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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일>(3.10)'장미주일! '하느님의 자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2024. 3. 11. 07:39
<사순 제4주일>(3.10)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셨다."(요한3,16) '장미주일!' 사순 제4주일인 오늘은 '장미주일'입니다. 사순시기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장미주일은 '기쁨과 은총'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다시 시작함'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 기쁨과 은총, 곧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기쁨과 은총이 바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본질'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3,16) 세례성사를 통해 모든 죄를 용서받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다시 태어난 하느님의 자녀들은 이 구원의 말씀을 굳게 믿으면서,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제1독서(2역대36,14-16.19-23)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종종 믿음을 간직하지 못하고 '배반의 길'을 걸어갑니다. '불순종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그 자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기쁨이며 은총이라는 사실을 사도 바오로는 오늘 제2독서(에페2,4-10)의 말씀을 통해 다시금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에페2,4-5) '약속(믿음)과 배반과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와 되살아남(부활)', 이것이 '믿는 이들의 삶의 연속'입니다. 이 연속적이고 반복적인 삶을 통해서 우리는 조금씩 완덕을 향해,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갑니다. 기쁨과 은총의 주일인 장미주일을 맞이하여 지금의 나의 모습을 점검해 보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힘차게 부활을 향해 나아갑시다! (~ 창세기 4,26)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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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사순 제4주간 월요일>(3.11)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4,50) '참신앙인의 모습!' 오늘 복음(요한4,43-54)은 예수님께서 카나에서 일으키신 두 번째 표징(기적)인 '왕실 관리의 아들을 살리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가셨을 때, 왕실 관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고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4,50)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이 말씀을 믿고 떠나갑니다. 예수님의 '한 말씀으로' 죽어가던 왕실 관리의 아들이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두 가지'를 함께 묵상해 봅니다. 첫째는 '말씀에 대한 믿음이 낳게 되는 기적'입니다. 둘째는 이 기적이 또 다른 기적, 곧 '복음화의 기적'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왕실 관리는 예수님의 '한 말씀만'으로도 자기 종이 나을 것이라는 큰 믿음을 드러냈던 백인대장처럼,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자기 아들을 살렸고, 이 기적을 보고 그의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렇듯 하나의 기적은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나의 작은 믿음, 특히 하느님 말씀에 대한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기적을 낳고, '또 다른 기적, 곧 복음화의 기적'을 낳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여준 왕실 관리의 모습은 우리가 살아야 할 '참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왕실 관리가 보여준 믿음, 말씀에 대한 믿음을 따라갑시다! 그래서 내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만들고, 또 너를 다시 살리는 기적, 나의 남편과 아내 그리고 나의 가족을 다시 살리는 기적을 만들어 봅시다! (~ 창세기 8,22)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두 가지'를 함께 묵상해 봅니다. 첫째는 '말씀에 대한 믿음이 낳게 되는 기적'입니다. 둘째는 이 기적이 또 다른 기적, 곧 '복음화의 기적'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한 말씀만'으로도 자기 종이 나을 것이라는 큰 믿음을 드러냈던 백인대장처럼 참신앙인의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의 기적을 시작해 보려 합니다 아멘 !!!! |
제목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3.12)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요한5,8) '생명수!' 오늘 복음(요한5,1-16)은 '예수님께서 벳자타 못 가에서 병자를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유다인들의 축제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벳자타라는 못에서 서른여덟 해나 앓고 있는 사람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서른여덟 해나 앓고 있으면서도 걸을 수가 없어서 치유의 샘인 벳자타 못으로 내려갈 수 없었던, 그래서 죽은 목숨과 다를 바 없었던 병자를 고쳐주십니다. 많은 것을 묵상하게 합니다. 참으로 우리 주변에는 육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아픈 사람들이 많습니다. 치유의 샘인 벳자타 연못에 들어가려고 대기하고 있는 많은 병자들처럼, 지금의 병이 낫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독서(에제47,1-9.12)와 복음은 '생명수'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독서는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주변에 있는 피조물들을 살리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 물과 피를 쏟으신 십자가 생명수로 우리와 온 세상을 살리십니다. 