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 이야기를 2천여 년 전 예수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체험한 최대 곤경에서의 구출 사건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만일 이것이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라면
현대인과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그런데 이 이야기를 옛날에 있었던 기적 이야기만이 아니라
상징적 비유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아침 물가에서 저녁 물가로,
삶이라는 아침의 나라에서 죽음이라는 저녁의 나라로,
시간의 강가에서 영원의 강가로 건너가고 있다.
여기서 삶이라는 배는 갑작스런 시련에 부딪혀
환난과 고통을 겪기 이전까지는 오랫동안 고요를 만끽하며
아무 걱정 없이 물결에 자신을 내맡길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빨리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는가?
비유로 이해된 풍랑 이야기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거센 폭풍과 겁에 질린 불안,
이것이 이 비유의 한 측면이다.
다른 측면도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권능과 점점 드러나는 고요이다.
이로써 이런 물음이 제기된다.
내 삶의 배가 이리저리 흔들릴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불안을 증폭시키는 폭풍을 바라보는가,
아니면 고요를 유지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가?
“자신을 폭풍의 힘에 맡기지 말고 예수님께로 건너가라.
그리고 지체하지 말고 사람을 그분 손에 내맡겨라.”
그렇게 하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 Haris Alexiou - Patoma (비가 내리네) |
출처 : 가르멜산 성모 재속 맨발가르멜회
글쓴이 : 장미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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