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연중 제30주일>(10.29) '하나의 사랑'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하느님의 어린양 2023. 10. 30. 08:23

<연중 제30주일>(10.29)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마태22,36)

'나의 이웃은?'

오늘 복음(마태22,34-40)은 '가장 큰 계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렇게 묻습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율법 교사는 '가장 큰 계명 하나가 무엇인지?'를 예수님께 물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두 개의 계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22,37)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22,39-40)

'하나'를 물었는데, '둘'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드러나야 하고,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이웃은?'

'나의 이웃은 가까운 내 주변에' 있습니다.
내 주변에 '예수님과 동일시되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습니다. '나의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보다 하느님의 뜻에 더 잘 순종하는 자연의 피조물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내가 사랑해야 할 '나의 이웃들'입니다.

나의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이고, 이 사랑이 바로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랑'입니다.

더 힘주어 나누고 싶은 것은,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나의 가족들을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의외로 나의 가족 안에 냉담자들과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더 사랑합시다!

'그들이 바로 예수님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다가가고 그렇게 그들을 사랑합시다!

'오늘 참사 1주기를 맞이한 이태원 희생자들(154명)을 기억합니다.'

(~ 바룩 3,8)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30주간 화요일>(10.31)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루카13,18)

'작음의 기적!'

오늘 복음(루카13,18-21)은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고, 누룩에 비길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겨자씨는 크기가 참깨 만 한 아주 작은 씨앗입니다. 그것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입니다.

누룩은 보잘 것 없어보이지만, 그 보잘 것 없어보이는 것이 없으면 결코 맛나는 빵을 만들 수 없습니다.

작은 것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며, 보잘 것 없어보이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 이미 우리 안에 와 있는 하느님의 나라는 작은 것에 충실할 때, 보잘 것 없어보이는 것들을 귀하게 여길 때 마주하게 되는 나라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만든다.'

이것이 바로 '나비효과'입니다.

'나의 작은 기도, 마음, 관심(사랑), 작은 몸짓들, 말 한마디, 미소, 내미는 손, 희생, 감사 등등'

오늘 복음이 '하느님의 나라와 기적은 이 작은 것들로부터 시작된다.'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 독서(로마8,18-25)의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8,24-25) 

'우리의 희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희망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라는 기적을 만들어 봅시다!

어제 함안성당에서 마산교구 가톨릭 우리농본부가 주관한 추수감사제 미사(11시)가 있었는데, 신은근 바오로 교구장 서리 신부님의 강론 말씀 중에서, "감사는 계속 감사를 낳고, 불평은 계속 불평을 낳는다." 라는 말씀이 의미 깊게 다가왔습니다.

'감사의 기적'도 만들어 봅시다!

(~ 에제 5,17)



<위령의 날>(11.2) -둘째 미사-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11,28)

'구원 기도!'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교회는 오늘 성당에서 혹은 묘지에서 죽은 모든 이들을 기억하는 '위령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러니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지상교회와 연옥교회와 천상교회가 소통하는 날'입니다.

'산 이들이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것'은 '지상교회와 연옥교회가 소통하는 모습'이며,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연옥에서 단련받고 있는 영혼들은 '산 이들의 구원기도'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그들 스스로 구원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11월 1일 모든성인대축일부터 11월 8일까지 묘지를 방문하여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 전구기도와 하느님의 자비'로 죽은 이들이 하느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5,20) 

이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은총에서 비롯됩니다. 이 믿음과 은총으로 우리는 죄로부터 해방됩니다.

나의 이 믿음과 나에게 쏟아진 이 은총이 죽은 이들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쓰여집니다. 살아있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이 영적 도구로써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납니다.

11월 '위령성월'과 오늘 '위령의 날'을 맞이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특별한 자비가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내려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청하면서, 그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합시다!

"믿는 이들의 영광이시며 의로운 이들의 생명이신 하느님,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 저희를 구원하셨으니, 세상을 떠난 하느님의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부활의 신비를 믿은 그들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본기도)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 에제 13,23)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조 두레박 신부의 영적 일기 (모든 성인 대축일)
하느님의 사랑을 입고 행복합시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나 그 기억들을 종합하여 써낸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쓴 빅터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죽도록 피곤한 몸으로 저녁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가 해지는 풍경을 보라고 말합니다. 
밥을 먹다 말고 짙은 구름 사이로 붉은빛으로 아름답게 변해가는 살아 숨 쉬는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아,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사람이 사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 남은 삶을 가치 있게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세상이 ‘아름답다.’라고 바라보는 순간에, 그 지옥 같은 감옥수용소의 삶이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느껴져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견디고 또 견디어내어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사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 남은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내 삶이 아름답다. 내 삶에 감사하다. 내 삶은 기쁘고 즐겁다.’ 아멘.