죄인들의 속죄 제물이 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면, 우리는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낮아지심과 내어주심의 사랑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면, 지옥 같이 느껴지는 고통 속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너만을 바라보는 것을 잠시 멈추고, 나 자신을 먼저 바라보면서, 그리고 내가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면, 예수님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형식이나 위선에 머물러 있었던 바리사이들이나 율법 학자들이 되지 말고, 모든 것의 본질이며, 모든 것을 살리는 생명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갑시다! 그래서 내가 먼저 다시 살아나고, 나도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생명수가 되어 줍시다! (~ 창세기 11,32)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사순 제4주간 수요일>(3.13)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5,17) '예수님처럼!' 오늘 복음(요한5,17-30)은 '하느님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예수님의 관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느님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관계', '대등한 관계'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5,17)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요한5,19)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요한5,21)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요한5,30) 오늘 복음이,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의 관계가 이러한 것처럼, 하느님 아버지의 완전한 드러남(계시)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도 그러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들려왔습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예수님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열심히 너를 위한 일, 너를 살리는 일을 하는 것'... 예수님처럼 '나의 마음이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들을 향해 있는 것'... 예수님처럼 '너를 사랑하고, 너를 용서하는 것'... 예수님처럼 '너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이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미사에 참례하여 성체를 받아 모시고, 기도하고, 성경을 가까이 합니다. 서로가 예수님처럼 되려고 애쓰는 바로 그곳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천국)'입니다. 구체적인 나의 삶의 자리가, 나의 가정과 일터가 하느님의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예수님이 되려고,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려고 애써 봅시다! 그 '애씀의 보상'이 바로 '기쁨과 행복의 모습인 파스카(부활)'입니다. (~ 창세기 15,21)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
3월13일 [사순 제4주간 수요일] 복음: 요한 5,17-30 오늘도 예수님을 통한 구원과 영생은 매일 우리 눈앞에 선물처럼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무상으로 베푸신 선물이 있는데, 그것은 너무나 큰 것이어서, 믿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바로 구원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놀랍게도 그 선물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제외되지 않는 공평한 선물입니다. 마치 눈이 그 어디든 골고루 내리듯, 아침 서광이 세상 방방곡곡을 고루 비추듯, 그렇게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 선물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있습니다. 선물을 주고자 하는 쪽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끝까지 거부하고 도망가는 사람에게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아침이 되어 밝은 태양 빛이 비칠 때, 온몸으로 만끽하지 않고, 두꺼운 커튼으로 창을 막아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동족 유다인들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유다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주로 고위층 인사들, 나름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 율법의 대가들로 자칭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도 부족할 터인데, 그들은 예수님을 범법자로 몰고 갔습니다. 안식일 규정을 위반한 죄, 신성 모독죄를 들이대며 예수님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반면에 너무도 쉽게 선물을 받아안고 기뻐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가난하고 고통받던 백성이었습니다. 천대받고 무시당하기를 밥 먹듯이 하던 세리와 창녀, 죄인들이었습니다. 비록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단순하고 소박했던 그들은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분께서 선포하시는 말씀 앞에 의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꺼이 수용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살아생전 하느님을 뵙는 지복직관의 은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오늘도 예수님을 통한 구원과 영생이 매일 우리 눈앞에 선물처럼 펼쳐지는데, 우리 스스로 눈을 막고 돌아서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수시로 주님 축복이 우리 머리 위로 폭포수처럼 내려오고 있는데, 그것을 피하려고 어둡고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제목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3.14)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요한5,36) '구원의 중재자!' 오늘 복음(요한5,31-47)은 '구원의 중재자이신 예수님을 믿게 하는 증언'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다인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에 의해 세상으로 파견되어지신 '구원의 중재자'이십니다. 