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성 예로니모 사제가 새 영세자들에게 한 ‘시편 41편에 대한 강론’에서)앞장서 놀라운 성전에 들어가리라

하느님의 어린양 2022. 6. 30. 07:53
성 예로니모 사제가 새 영세자들에게 한 ‘시편 41편에 대한 강론’에서 (CCL 78,542-544)
사무엘 하권에 의한 독서 6,1-23
제1독서
사무엘 하권에 의한 독서--계약의 궤를 예루살렘으로가져가다
그 무렵 1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정병 삼만 명을 소집했다. 2 다윗은 이 전군을 거느리고 유다 바알라에 가서 하느님의 궤를 옮겨 오려는 것이었다. 그 궤는 거룹을 타고 계시는 만군의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궤였다. 3 그들이 언덕 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느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나올 때, 아비나답의 아들 우짜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몰았다. 4 우짜는 궤 옆에서 따르고, 아효는 궤 앞에서 인도했다. 5 다윗과 온 이스라엘 백성은 수금과 거문고를 뜯고 소구와 땡땡이와 바라를 치면서 마음껏 노래부르며 춤을 추었다.

6 그들이 나곤이라는 사람의 타작 마당을 지날 때였다. 소가 뛰는 바람에 하느님의 궤가 떨어지려고 하자 우짜가 손을 대어 붙들었는데 7 주 하느님께서 우짜의 잘못을 보시고 진노하여 그를 치셨다. 우짜는 하느님의 궤 옆에서 죽었다. 8 다윗은 주께서 우짜를 치신 일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그 곳을 베레스우짜라 불렀는데, 그 이름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9 다윗은 그날, 주님이 너무 두려워, “이래서야 어찌 주님의 궤를 모실 것인가!” 하였다. 10 그래서 다윗은 주님의 궤를 자기 도성으로 맞아들이려 하지 않고 갓 사람 오베데돔의 집으로 옮겨 모셨다. 11 주님의 궤를 오베데돔의 집에 모셔둔 석 달 동안, 주님께서는 오베데돔과 그 집안 식구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12 오베데돔의 집에 하느님의 궤를 모셔 두었기 때문에 주께서 그 집 식구들과 모든 재산에 복을 내려 주신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왕은 너무나도 기뻐 하느님의 궤를 오베데돔의 집에서 자기 도성으로 모시고 올라왔다. 13 주님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옮긴 다음 다윗은 살진 황소를 잡아 바쳤다. 14 그리고 다윗은 모시 에봇을 입고 주님 앞에서 덩실거리며 춤을 추었다. 15 다윗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나팔을 불고 함성을 지르며 주님의 궤를 모시고 올라왔다.

16 주님의 궤가 다윗의 도성에 들어올 때 다윗왕이 주님 앞에서 덩실 덩실 춤추는 것을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려다보고는 속으로 비웃었다. 17 다윗은 미리 성막을 쳐서 마련해 놓은 자리에 주님의 궤를 모셔 놓고 주님께 번제와 친교제를 드렸다. 18 이렇게 번제와 친교제를 드린 다음 다윗은 만군의 주님의 이름으로 백성들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19 그리고 모여든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녀를 가리지 않고 떡 한 개, 마른 대추 야자 한 뭉치, 건포도 떡 한 개씩을 나누어주었다. 백성들은 모두 이것을 받아 가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20 다윗이 자기 식구들에게 복을 빌어 주려고 돌아오자 사울의 딸 미갈이 나가 다윗을 맞으며 말하였다. “오늘 이스라엘의 임금으로서 체통이 참 볼만하더군요. 건달처럼 신하들의 여편네들 보는 앞에서 몸을 온통 드러내시다니.” 21 다윗이 미갈에게 대답하였다. “주께서는 그대 아버지와 그대 집안을 다 제쳐 놓으시고 나를 택하여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주셨소. 나는 그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소. 나는 앞으로도 주님 앞에서 춤출 것이며 22 이번보다도 더 경망히 굴 것이오. 그대는 천하게 보겠지만 지금 말한 그 여편네들은 나를 더욱 우러를 것이오.” 23 그 뒤 사울의 딸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다.
 
제2독서
(성 예로니모 사제가 새 영세자들에게 한 ‘시편 41편에 대한 강론’에서)앞장서 놀라운 성전에 들어가리라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하느님을 그리나이다.” 시편이 말해 주는 이 사슴들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이집트를 나옴으로 세속을 떠나서 파라오와 그 군대들을 세례의 물로 삼켜 버려 마귀를 죽여 버린 우리 사슴들도 교회의 샘,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그리워합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성부께서 샘이라고 말합니다. “나의 백성은 생수가 솟는 샘인 나를 버리고 갈라져 새기만 하여 물이 괴지 않은 웅덩이를 팠다.” 예언자 바룩은 성자에 대해서 “그들은 지혜의 샘을 외면했다.”라고 말해 주고, 사도 요한은 성령에 대해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그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라고 기록하며, 주님께서 직접 하신 이 말씀은 성령에 대한 말씀이라고 복음사가 자신이 지적합니다. 이 세 가지 성서 인용은 삼위 일체 신비가 교회의 세 가지 샘이라는 것을 분명히 증명해 줍니다.

신앙인의 영혼도 이 샘을 그리워하고 세례를 받은 영혼도 이 샘을 그리워합니다. “내 영혼,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애타게 그리나이다.” 그런데 그저 하느님을 뵙고 싶은 마음만이 아닙니다. 애타게 그리워하고 불타 오르도록 목말라 합니다. 세례 받기 전 그들은 서로 다음과 같은 말을 나누었습니다. “그 하느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까.” 이제 그들이 그리워한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들어와 하느님 면전에 있고 제단 앞에 나와 구세주의 거룩한 신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영할 수 있게 되고 생명의 샘에서 다시 태아나 자신감을 갖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앞장서 놀라운 성전에, 하느님의 집까지 들어가리라.” 이 하느님의 집이란 놀라운 성전인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 “축제의 모임 가운데 환희와 찬미 소리 드높이 울려 퍼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입어 우리의 인도를 따르고자 하는 여러분은 낚시 바늘에 걸려든 작은 물고기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이라는 깊은 바다에서 끌려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의 법칙이 바뀌었습니다. 고기는 물에서 나갈 때 죽고 말지만 사도들은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끌고자 이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낚아 내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을 때 눈은 심연에다 두고 있었고 우리 생활은 진창 속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물결 속에서 끌려 나온 다음, 태양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참된 빛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넘치는 기쁨으로 어쩔 줄 몰라 우리 영혼에게 말합니다. “내 영혼아, 하느님께 바라라. 나는 다시 그 님을 찬미하게 되리라. 내 낯을 살려 주시는 분 내 하느님을.”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천상 은총으로 우리를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신 천주여, 비오니, 우리로 하여금 오류의 어둠 속을 헤매지 않고, 진리의 광명 속에서 항상 깨어 있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