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남의 시집 《맨발에게》그 남자가 사는 법-폭포 같은 남자
폭포 같은 남자
바닥을 뚫을 듯이 부서지고 깨진다
아찔한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폭포 끝까지 가본 적 없어 흘러가는 그 남자 - 박화남의 시집 《맨발에게》 에 실린 시 〈그 남자가 사는 법〉 전문 - * 끝을 몰라 두렵지만 끝을 모르기 때문에 뛰어내릴 수 있습니다. 너무 알면, 다 알아버리면 도전도 없고 모험도 없습니다. 폭포처럼 뛰어내려 도도히 흘러가는 남자에 매력을 느낍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
현실의 삶에 집중한 개방적 창조, 간결한 지성의 향연 속 자리한 낮은 자리의 미학 2015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하여 현대시조의 무서운 매혹을 발산하는 박화남 시인의 시집 『맨발에게』가 도서출판 작가 기획시집으로 출간되었다. 박화남은 언어를 ‘엮고’ ‘풀고’ ‘다스리는’ 역량과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내는 혜안이 돋보이는 시인이다. 대상에 대한 깊은 사유와 오랜 숙성을 거친 후에 빚어내는 심미감 넘치는 선명한 형상화는 언어에 대한 예각으로 시 읽는 맛을 싱그럽게 출렁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저자 박화남 시인은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시집 『황제펭귄』을 출간했고, 2022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집 발간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2023년 시집 『맨발에게』를 출간했다. 2022년 천강문학상 시조부문 우수상, 《중앙일보》 중앙시조신인상 수상했다. |
시인의 말 제1부 한 걸음 살아있을 때 발은 발을 맞춘다 맨발에게 15 동물의 왕국 16 봄을 수선하다 17 아무렴, 계란 18 죽! 이는 여자 19 멍들다 20 대접을 대접하다 21 고통사고 22 찬란과 산란 사이 23 걷는다는 것 24 고드름 25 물의 발자국 26 심심한 사과 28 양배추에게 30 썸과섬 31 가령, 이런 사랑 32 말랑말랑한 못 33 2부 어제 먹은 사치와 두 젓가락 매운 거짓 파리지옥 37 함박눈 38 똥 예찬 39 성질을 다리는 여자 40 순두부 41 사라진 증언 42 감 43 이삿짐 44 플라스틱 러브 45 연애 좀혀 46 수평선을 당겼다 47 멜랑꼴리한 거품 48 외달도 49 고스톱 징후 50 값속천지 51 해변의 나이테 52 3부 호적이 마를수록 사람들은 오래 아팠다 人 55 신전을 찾아 56 택배 25557 호모 마스크쿠스 58 평화를 고발함 59 울새 60 죄와벌 6 속도를 건너뛰는 남자 62 추풍렁 용궁다방 63 키스를 버렸어요 64 가죽장갑 65 네모가 네모에게 66 겨울파일 67 부추꽃이 피었다 68 감자 깎는 사람 69 가파도 기 그 남자가 사는 법 72 4부 누군가 받쳐주는 일 알면서도 못했다 할리우드 액션 75 붕어의 입장 76 달의 체위 7 두루마리 휴지 78 바이러스& 바이러스 790 나의 우편함 80 그러는 동안 81 질문의 명 82 민달팽이 서사 83 공중전화 84 구름 위의 사람들 85 한글학교 86 겨울나무 87 우수 88 그 89 울음의 기울기 90 남해 91 해설 삶의 구체성과 눈부신 이미지, 그리고 낮은 자리의 미학_ 손진은(시인, 문학평론가) 92 |
아내가 씻어준다는 남자의 낡은 두 발/구두 속의 격식은 언제나 무거웠다/이제껏 바닥만 믿고/굳은살로 살았다//
손처럼 쥘 수 없어 가진 것이 없는 발/중심을 잡으려고 흔들리지 않았다/그래도 바닥의 깊이를/모른다는 그 남자// 하루를 감아온 발 물속에 풀어낸다/뒤꿈치 모여있는 끊어진 길 닦으면서/아내는 출구를 찾아/손바닥에 새긴다// 바닥을 벗어나려고 지우고 또 지워도/이 바닥이 싫다고 떠난 사람이 있다/맨발은 그럴 때마다/저녁이 물컹했다// ---「맨발에게, p.15」중에서 너무 많이 조심하면/오히려 놓칠 수 있다// 어쩌다 떨어뜨렸을 때 나도 같이 떨어졌다/괜찮다, 깨지는 게 삶이지// 얼러주는 할머니/생각하니 깨진 것은 계란만이 아니었다/오늘이 얇아져서 내일을 파먹듯이// 짙푸른 한 겹의 상처/지워지지 않았다// 꽉 쥐면 빠져나간다 잡는 듯 놔줘야지/그때마다 할머니는 아픈 곳을 궁굴렸다// 그 자리 붙여놓으면/흉터도 