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것인지, 남을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서 신을 대면해야 하는 수사들의 고뇌는 - 류해욱 신부님
“이 난폭한 시대에 주님 함께 계시니, 우리가 죽을 곳에만 계시나이다.” “슬픔의 인간에게 나아가세! 그분이 흘리신 피를 포기하지 말고, 가서 그분을 만나세. 우리에게 몸을 바치신 그분!”
떠날 것인지, 남을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서 신을 대면해야 하는 수사들의 고뇌는 그레고리안 성가와 기도 내용에서 절절히 묻어나고 있습니다. 성탄 전야에 있었던 반군들의 침입과 반군 부상병을 치료해 준 일로 정부군의 의심을 함께 받게 되어 양측 모두로부터 위협을 받게 된 수사들의 입지는 좁아지고 수도원은 불안과 긴장감이 팽배합니다. 수도자로서 신의 사랑과 믿음을 몸소 실천하려 하지만 그들 역시 인간이기에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 앞에서 두려울 뿐입니다. 두려움에 질린 한 수사가 그들이 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의사인 뤽 수사는 우리의 소명은 두려워하는 이들과 함께 이곳에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되묻자, 그는 아주 재미있는 표정으로 코믹하게 대답합니다.
“숨바꼭질 하는 거지.”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불안감이 극에 다다릅니다. 하지만 감독은 그들이 희망을 잃고 절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수사님과 마을 처녀가 함께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넌지시 암시합니다. 그들은 마치 예언자 예레미야처럼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빌론 유배를 뻔히 알면서도 밭을 사고 씨를 뿌렸습니다. 씨앗은 희망의 상징이지요. 크리스티앙 수사의 고뇌의 눈물이 빗속의 성모상의 눈물과 오버랩 되는 장면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나무 위로 밝게 비치는 햇살 속에 크리스티앙 수사가 양떼를 모는 목동처럼 언덕을 오르는 장면과 호수가 바위 위에 앉아 기도하는 장면도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 왜 이런 상황 안에서 당신은 침묵하십니까?”라는 욥의 물음을 던지며 고뇌하는 수사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깊은 연민을 느끼게 합니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영신수련]의 중요한 내용인 ‘선택’을 다루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옳은가? 순교란 무엇인가? 에 대한 화두를 놓고 수사들은 고뇌하며 갈등합니다. 그들이 영적 독서로 읽는 내용 중의 하나가 카를로 카레토 수사의 글입니다.
“왜 하필이면 제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그냥 받아들이기에는 억울하고 부당하게만 느껴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과연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왜 하느님은 이런 엄청난 고통을 허락하실까요?”
선택의 과정은 서서히 일어납니다. 처음부터 두려움 앞에 자유로운 뤽 수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카를로 카레토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두려움에 고뇌하고, 고통에서 도망치고 싶은 나약함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 나약함이 의연함으로 변모되는 과정을 지켜보던 저는 진정한 ‘선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택’은 한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삶이 과정이듯이 ‘선택’도 과정입니다. 고뇌를 거치지 않은 단호한 선택보다 진정 갈등을 통해 고뇌하며 서서히 이루어지는 그 선택이 더 아름답습니다.
영화에서 감독이 선택의 과정에서 무엇이 바른 선택을 하도록 이끌며 진정한 지혜를 주는 지도 보여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과 인간]은 진정 영성적인 면도 깊이 있게 다룬 영화입니다. 반군들의 테러 위협이 계속되는 가운데 도지사는 수사들에게 프랑스로 돌아가라고 강요하는 가운데 한 수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저희는 떠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저희는 가지 위에 앉은 새입니다. 떠날 수도 있고, 머물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마을의 한 여인이 대답합니다. “저희가 새이고, 수사님들이 가지입니다. 가지가 없으면 새인 우리는 어디에 앉지요?” 가난한 수사들은 자신들보다 더욱 가난하고 힘없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을 의지하며 살고 있었기에 도저히 마을 사람들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남기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일치를 이루기까지 불안 속에서 제각각 깊은 고민에 빠졌었지만 마침내 각자의 자유로운 식별 과정을 통해 온전한 마음의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그 과정은 단순히 그곳에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에 관한 문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그들의 성소에 대한 식별이자 그리스도와의 일치였습니다. 착한 목자는 양떼를 버리지 않고, 새들이 떠나도 나무는 그 자리를 지키는 법이지요. 뤽 수사: 여러분과 함께 남는 것이 제 희망입니다. 크리스토퍼 수사: 주님이 제 자리를 만드십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우리와 적들을 위해! 크리스티앙 수사: 들꽃은 햇살을 따라 자리를 옮겨 다니지 않습니다. 다만 그 자리에서 자양분을 받지요.” 누구보다 고민이 많았고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듣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던 크리스토프 수사의 변모도 아름답고, 그런 그가 크리스티앙 수사와 나누던 대화도 눈물겹습니다. “나는 정말 지금 여기에서 죽는 것이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어!” “맞아. 우리가 수사가 된 것도 미친 짓이지.” “그런데, 생각해 봐. 네 삶을 봉헌한 의미 말이야!” “어떤 것이 옳은지 모르겠어. 기도해도 대답도 없어! 이해도 안 돼. 왜 순교를 해야 하는 거지? 하느님을 위해?” “아니야! 사랑과 신뢰로 순교하는 거야. 우리는 모두의 형제가 되어야 해.” 크리스티앙 수사가 쓴 편지에는 ‘그분께서 바라보시는 그대로 그분과 함께 바라보기 위하여, 나의 눈길을 아버지의 눈길 안으로 잠근다.’라고 쓴 구절이 있습니다. 그 글을 보면 그는 분명 강생의 의미를 깊이 깨달은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또 그는 미사 중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해 주신 일은 바로 태어남, 탄생입니다. 탄생에서 탄생으로, 그분은 당신을 우리 인간 안에 구현하셨습니다. 일상 안에 구원을 가져오십니다. 일상 안에 강생의 신비가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일, 겪어야 할 일도 같습니다.”