예수님을 세상으로 파견하신 '하느님께서' 이를 증언하시고, '예수님께 맡겨진 하느님의 일들'이 이를 증언하고 있고,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이 바로 예수님이 구원의 중재자시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고, 오늘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 하느님의 일을 하고 계시는 예수님! 성경의 지향점이신 예수님! 이 예수님이 바로 모두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이 되신 '구원의 중재자'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독서(탈출32,7-14)는 '또 하나의 중재자인 모세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을 보시고 주님께서 큰 분노를 드러내시면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탈출32,9) 그러자 모세가 하느님께 애원합니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탈출32,11.12) 주님께서는 모세의 이 중재기도를 들으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십니다. 종종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나, 구원의 중재자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내가,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모세와 같은 누군가의 간절한 중재기도 때문이 아닐까요? 너를 살리는 '구원의 중재자', 너의 구원을 위한 '간절한 중재기도'가 되어봅시다! (~ 창세기19,38)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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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4주간 금요일> <사순 제4주간 금요일>(3.15)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요한7,30) '십자가 사랑!' 오늘 복음(요한7,12.10.25-30)은 '예수님의 때(kairos)'에 대한 말씀, 곧 '십자가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죽이려는 유다인들을 피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예수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 손을 대는 자가 아무도 없었던 이유이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을 때, 기적을 체험한 이들에게 이 기적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리셨던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때'는 '예수님께서 잡히신 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결정적인 때를 앞두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가 바로 공관복음이 전하는 '겟세마니에서의 기도'이고, 요한복음 17장이 전하고 있는 '당신 자신과 제자들과 믿는 이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요한17,1) 세상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파견하신 하느님의 뜻은 예수님께서 세상 구원을 위해 십자가 나무에 매달리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십자가 나무에 매달림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와 당신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길이라고 기도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4) 이 사랑이 바로 '십자가 사랑'입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너를 위해 죽는 사랑이 나와 너를 살리는 길, 함께 부활하게 하는 길입니다. 사순시기가 참으로 은혜로운 이유는, 구원과 부활의 대전제인 이 십자가 사랑을 바라보고, 이 사랑 안에 깊이 머무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십자가 사랑이 우리를 향해 외칩니다.' '돌아오라고!' '회개하라고!' '서로 사랑하라고!' '용서하라고!' (~ 창세기 24,67)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사순 제4주간 토요일> <사순 제4주간 토요일>(3.16) "이렇게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요한7,43) '나에게 예수님은?' 오늘 복음(요한7,40-53)은 '예수님의 신원, 예수님에 대한 여러 마음들이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한 마음들이 세 그룹으로 갈라집니다. 첫째 그룹은 예수님을 예고된 예언자로 여깁니다. 둘째 그룹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합니다. 셋째 그룹은 예수님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그룹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부인하면서 더 나아가 예수님을 붙잡아 죽이려고 사람들입니다. 때가 되어가다 보니 점점 예수님에 대해, 예수님의 신원을 둘러싼 폭력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 폭력과 갈등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이르러 정점(頂點)을 이룹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누구인가?' '나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지금 여기에서 내가 예수님을 메시아(구세주)로 여기면서 다가간다면, 나의 행동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의 나의 삶이 너무나 무의미하게 여겨진다면, 내가 예수님을 메시아(구세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곧 나를 살리는 나의 구세주로 여긴다면 나의 신앙생활에도 큰 변화(회개)가 일어날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얘기하지 않아도 스스로 성당에로 발길을 옮길 것입니다. "저 나무를 열매째 베어 버리자. 그를 산 이들의 땅에서 없애 버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다시는 기억하지 못하게 하자."(예레11,19) 이는 내 안에 있는 악령이 하는 말입니다. 악령이 하는 일은 이렇게 분노하고, 이렇게 너를 죽이려고 합니다. '악령을 따라가지 말고 성령을 따라갑시다!' 오늘은 1993년 3월16일에 돌아가신 울 아버님 기일입니다. "주님, 이종만(마태오)의 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창세기 26,35)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