꽃이라고// ---「아무렴, 계란, p.18」중에서 숨 가쁜 앵무새를 병원에 데려갔다/골반에 알이 걸려 진통이 컸던 것// 미끄덩, 놀란 보름달/아랫배를 관통한다// 암컷을 밀어내며 먹이를 가로챈 수컷/쇼윈도 부부였나 수컷을 나무랄 때// 찬란을 삼키고 되씹어/산란은 찬란하다// 간신히 숨 고르며 입맛을 다시는데/먹이를 토해내어 암컷에게 먹여준다// 투명한 흰죽 같은 것/둘 사이가 뜨겁다// ---「찬란과 산란 사이, p.23」중에서 울타리 넘어가다/울타리가 된 등나무// 어깨를 뒤틀어서 철조망을 품었다// 차갑게 얼어있는 네게/뼈를 심듯 몸을 연다// 산등성이 넘어가다/발목 잡힌 나무처럼// 그 자리 몸을 굽혀 너를 안아들었다// 여기가 어딘지 몰라도/멀리 함께 가겠다고// ---「가령, 이런 사랑, p.32」중에서 기도가 필요할 때만/찾아가 엎드렸다// 억울하고 속상한 일/모두 일러바치면*// 엄마는/깊고도 넓어// 나보다/더 엎드렸다// ---「신전을 찾아, p.56」중에서 아버지는 없는데 낡은 손만 남아서/마디가 굽은 채로/창고에 걸려있다// 그 겨울 마지막 지문/희미하게 묻어있는// 껍질이 벗겨져서 더 시린 손가락들/이제야 마주 잡고/내 손을 끼워본다// 함부로 버릴 수 없는/두 손이 나를 잡는다// ---「가죽 장갑, p.65」중에서 하늘로 날고 싶어 나무에 앉아 있다/언 땅에 뿌리 박힌 용대리 황태덕장// 먹구름 터널을 뚫고/해일로 밀려온다// 입 있어도 말 못 하는 꾸덕한 동태처럼/폭설 가득 머금고 살이 터진 사람들// 칼바람 손으로 잡고/겨울을 뒤집는다// 등줄기를 흐르며 오래 젖어 비린 말/얼었다 녹았다가 너에게 가닿는다// 공중에 마르는 햇살/뼛속까지 저장한다// ---「겨울 파일, p.67」중에서 시가 좀 안 될 때는 처음을 더듬는다// 위아래 바꿔보고 사정없이 지우면서/동사는 조금 눕히고 부사를 떼어본다// 초승에서 상현까지 보름에서 하현까지/그믐엔 뜬눈으로 은하를 찾아간다/낮달이 허를 찌르며/문장 한 줄 놓는 동안// 서쪽으로 지나가는 그림자 따라가며/사흘을 펼쳤다가 한 열흘 당겨본다// 그곳에 닿기 위해선 몸을 좀 낮춰야지// ---「달의 체위, p.77」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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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 총 4부로 구성된 『맨발에게』는 67편의 짧은 시편을 1부 ‘한 걸음 살아있을 때 발은 발을 맞춘다’, 2부 ‘어제 먹은 사치와 두 젓가락 매운 거짓’, 3부 ‘흔적이 마를수록 사람들은 오래 아팠다’, 4부 ‘누군가 받쳐주는 일 알면서도 못했다’로 나누어 다채롭고 은밀한 시인의 시세계를 담아냈다. 시인은 인간만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널찍이 벗어나 육친이나 이웃들의 삶은 물론 삶의 현실, 우리가 미물이라고 부르는 생물, 자연 현상, 생태와 우주에 이르기까지 미세한 촉수를 거느리며 우리의 나태한 생의 감각과 기율을 일깨운다. 좋은 작품에는 세상에 흔하게 존재하기에 오히려 지나쳐 버리는 작은 부분까지 보듬고 깨우며 우리 생의 질서 속으로 편입시키는 힘이 있다고 할 때 박화남의 시조는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여대 이숭원 명예교수(문학평론가)는 “그의 시선은 정체하지 않고, 대상의 관찰에서 사물의 유추로, 인생론적 상상에서 존재의 담론으로 자유롭게 비상한다.”고 말한다. 시조의 요체는 간결성이며, 일정한 율격 안에 체험과 정서를 녹여 넣어야 시조가 살아난다. 그러나 박화남은 현실의 삶에 집중한다. 더 나아가 언어의 개방적 창조에 전념한다. 열린 시각으로 삶의 진실을 사유하고 다층적 언어로 사물의 깊이를 탐색한다. 그의 상상의 도형 안에서, 깨진 계란은 삶의 징표가 되고, 철조망을 품은 등나무는 사랑의 표상이 되고, 황태 덕장은 시 창조의 공간이 된다. 덧없이 사라지는 비루한 일상의 사물들이 시간을 넘어선 항로의 신선한 깃발로 나부낀다. “이 간결한 지성의 향연에 감상(感傷)이 끼어들 여지가 없음은 축복”이라고 평한다. 고유의 양식 아래 제법 두터워진 성과물들을 내왔음에도 시조라는 ‘오래된 책’의 한 켠에 귀를 기울이면 여전히 “너 어떻게 살아 있어? 하고 싶은 말은 뭔데?”라는 음성이 나직이 배어 나온다. 그때 “살펴 봐. 나의 매직(magic)의 끝은 제목에 있어. 나의 시는 낮은 자리, 세상 갈(渴)한 영혼의 입술을 적시는 중이야”라고 말하는 어떤 영혼의 음성을 들었다. 돌아보니 박화남이었다. 독자들이여, 박화남의 매혹적인 현대시조를 한번 만나보자. |