오늘 11월 첫날 모든 성인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예수님께서는 “참 행복”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많이 가지고 있어야 행복하다.’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행복이라는 삶의 의미를 찾아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삶의 의미란?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행복을 찾는 것을 말합니다. 즉, 저희의 삶의 의미는‘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말씀에서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느님의 뜻을 품는 사람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고, 그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어찌 보면, 많은 성인 성녀들, 특히 한국의 순교자들이 하느님의 마음을 품고 가난하게 사셨지만, 행복하게 사셨던 분이셨습니다. 
테살로니카 1서 5장 16-18절에서 사도 바오로가 말씀합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품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은 하느님께 언제나 손을 내밀고, 그리고  매 순간 하느님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믿는 저희의 삶의 의미입니다.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아멘.

사랑하는 고운님들! 
한 형제님이 건강 검진 중에 우연히 폐암 초기 진단을 받습니다. 
수술하고 항암 치료까지 받았지만, 상태는 점점 나빠져 결국 2년 만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님은 폐암 진단을 받은 날부터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웃으면서 “늘 행복하고 감사하다.”라고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답니다. 
‘극심한 고통이 밀려옵니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힘이 듭니다. 그래도 순간순간 감사합니다.’
폐가 기능을 못 하게 되면서 숨을 쉬기가 너무나 힘들어졌을 때, 형제의 간절한 소원, 절실한 소원은 숨 한번 편히 쉬어 보는 것이었답니다.
이렇게 숨을 쉬는 것을 너무나 힘들어했던 형제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숨 쉬는 것, 만지는 것, 말하는 것, 들을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아졌습니다. 
그동안 무엇이든지 ‘왜, 나에게만’ 다가온 고통과 시련이라고 원망하고 힘들어했던 마음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러기에 저희는 너무나 행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11월 위령 성월을 맞이하는 첫날인 모든 성인 대축일에 우리 고운님들은 가졌다고 뽐내지도 말고, 없다고 기죽지도 말고,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그리고 모든 일에 감사하며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행복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저 두레박 사제도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행복한 사제임을 고백하면서 몸과 마음이 아픈 고운님들과 아픈 이들을 돌보는 고운님들, 그리고 고운님들 자녀에게 주님의 치유와 회복의 은총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영적일기를 마무리하면서…. 
매 순간 숨 한번 편히 쉬는 것이 소원인 사람들, 그래서 고운님들은 오늘 말하고, 들을 수 있고, 걸을 수 있는 것을 소원으로 삼는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입고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강복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고운님들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연중 제30주간 금요일>(11.3)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루카14,3)

형식과 본질!

오늘 복음(루카14,1-6)은 '예수님께서 수종을 앓는 이를 안식일에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그분 앞에 수종을 앓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물으십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그들은 잠자코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십니다. 그리고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루카14,5) 그들은 이 말씀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왜, 예수님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신다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안식일, 곧 주일은 부활하는 날'입니다.
이 부활은 '죄(병)로부터의 부활'이며, '아픔과 시련과 지침으로부터의 부활'입니다.
이것이 바로 '안식일(주일)의 본질'입니다.

늘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는 '형식과 본질'이 놓여져 있습니다. 형식은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형식이 향하고 있어야 할 곳은 본질'입니다. '형식은 그 자체가 본질이 아니며, 본질로 나아가게 하는(이끄는) 도구요 수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본질보다도 형식에 집착하거나 얽매일 때가 많습니다. 법이나 규칙 등으로 표현되는 형식은 참으로 소중한 것들이지만, 그것이 결코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것(기도.미사.나눔 등등) 안에서, 그것들이 지향하는 본질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본질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바라보면서, 형식을 바라봅시다!

(~ 에제 16,63)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11.4)
-어머니이신 마리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11,28)

'사랑과 행복!'

오늘 복음(루카11,27-28)은 '참행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11,27) 하고 예수님께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11,28)

그리스도인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면서, 오늘 행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의 사랑을 완전하게 드러내 보여주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동정의 영광을 간직한 채, 영원한 빛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낳으신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이 곧 행복'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 외아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하게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를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고, 신앙의 모범이신 성모님의 삶을 본받으려고 노력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이사61,10) 

오늘 독서인 이사야 예언자 전하는 말씀입니다.

단순한 믿음과 공경 안에서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됩시다!

(~ 에제 21,37)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