영화 [신과 인간] 중에서 가슴 아프면서도 아릿한 감동을 전해준 장면은 ‘마지막 만찬’ 장면입니다. 반군들의 침입이 있었던 이후 불안과 긴장 속에서 지내던 수사들이 제각각 고통스런 식별 과정을 거친 후 모두 남기로 결정한 후 마주한 저녁 식사 장면입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검소한 저녁 식탁에, 의사인 뤽 수사가 감추어두었던 포도주 두 병을 내어놓고, 카세트에 테이프를 끼워 넣습니다.
침묵 속에 차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울려 퍼집니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소박하지만 아주 특별한 만찬이 시작됩니다. 포도주를 마시며 수도원 형제들은 아무런 말없이 저마다 깊은 생각에 빠져듭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고통스런 갈등도 혼란도 없다는 듯이 환한 미소를 짓기도 하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옆에 앉은 형제의 어께를 토닥이기도 하면서 내적 평화와 서로간의 깊은 일치를 보여준 그 장면은 실로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마지막 만찬'을 나누고 침대에 든 그날 한 밤중에, 20여명의 무장 괴한들이 수도원에 침입하여 일곱 명의 수사들을 납치했고, 두 달 뒤 메데아의 한적한 길가에서 그들의 수급만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장 피에르 수사와 아메데 수사만 살아남았고 이 두 분에 의해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91년부터 시작된 알제리 정부와 반정부 이슬람 단체 사이의 무력충돌로 시작된 알제리 내전은 무고한 언론인과 외국인은 물론 민간인들에 이르기까지 약 20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영화의 배경인 1996년은 양 측의 대립이 최고조에 다다른 때로, 무차별적인 테러와 폭력의 난무로 인해 누가 언제 어디서 목숨을 잃을지 알 수 없는 긴장과 불안이 팽배해져 있었고 사건은 바로 그 때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마지막 죽음의 골짜기로 걸어가는 모습은 제게 깊은 묵상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수사들은 서로 서로 부축하면서 묵묵히 죽음의 골짜기를 향해 걸어갑니다. 크리스티앙 수사는 가장 연로한 뤽 수사를 부축하며 걷고 있습니다. 테러니스트도, 군대도, 죽음도 두렵지 않다던 자유인인 뤽 수사는 이제 진리이신 그분께로 걸어갑니다. 진리가 그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눈보라 속으로 희미해 져가는 그들의 모습에 가슴 먹먹했지만, 그 희미함,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한 줄기 빛을 느꼈습니다. 눈보라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던 수사들의 모습은 이제 눈보라 속에 묻혀버리고, 크리스티앙 수사가 남긴 편지로 영화는 마무리합니다.
“나에게 그 일이 일어난다면, 이미 알제리에 있는 모든 외국인들을 겨냥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테러리즘의 희생자가 된다면, ‘나의 생명은 하느님과 이 땅에 바쳐졌다’는 것을 나의 공동체, 나의 교회, 나의 가족은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크리스티앙 수사는 자신들은 특별한 순교자가 아니며, 이름도 없고 관심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이들의 무참한 죽음과 결부되어 있음을 알아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명이 다른 평범한 이들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덜 가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순교의 은총’에 참여하게 된다 할지라도 이 죽음의 책임을 알제리인들에게 지우지 말 것도 당부합니다. 그의 깊은 내면의 목소리에 절로 존경으로 두 손을 모으게 됩니다. 영화는 다음의 성가로 막을 내립니다.
이제 밤이 내리네, 탄생의 위대한 밤이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라 스스로 드러내는 사랑뿐이네 모래와 물을 갈라놓으심으로 한낮에 거하실 이 땅을 하느님은 요람처럼 마련해 주셨네 밤이 내렸다네 팔레스타인의 행복한 밤이 아기 예수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라 아기 예수의 성스러운 생명뿐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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