추천평-
시조의 요체는 간결성에 있다. 일정한 율격 안에 체험과 정서를 녹여 넣어야 시조가 살아난다. 그래서 상당수의 시조는 자연을 소재로 취한다. 자연 소재가 간결성 포착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화남은 현실의 삶에 집중한다. 더 나아가 언어의 개방적 창조에 전념한다. 열린 시각으로 삶의 진실을 사유하고 다층적 언어로 사물의 깊이를 탐색한다. 그의 시선은 정체하지 않고, 대상의 관찰에서 사물의 유추로, 인생론적 상상에서 존재의 담론으로 자유롭게 비상한다. 그의 상상의 도형 안에서, 깨진 계란은 삶의 징표가 되고, 철조망을 품은 등나무는 사랑의 표상이 되고, 황태 덕장은 시 창조의 공간이 된다. 덧없이 사라지는 비루한 일상의 사물들이 시간을 넘어선 항로의 신선한 깃발로 나부낀다. 이 간결한 지성의 향연에 감상(感傷) 끼어들 여지가 없음은 축복이다.
- 이숭원 (李崇源, 문학평론가. 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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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화남 시인은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5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시집 『황제펭귄』을 출간했고, 2022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집 발간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2023년 시집 『맨발에게』를 출간했다. 2022년 천강문학상 시조부문 우수상, 《중앙일보》 중앙시조신인상 수상했다. 또다른 저서--황제 펭귄 |
황제 펭귄 ----2015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박화남 시인의 첫 시집 『황제펭귄』. 첫 시집이 대체로 한 시인의 가족사라든가 개인적인 인생사의 아픔을 곱씹는 작품들이 많은 경향이 있지만, 시인은 첫 시집부터 자신만의 고유한 관심과 시의식 그리고 독특한 가락과 시적 보법을 통해서 개성적인 국면을 보여준다. 물론 시인의 관심은 삶의 여러 장면을 포괄하기에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도 보이고 자연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천착도 보이며 불가사의한 사랑의 미묘한 국면에 대한 놀라움과 탄식의 정동이 표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은 말(言語)에 대한 관심과 ‘아버지’라는 기표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함의로 수렴될 수 있을 듯하다. |
시인의 말 1부 흩어진 저수지 물결 걸음까지 받아낸다 물새를 읽다 /달항아리 /천칭 /지붕 위의 자전거 /빨래집게 /붉은 장마 /해녀 /1g의 그늘 /보내지 않을 편지 /뭇, /장미전쟁 /신화를 쓰다 /양파가 양파에게 /맨발의 보법 /開망초 /살구나무 시인 /주부 9단 2부 익숙한 감정은 왜 돌아보지 않는 걸까 초승달 /체리와 채플린 /새들에게 묻는다 /춤추는 풍선 /몽당빗자루 /벼락 맞은 자두나무 /봄밤 /가로수 싱크홀 /금계국 /구제역 /흰눈썹지빠귀에게 /순댓국 /불고기 게이트 /왜가리 식사법 /독 /시작노트 /어느 열사의 평전 3부 여태껏 본 적도 없는 길 활짝 열린다 개소주 /茶山을 읽다 /황제펭귄 /삭제 버튼 /진달래의 말 /열쇠에 관한 보고 /쾌활한 젖소 씨 /동백꽃 /놀람 교향곡 /아프리카 아프리카 /대관절 /봄의 혐의 /내 여자의 여행 /똥을 울리다 /먹감나무 얼굴 /돼지 잡는 날 /폭설 /햇살플라워 4부 내가 돌아설 때 생강꽃은 피었어요 별일 /길 위의 아포리즘 /치매 병동 203호 /함덕 해변 /모노드라마 /전원 아파트 /백야 /격렬비열도 /후반전 /꽃의 구름 /밥 먹어주는 그녀 /겨울 담쟁이 /들라크루아 방식으로 /먼동 /달나라 보폭 /백록 /대구 막창 /해설 _ 황치복 |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조금은// 사물들에게 경이로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간략하게 서술했는데, 자신의 시조 작품이 사물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은 곧 사물들이 지니고 있는 꿈과 소망에 알맞은 언어를 부여해 주고 싶다는 열망과 통할 것이다. 