 가시밭길이 성모님 생애 내내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태도를 보십시오. 조금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머뭇거리지 않으셨습니다. 희미한 안개 속의 위험한 길을 걸어가시면서도 그 발걸음이 늘 당당했습니다. 천사를 통해 들려온 하느님의 약속을 마음에 새기고 매일 새롭게 결코 만만치 않은 신앙의 길을 기쁜 얼굴로 걸어가셨습니다.

성모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잉태하셨고, 사랑의 힘으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낳으셨습니다. 이제 성모님께 주어졌던 역할이 우리 모두에게 확대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 안에 예수님을 잉태하지 못한다면, 그 옛날 성모님의 아기 예수 잉태는 그저 오래전 이야기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 아기 예수님의 잉태는 되풀이되어야 합니다.

나도 힘들지만 미혼모가 낳고 떠난 아기 한 명을 입양하면 그것은 내가 아기 예수님을 낳는 일입니다. 우리 가족도 힘들지만 도움이 필요한 보육시설 아동들의 구체적 결핍을 채워주는 일은 어떤 면에서 내가 직접 또 다른 아기 예수님을 낳는 일입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필요에 응하는 일, 작지만 시간 내어주는 일은 또 다른 아기 예수님을 낳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어디 다른 하늘 아래서 멀리 계셔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늘 새롭게 거듭 태어나셔야 할 존재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는 또 다른 성모님이 되어야 합니다.

성모님처럼 아쉽지만 또 다시 나를 떠나고, 안타깝지만 어제와 결별하고, 늘 새로운 여행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부단히 다시 태어나실 것입니다.

인간 존재라는 것 때로 한없이 부족하고 나약하지만, 때로 작은 울타리에 갇혀 괴로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무한히 성장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으로 충만한 존재가 역시 인간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가 있음을, 성모님처럼 큰 도약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결국 우리 안에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늘 현존하고 계심을 굳게 믿길 바랍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오늘 우리 안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가 있음을, 성모님처럼 큰 도약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결국 우리 안에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늘 현존하고 계심을 굳게 믿길 바랍니다.

제목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8.16)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태19,3)

혼인과 이혼!

오늘 복음(19,3-12)은 '혼인과 이혼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렇게 묻습니다.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태19,3)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읽어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나서,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19,4-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마태19,9)

'혼인의 불가해소성!'

이는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혼인, 그것이 성사혼이든 관면혼이든 혼인의 두 당사자인 남녀가 하느님 앞에 와서 서약한 혼인은 인간 힘으로 풀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를 멋대로 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혼인 서약을 하고, 사회법적으로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여자나 남자와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모두 불륜의 죄를 짓는 행위입니다.

요즘 이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황혼 이혼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혼인의 불가해소성 때문에 교회안에서는 이혼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설상 사회법적으로 이혼을 했다하더라도 교회는 이를 이혼이 아니라 '별거상태'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교회 법원을 통해 혼인의 관계를 풀고 다시 혼인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다른 여자나 남자와 살게되면 그때부터 '조당의 상태'가 됩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신을 사랑하는 것도 불륜의 행위입니다.

(~ 2사무 14,3)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제목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연중 제19주간 토요일>(8.17)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19,14)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

오늘 복음(19,13-15)은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다.'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하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19,14)

누가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인가?

요즘 우리가 독서로 듣고 있는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완전 패망 후 바빌론 유배지에서 듣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십니다.

그 대전제는 '회개'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역한 불륜을 저버리고, '하느님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로부터 깨끗해지는 것', '영혼이 맑고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영혼이 맑고 깨끗한 사람들!
영혼의 때(더러움)가 없는 사람들!
영혼이 죄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신앙 여정'은 이런 사람들, 이런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이 되려고 끊임없이 애쓰는 여정입니다. 하느님에 관한 지식을 많이 쌓고 또 쌓는 여정이 아니라, 이런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이 되려고 애쓰는 '회개의 여정'입니다. 

'육신의 때(더러움)'가 있으면 씻어내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혼의 때'가 있으면, 이 때를 씻어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지금 여기에서 충실하게 이행하려고 애쓰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2사무 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