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의 ‘전도서에 대한 강론’에서)지혜로운 사람의 눈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고정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2025. 2. 24. 09:16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의 ‘전도서에 대한 강론’에서 | (Hom. 5: PG 44,683-686) |
지혜로운 사람의 눈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고정되어 있습니다 |
전도서에 의한 독서 | 2,1-3. 12-26 |
쾌락과 인간의 지혜는 헛되도다 |
21 이런 짓을 하였거늘 내 말이 없겠느냐 * 너와 같은 나인 줄로 생각했더냐. 나는 너를 꾸짖고 네 눈앞에서 * 이것들을 밝히려 하노라. 22 하느님을 잊은 자들 이를 알아 두어라 * 내 너희를 찢어도 건져낼 자 없을까 하노라. 23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이 나를 공경하나니 * 옳은 길을 걷는 이에게는 하느님 구원을 보여 주리라.”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후렴3주께서는 희생보다 자비를, 번제보다 지혜를 원하시나이다. |
○ 듣거라, 내 백성아, 말하려노라. ◎ 나는 하느님, 네 하느님이로라. |
제1독서 |
전도서에 의한 독서 쾌락과 인간의 지혜는 헛되도다 |
1 나는 향락에 몸을 담가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더니 그것 또한 헛된 일이었다. 2 웃음이란 얼빠진 짓이라, 향락에 빠져 보아도 별 수가 없었다. 3 지혜를 깨치려는 생각으로 나는 술에 빠져 보기도 하였다. 이런 어리석은 일들을 붙잡고 늘어져 보았다. 하늘 아래 이 덧없는 인생을 무엇을 하며 지내는 것이 좋을까 알아내려고 하였다. 12 왕위에 오르는 사람이래야 선왕들이 이미 한 일밖에 더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지혜롭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이며 어리석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고 했다. 13 빛이 어둠보다 낫듯이 지혜가 어리석음보다 낫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14 지혜로우면 제 앞이 보이고 어리석으면 어둠 속을 헤맨다고 했지만, 그래 보아야 둘 다 같은 운명에 빠진다는 것을 나는 안다. 15 “어리석은 사람과 같은 운명에 빠진다면 무엇을 바라고 지혜를 얻으려고 했던가?”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이것도 또한 헛된 일임을 깨달았다. 16 지혜로운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모든 일은 잊혀지고 말리라. 지혜로운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죽지 않는가! 17 그래서 나는 산다는 일이 싫어졌다. 모든 것은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라,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나에게는 괴로움일 뿐이다. 18 나는 하늘 아래서 애쓰며 수고하는 일이 모두 싫어졌다. 힘껏 애써 얻어 보아야 결국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하는 것, 19 그것을 물려받아 주무를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지 어리석은 사람일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 그런데도 내가 하늘 아래서 지혜를 짜고 애를 써서 얻은 것을 물려주어야 하다니, 이 또한 헛된 일이라. 20 나는 하늘 아래서 수고한 모든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고 돌아보기도 싫어졌다. 21 지혜와 지식을 짜내고 재간을 부려 수고해서 얻은 것을 아무 수고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남겨 주어야 하다니, 이 또한 헛된 일이며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다. 22 사람이 하늘 아래서 제아무리 애를 태우며 수고해 본들 돌아올 것이 무엇이겠는가? 23 날마다 낮에는 뼈아프게 일하고 밤에는 마음을 죄어 걱정해 보지만 이 또한 헛된 일이다. 24 수고한 보람으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만큼 사람에게 좋은 일은 없다. 내가 보기에 물론 이것은 하느님께서 손수 내리시는 것이다. 25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즐길 수 있겠는가? 26 하느님께서는 당신 눈에 드는 사람에게는 지혜를 주신다. 알 것을 알아 즐거움을 누리게 해주신다. 그러나 하느님 눈에 들지 못한 사람은 애써 모아 들여도 결국 하느님 눈에 드는 사람의 좋은 일이나 하게 된다. 그러니 이 또한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다. |
제2독서 |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의 ‘전도서에 대한 강론’에서 지혜로운 사람의 눈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고정되어 있습니다 |
영혼이 자신의 눈을 들어 높이어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면, 그는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바와 같이 악의 그림자가 전혀 없는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예리한 눈을 가진 사람으로서 자신이 참으로 행복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위대한 바오로와 바오로만큼 위대한 다른 사람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자신들의 시선을 고정시켰습니다.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움직이며 존재하는 모든 이들도 그러합니다. 빛 속에 거니는 사람이 어둠을 전혀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시키는 사람은 시선을 헛된 것에다 둘 수 없습니다. 자기 시선을 머리이신 분, 즉 만물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 두는 사람은 온갖 덕(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면에서 절대적이고 완전한 덕 자체이십니다.), 진리, 정의, 순수 그리고 온갖 선한 것에다 시선을 둡니다. 성서는 말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눈은 위로 바라보고 어리석은 사람은 어둠 속을 걷는다.” 등잔불을 등경 위에 놓지 않고 침대 밑에 두는 사람은 자신에게 그 빛이 어둠이 되게 합니다. 한편 순수한 투쟁에 임하고 참된 것들을 관상하는 데 몰두해 있지만 다른 이들로부터 맹목적이고 쓸모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기가 그리스도를 위해 바보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이 점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는 우리가 그렇게도 관심을 많이 두는 헛된 것들에다 자신의 슬기와 지식을 두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는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바보가 되었습니다.” 이 말은 흡사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올려 머리이신 분께 고정시키기 때문에 이 지상의 것들에 대해 눈이 멀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집도 먹을 것도 없이 헤매고 헐벗은 채 가난하게 지냈으며 굶주리고 목말라 했습니다. 더구나 그가 전교하러 다니다가 파선으로 거친 파도에 내던져지기도 하고 옥에 갇히고 매를 맞으면서 모욕당하고 사슬로 묶인 채 여기저기 끌려가는 것을 볼 때 누가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겠습니까? 그는 사람들 가운데서 이 모든 고초를 당하는 그때마저 자신의 시선을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떼지 않고 언제나 그분께 두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묻습니다.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이 질문은 흡사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누가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내 시선을 떼 내어 발아래 밟혀져야 하는 것들에다 두게 하겠습니까?” “천상 것들을 추구하라.”고 말할 때,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시킬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천주여, 비오니, 우리로 하여금 항상 영신 사정을 생각하며 또한 말과 행동으로 당신 뜻을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