시인의 이러한 열망은 「흰눈썹지빠귀에게」 「순댓국」 「길 위의 아포리즘」 「치매 병동 203호」 등의 작품에서 드러난다. 이들 작품에서 모든 사물은 자신의 언어를 지니고 있으며 그 언어를 통해서 존재 의의를 실현한다. 하지만 언어란 지극히 한정적인 수단으로서 흔히 왜곡되거나 억압되기도 하고 어떤 정서적 상황에 봉착해서는 불순물이거나 잉여물과 같은 처지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래서 시인은 오히려 표출된 언어의 세계보다는 잠재된 언어의 세계라고 할 수 있는 ‘묵언’에 주목한다. 묵언(默言)이란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지 않는 상태, 곧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그것을 억누르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묵언 또한 하나의 언어의 세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어떤 정서적 소용돌이 상태에서 애써 언어의 분출을 억제하고 있는 상태라는 점에서 더욱 극적인 언어의 세계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박화남 시인의 시조 작품에서 묵언이란 하나의 응축된 에너지로서의 언어로, 발화보다 더욱 효과적인 역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의 고통과 고독의 삶에 대응하는 형식으로서 언어를 초월하는 행위이기도 하고 자신의 의지를 외부를 향해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것들을 안으로 수용하고 포용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을 내세워서 외부로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것에 동화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묵언의 과정은 하나의 수행으로서 삶의 지극한 경지에 도달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고통과 고독에 응전하는 삶의 형식이자 깨달음에 도달하는 수행의 과정으로서 묵언의 가치를 체현하고 있는 존재로 ‘아버지’가 자주 부각된다. 이번 시집에서 아버지의 이미지는 거의 대부분 묵언의 이미지와 관련되어 있으며 또한 달관과 수행의 이미지와 관련되어 있다. 말에 대한 관심은 시인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것이겠지만 박화남 시인의 말에 대한 관심은 이 땅의 현실과 사물에 접근하기 위한 중요한 통로이자, 구도의 과정에서 의지할 수 있는 수행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독특하고 의미심장하다. 특히 묵언의 언어에 대한 천착은 시인의 시적 세계가 한없이 깊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언어를 절제하고 압축하고 응축하는 것, 그것은 아마도 시조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박화남 시인이 구축하고 있는 묵언의 미학에 주목하는 것은 시인이 구축한 묵언의 심미적 효과가 그 자체로 매우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또한 앞으로 시인의 시적 행보에 의해서 시조의 어떤 본질적인 한 국면이 개척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
진달래의 말 절벽에 비스듬히 혼자서 피었더니 살 곳이 못 된다고 어서 내려오라고 사람들 자기들 잣대로 발을 동동 구르지 여기가 의자이죠, 발 뻗고 쉴 수 있는 높은 곳이 좋다고 한없이 올라가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당신이 걱정이죠 리뷰---ㅇ****** _진달래의 말, 박화남 젊은 층들이 가볍게 읽기에 박화남 시인의 시집은 결코 쉬운 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설명이 불친절한 시도 더욱 아니었기 때문에 읽을 때 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진달래의 말>, <봄밤>, <치매병동 203호>, <삭제 버튼>, <양파가 양파에게>, <격렬비열도> 같은 이름이 예뻐서, 또는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시들 각각 신선하고 개성적인 이야기가 담겨있었습니다. 이 시집을 정독하며 개인적인 의견은, 본문을 먼저 읽고 제목을 읽으면 굉장히 새로운 관점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그 중 <진달래의 말>은 저와 같은 20대들에게 직관적으로 끌리는 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읽는 그대로 받아 들여지며 대중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시집이 작아서 들고 다니기도 좋고 생각날 때마다 여러번 반복해서 읽기 좋습니다. 요즘 읽기 쉽고 흔한 글들만 보다보니 무료해진 참이었는데, 간만에 깊이있는 문학을 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인 것 같습니다. |
리뷰--소**이
박화남 시인의 첫 시집이 나왔다.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다. 시인의 말을 먼저 만나본다. “조금은 사물들에게 경이로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짧은 말이지만 큰 울림이 되어 독자들 가슴에 가 닿았으리라. 시어와 내용이 깊이를 담고 있어서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동화나 동시, 아니면 소설쯤으로 추축되기도 한다. 제목이 품은 호기심도 만만찮으니까.
박화남 시인은 김천에서 태어나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5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해 한국동서문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황제펭귄을 끝까지 읽었을 때 기억에 남는 것은 아버지라는 단어가 많았다는 생각이다.
울 엄마
둥근 집에 나 홀로 들었을 때 달의 젖을 먹였던가 나도 따라 둥글어져
내 배꼽 가장자리가 뽀얗게 물결 진다
「달항아리」 전문, -14쪽---달항아리는 흰 바탕에 둥근 형태가 보름달을 닮았다해서 ‘달항아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꽤 이름이 난 분의 달항아리를 본 적이 있다. 둥근 모양이 사방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달항아리는 그런 비정형이 멋이라고 한다. 달항아리도 엄마의 배도 보름달을 닮았다. 달항아리의 배꼽 가장자리가 유난히 뽀얗게 보이나 보다.
무더기 꽃 피워도 해마다 불임이다 지성으로 기도해도 아기는 오지 않아
고모는 날벼락 맞고 오 년 만에 쫓겨났다
친정에 돌아와도 받아주지 않았다
상처 있는 가지끼리 서로 만나 보듬더니 발그레, 자두 열매가 실하게 익어갔다
「벼락 맞은 자두나무」 전문 38쪽
친척 중에 결혼해서 한 번 유산하고는 아기가 들어서지 않아 이혼하고 친정에 온 사람이 있다. 40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더니 뒤늦게 아들을 낳아 알콩달콩 잘살고 있다. 상처 있는 가지끼리 보듬으면 그 상처가 더 빨리 아무는 것인지 세상사는 정말 모를 일이다.
동박새로 날아와
그대가 없는데도 그대 너무 그리워서 만덕산 햇살처럼 구강포 바다를 당겨
백련사 고요에 들어 붉은 숨을 내쉰다
2. ‘丁石’을 새기며
꺾어 든 그 비수를 바람 속에 던져놓고 초당에 내려앉아 찻물 깊이 끓였을까
용오름 역린을 삼켜 명편이 된 한 사람
3. 천년의 시편
그대 푸른 동백나무 하늘로 날아올라 흐르는 구름 위에 한 편 시 적은 오후
여태껏 본 적은 없는 길 활짝 열린다
「茶山을 읽다 전문」 -54쪽
201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가 있는 동안 나라와 집안과 가족을 생각하며 한 편 한 편 적었을 시편이 茶山을 읽다에 함축되어 있는 듯 하다. 말을 절제했기에 깔끔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면서 그 깊이와 그윽함이 함께 밀려오는 작품이다.
스크럼을 짜고 있다 어깨 서로 걸고서
새끼를 지키려는 극한의 맨몸 화법
그 어떤 소리도 없다
아버지도 그랬다
「황제펭귄」 전문 56쪽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다 스크럼을 짜고 있지 않을까? 어쩌다 예외도 있기는 하지만 부모라면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기도 하니 말이다. 황제펭귄은 남극에서 가장 큰 펭귄인데 멸종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한다. 남극의 혹한에 황제펭귄 수컷은 발등에 알을 올려 65일간 품어 부화시킨다고 한다. 알을 지키기 위해 수컷이 모여 원을 만들어 서로 자리이동해 가며 알을 지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 펭귄의 부성이 눈물겹다.
엄마는 큰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자신을 파먹어서 날마다 배고픈 말
언니는 그 강을 건너
엄마 되어 웃는다
아무리 배불러도 자꾸만 떼를 쓰는
지우고 닦아내도 얼룩으로 남는 밤
엄마는 엄마가 그리워
다시, 언니가 된다
「치매 병동 203호」 전문 -77쪽
치매는 한 사람의 역사가 송두리째 지워지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나 자신에게나 다 힘든 병이다. 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엄마가 되어주는 언니.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성치매 역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문제가 덜 생기려면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덜 받고 살아야 하는데 안지랑 골목이든 복현오거리 뒷골목이든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앉아 야들하게 구워진 막창에 익어가는 이야기를 더해 꼭꼭 씹어서 마음까지 순해지는 시간을 자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돌아가신 지 10년 훌쩍 넘은 아버지 생각을 많이 나게 한 시집이다. 황제펭귄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살아계시는 동안 자식 여럿 발등에 올리고 동동거리지 않으셨을까 생각도 든다. 시인의 겉모습처럼 차분하면서도 많은 말 필요 없이 긍정의 끄덕임을 이끌어낸다. 읽어보면 첫 시집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것이다. 다른 독자 역시도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까
리뷰- g*********g‘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박화남 시집 『황제펭귄』을 만났다.
「황제펭귄」과 「몽당빗자루」 두 편을 보내주었는데 코로나19로 한동안 뵙지 못한 아버지 생각을 오래 했다.
다 그렇게 사는 건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시장 골목에서 우리를 반듯하게 키우느라 무던히도 애쓰신 것 같다.
마당을 쓸던 플라스틱 빗자루만 몇 개나 버렸는지.
장날이면 어수선한 골목을 쓸던 빗자루, 감나무에 항상 기대어 있는 닳은 빗자루가 경건하기까지 하다.
아버지보다 오래도록 살아남은 몸이시다
쓸고 또 쓰는 일이
티 안 나게 티 나지만
쓸수록 닳고 닳아져 와불처럼 누우셨다
「몽당빗자루」 전문
오늘따라 바람은 왜 네게로 부는지
금요일은 둥글고 촘촘하게 달리는지
분홍은 왜 슬픔 뒤에 귀 닫고 서 있는지
안개는 왜 발목을 또다시 붙잡는지
오지 않을 연락은 왜 그렇게 창백한지
떠나는 모든 것들은 한꺼번에 오는지
물컹거리는 울음은 왜 쓴맛이 나는지
왜 폭우는 이럴 때 싱싱하게 돋는지
사랑의 유효기간은 왜 그렇게 뻐근한지
「새들에게 묻는다」 전문
요즘 같이 어수선할 때면 질문을 하고 싶다.
사무실에서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안경은 흐리고 세상이 뿌옇게 보인다.
답답한 세상의 일을 새들에게 물어보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면 좀 시원할까.
애당초 아버지는 물새가 분명하다
무논에 얼굴 담가 부리가 닳았는지
쓸쓸히
날개 젖어도
말수가 없으셨다
뼈마디 결린다고 개구리가 우는구나
혼잣말을 흘려놓고 새벽을 물리셨다
물 위에
세운 그림자
한평생 목이 길다
「물새를 읽다」 전문
위의 시는 서울지하철 안전게시문에 선정된 작품이다. 과묵한 아버지의 삶이 잘 드러나 있다.
한평생 목을 길게 빼고 굳은살로 단단한 아버지의 뼈마디가 닳고 닳아 지문이 보이지 않는다.
출퇴근하는 시민들이 오가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다
울지 못한 지상의 매운 울음
어둠 속을 달려 나와 둥근 어깨 내어주며 열수록 말문을 닫고 대신 울고 있었다
「양파가 양파에게」 전문
양파를 깔 때마다 매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시집 앞표지에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라 되어 있는 것을 보면 2015년 중앙일보로 등단한 박화남 시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